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본질 말고 구체적 사실을 보라
논리로 키우는 논술내공 / 범주 적용하기-편견과 판단의 갈림길
갓 태어난 아이는 엄마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아이는 얼굴이 아닌 알록달록한 한 무더기 색깔들만을 볼 뿐이다. 보고 또 보고를 반복해야, 아기는 비로소 그 색채무리가 ‘얼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단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양을 보지 못한 이는 양처럼 생긴 구름을 보고 “양처럼 생겼다”고 말할 리 없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지 못하며, 이미 갖고 있는 머릿속 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칸트는 이 틀을 범주(category)라고 부른다.
범주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서, 우리는 그때그때 알맞은 것을 골라 적용하곤 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XX중학교, ○○중학교라는 범주가 크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같은 학교를 나온 급우를 만날 때 더 마음이 놓이기 마련이다. 학교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친구의 범주는 더 쪼개지기 마련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와 싫어하는 친구’, ‘성적이 나와 비슷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등으로 말이다.
범주는 설명의 역할도 떠맡는다. 영희가 짝꿍인 재영이를 반 아이들에게 소개할 때 “재영이는 여자이고 우리와 같은 반이야”라고 하면 어떨까? 이 때 쓰인 ‘여자와 남자’, ‘같은 반과 다른 반’이라는 범주는 별 의미가 없다.
나아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엉뚱한 범주를 자꾸만 끌어들이곤 한다. 건설 노동자를 뽑을 때 그가 백인인지 흑인인지 하는 범주가 과연 의미 있을까? 버스 운전기사를 뽑는 데 남자와 여자라는 범주를 쓴다면 또 어떨까? 현실에서 이런 분류는 위력을 발휘한다. 흑인은 힘이 세며 여자는 직업 운전사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사회에 뿌리내린 탓이다. 물론, 흑인보다 튼실한 백인도 많고 레이서 수준의 여성 운전자도 많다. 이렇듯 잘못된 범주가 바로 ‘편견’이다.
편견은 나름대로 쓸모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신경과학자 알폰소 르나르는 판단이란 ‘나름의 방식으로 필요 없는 정보를 잃는 일’이라고 말한다. 수십 가지의 상품 가운데 하나를 고를 때, ‘일본 제품은 후진국 물건 보다 믿을 만하다’는 범주는 고민거리를 덜어준다. 편견은 오랜 기간 나름대로 ‘검증(?)’된 결과로 만들어 진다. 그래서 설사 옳지 못하다 해도, 이를 따를 때 잘못 선택할 위험은 더 낮아질 듯한 느낌이 들 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피부색이나 나이, 성별 등에 따른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잘못된 편견은 그에 걸맞은 현실을 낳는 까닭이다. ‘여자는 군인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은 여성이 군문(軍門)에 들어설 기회를 좁혀놓는다. 그러다보면 여자 군인은 더욱더 적을 테고, 군대에서 여성이 더 잘 하는 일의 비중도 점점 낮아질 터다. 삐뚤어진 시선은 자신을 그 모습대로 만드는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으로 작용한다. 사회가 나서서 편견이 돼버린 범주를 바로잡으려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필요한 범주를 꼭 짚어내 제대로 적용할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본질보다 상황에 우선을 두고 판단 내려야 한다. 학교를 늦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심리학자 데이비드 베레비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지각했을 때는 대개 ‘상황’에 비춰 이유를 설명한단다. 나는 원래 성실했지만 일이 힘들어서 늦잠을 잤을 뿐이라며 변명한다는 뜻이다. 반면, 남들이 늦었을 때는 본질에 비춰 생각을 정리한다. 그 이가 늦는 까닭은 ‘천성이 게으르거나’, 책임의식 없는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이라며 싸잡아 말하곤 한다. 하지만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는 타고나는 게 아니다.” 상황이 바뀌면 사람도 달라진다. 바꿀 수 없는 본질 따위가 있다고 믿는 한, 차별과 불만만 생길 뿐이다. 골프는 백인에게 알맞은 운동으로 여겨졌지만, 정작 골프 황제는 흑인 타이거 우즈 아니던가. ‘흑인’, ‘백인’ 등의 본질을 보지 말라. 골프에서는 장타 능력, 육상에서는 달리기 속도 등등으로 성황에 다른 범주를 끌어 쓸 수 있을 때 판단은 정교하고 정확해진다. 둘째, 항상 머릿속 생각보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아부의 기술>의 저자 리처드 스텐걸은 칭찬도 현실에 바탕을 두었을 때 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예컨대, “이번 과학 숙제는 정말 명쾌하고 훌륭했어”라는 말은 정말 고래도 춤추게 만드는 칭찬이다. 그러나 “아빠 엄마가 다 훌륭한 사람이니 너도 잘 할 거야”라는 기대는 때로 먹먹한 부담으로만 다가오곤 한다.
