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교사의 인문사회 비타민
논제 찾아 생각하기
우리는 그 누구도 스스로 선택해 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냐. 내가 남자로 여자로 태어난 것도, 내가 전라도에, 경상도에 태어난 것도, 내가 부자로, 빈자로 태어난 것도, 내가 이런 아버지, 저런 어머니 아래서 태어난 것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 그것이 신의 섭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건, 자연의 이치라는 이름으로 불리건 간에, 우리는 그냥 그렇게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어.
인간은 그렇게 던져졌지만, 동물과는 달리 아무 것도 규정되지 않은 채 던져진 존재야.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스스로 자유로운 선택과 자발적인 결단에 의해 자신을 만들어가야 하는 존재야. 우리는 그러한 선택과 결단을 통해 행동하는 존재고 책임을 져야 하는 외로운 존재지. 그래서 어떤 이는 인간을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라고 규정하기도 했어. 그러나 인간만이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고 그 자유가 우리에게 저주라면, 그 저주는 재앙이 아니라 축복일 거야. 이 세상에 그 어떤 동물이 스스로의 삶을 자유롭게 만들어 가는 ‘작은 창조주’일 수 있겠어?
인간이 자유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야. 하나는 브라만이나 야훼와 같은 절대자에 귀의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해 직접 거기에 뛰어들어 해결하는 방식이지. 하지만 절대적인 존재에게 나의 삶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도피에 지나지 않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부조리한 자유는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야. 인간은 아무리 부조리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그 행위 결과에 대해 자신이 직접 책임을 져야만 하는 그런 존재지.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짐승이 될 수도 있고 천사가 될 수도 있어. 이를 두고 종교학에서는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존재’라 표현하기도 하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중간자적 존재’라고 말하지. 또 처음부터 존재성이 확정돼 있는 ‘닫힌 존재’와는 달리, 그 존재성에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열린 존재’라고도 해. 여기에서 열린 존재란 곧 ‘자유’를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선택의 자유를 말하지. ‘중간자적 존재’라는 것도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해 결단해야 함을 의미해.
그런데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우리 삶의 여정에는 시도 때도 없이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나지.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는 선택해야 하고 하나는 버려야 해. 물론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어느 쪽도 버리지 못한 채 결단의 기회를 놓쳐 버린 경우도 있어. 하지만 선택할 때 선택하지 못하고, 포기할 때 포기하지 못하는 결과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어. 버릴 것을 버리겠다고 결단하는 것이 바로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야. 그런 의미에서 자유는 포기할 것을 포기하는 의지지.
<주역>을 보면 ‘해(解)’, ‘손(損)’, ‘익(益)’ 괘가 순서대로 나오지. ‘해’는 소뿔을 단김에 빼듯이 어려운 문제를 풀 때는 과감히 해야 함을 의미해. 그런데 이렇게 되면 밖으로 덜어내는 상황이 생기게 마련이므로 ‘해’ 다음에 ‘손’을 두었어. 하지만 밖으로 덜어냈다고 여기는 순간 무엇인가가 안을 더하게 만들기 때문에 ‘손’ 다음에 ‘익’을 두었지. 버릴 것을 버려야 참으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이치야. 우리 인생 자체가 선택과 결단의 연속이라는 점에 비춰서 이 도리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의미가 자못 깊어. 선택이라는 것은 겨울에 나무가 생존을 위해 나뭇잎을 떨구는 그런 포기야.
이 세상에는 입고 싶은 옷이 많고, 가고 싶은 곳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 하지만 우리는 옷 한 벌을 선택해야 하고, 단 한 군데를 선택해야 하고, 단 하나의 일을 선택해야 해. 어떤 화가에게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어. 그러자 그는 “무엇을 그리지 않을까 결정하는 것”이라고 짧게 대답했대. 화가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그리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았겠어? 그러나 다 포기하고 단 하나의 대상을 화가는 화폭에 담지. “산다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며, 선택하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라는 서양 격언이 주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야.
선택은 결단을 요구하고 결단은 포기를 통해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게 돼. 그런데 우리의 삶이 초라하게 끝나지 않으려면 카르페 비타(Carpe Vita)의 눈으로 선택해야 해. 카르페 비타는 현재의 시간을 놓치지 말고 즐기는 것을 의미하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차원을 넘어서서, 현재의 시간에서 생명을 붙잡는 것을 의미하는 라틴어야. 현재의 시간에서 ‘생명 아닌 것’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하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여수여고 교사
*위 논제와 관련된 기출문제(2008학년도 서울대 모의논술)는 인터넷 한겨레(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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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여수여고 교사,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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