주변에 학원은 없고 학교는 ‘막막’하기만
비싼 수강료 내고 서울 유명강사 초빙도
비싼 수강료 내고 서울 유명강사 초빙도
서울대와 주요 사립대들이 2008학년도 입시에서 논술 비중을 크게 높이는 쪽으로 입시안을 마련하자, 고교들마다 ‘논술 비상’이 걸렸다. 무엇보다 ‘지역 학생들이 수도권 학생들에 견줘 상대적으로 불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아 지역 고교들이 논술 대비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논술 사교육’을 기대하기 어려운 군 단위 지역 고교들이 가장 당황하고 있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에는 그 흔한 논술 학원이 한 곳도 없다. 고창고 2학년 정아무개(17)군은 서울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통합교과형 논술 준비는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정군은 “학원에 다닐 수 없으니까 교과 공부를 심도 있게 하고 학교에서 하는 논술 강의를 충실히 듣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창고는 서울 지역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만 학년별로 20여명씩을 모아 평일 방과후나 토요일 오후에 논술 지도를 하고 있는데,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학교에 논술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하는 학생은 없다. 2학년 담임인 김기철 교사는 “이런 데서는 학생들이 의지할 곳이 학교뿐인데 당장 통합교과형 논술을 가르치려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각 교과 담당 교사들 몇이 팀을 꾸려 지도해 보자는 얘기도 나오지만, 수도권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20명 남짓한 학생들만을 위해 교사들이 나서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경북 상주군의 한 고교 교사는 “이 지역에 통합형 논술을 준비하는 학원도 없고, 대도시에서 강사들을 초빙하려 해도 한 달에 수십만원씩 하는 수강료를 부담할 만한 학부모들도 많지 않아 갑갑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이름난 논술 강사들 모셔오기도 한창이다. 경북 안동고는 1학기부터 서울 학원가의 논술 전문 강사를 초빙해 2학년 학생 90명에게 논술 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 한 명이 30만원씩 낸다. 평준화 지역인 울산의 학성고와 신정고도 지난 학기에 서울 논술 학원의 강사가 학교에서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논술 지도를 했다. 10차례 강의 수강료는 30만원을 훌쩍 넘었다. 최근 서울대 등의 2008학년도 입시안이 발표된 뒤 학부모들을 상대로 ‘서울 논술 강사 강의를 계속할 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하는 중이다. 이윤현 학성고 교감은 “서울에 가서 강의를 듣는 것보다는 부담이 적으니까 주변 학교와 함께 강사를 초빙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에서 논술 강의를 하는 ㅈ씨는 “서울 대형 학원들이 지역에다 우후죽순처럼 분원을 내고, 이름난 강사의 동영상 강의를 틀어주며 고액을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고교 2학년 딸을 둔 충북 청주의 정아무개(46)씨는 학교에서 따로 논술 대비를 할 수 없어 주말에 딸을 서울에 있는 논술 학원에 보낼지 고민하고 있다. 청주에서 일주일에 한두 차례 논술 강의를 듣는데 수강료가 30만~50만원이나 되기 때문에 아예 서울에 있는 학원으로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대구에 사는 학부모 ㅇ씨도 “갑자기 자연계까지 비중 높은 논술 시험을 치른다니 당황스럽다”며 “몇몇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 논술 대비반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으니 결국 학원에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광주·대구·제주 등 각 시·도 교육청들도 논술 교사 연수를 하고 온라인 논술 첨삭지도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며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비하느라 안간힘이다. 그러나 교육청 담당자들도 ‘결국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대전시교육청 중등교육과 관계자는 “학교에서 우수 학생 몇 명에 맞춰 논술 지도를 따로 하기가 힘드니까, 상위권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걸 막기가 힘들어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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