비난 할 때도 마찬가지다. “외국 물 오래 먹었다고 우리 문화를 업신여기면 못 써”라고 비판하기 보다는, “젓가락을 포크처럼 쓰는 일은 올바르지 못해”라며 문제되는 사실을 지적하라. 범주는 구체적으로 적용될수록 설명력과 치유력이 높아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범주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 범주가 제대로 되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편견과 차별은 춤을 춘다. 추상적인 본질에 기대지 말고 구체적인 상황과 사실에만 주목하자. 그럴수록 나의 판단은 정교하고 정확해질 터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timas@hanmail.net
■ 뇌를 깨우는 논리 체조 ■
다음 사례에 적용된 범주가 편견인지 제대로 된 것인지를 설명해보자.
1. 에이(A) 대학은 학생 선발 기준의 하나로 에스에이티(SAT:미국 대학 수학능력시험), 토플, 토익 성적을 중요하게 보겠다고 발표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우수 학생을 가리는 데 이런 잣대를 써도 문제없는가?
2. 스포츠카 회사 포르쉐가 에스유브이(SUV:스포츠 다목적 차량)을 생각키로 했을 때, 미국에서는 소비자들의 비난이 빗발 쳤단다. 미국에서 에스유브이는 교육에 극성인 엄마들이 많이 모는 차로 여겨지는 탓이다. 젊고 날렵한 이미지를 바라던 소비자들은 자신이 그런 엄마들과 같은 부류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점이 속상했던 거다. 무엇이 문제인가?
*체조 방법: 범주를 제대로 골라 적용하는 능력은 하루 아침에 길러지지 않습니다. 각각의 상황에 쓰인 범주가 무엇이고, 과연 올바른 것인지 진지하게 토론해 봅시다. 법관들이 판결을 내리는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편견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이성을 나누는 과정에서 길러집니다. 각 주제에 대해 20분 이상 서로 이야기해봅시다.
그렇다면 필요한 범주를 꼭 짚어내 제대로 적용할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본질보다 상황에 우선을 두고 판단 내려야 한다. 학교를 늦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심리학자 데이비드 베레비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지각했을 때는 대개 ‘상황’에 비춰 이유를 설명한단다. 나는 원래 성실했지만 일이 힘들어서 늦잠을 잤을 뿐이라며 변명한다는 뜻이다. 반면, 남들이 늦었을 때는 본질에 비춰 생각을 정리한다. 그 이가 늦는 까닭은 ‘천성이 게으르거나’, 책임의식 없는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이라며 싸잡아 말하곤 한다. 하지만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는 타고나는 게 아니다.” 상황이 바뀌면 사람도 달라진다. 바꿀 수 없는 본질 따위가 있다고 믿는 한, 차별과 불만만 생길 뿐이다. 골프는 백인에게 알맞은 운동으로 여겨졌지만, 정작 골프 황제는 흑인 타이거 우즈 아니던가. ‘흑인’, ‘백인’ 등의 본질을 보지 말라. 골프에서는 장타 능력, 육상에서는 달리기 속도 등등으로 성황에 다른 범주를 끌어 쓸 수 있을 때 판단은 정교하고 정확해진다. 둘째, 항상 머릿속 생각보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아부의 기술>의 저자 리처드 스텐걸은 칭찬도 현실에 바탕을 두었을 때 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예컨대, “이번 과학 숙제는 정말 명쾌하고 훌륭했어”라는 말은 정말 고래도 춤추게 만드는 칭찬이다. 그러나 “아빠 엄마가 다 훌륭한 사람이니 너도 잘 할 거야”라는 기대는 때로 먹먹한 부담으로만 다가오곤 한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180/imgdb/child/2024/0116/53_17053980971276_2024011650343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800/32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76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80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