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부터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 물었던 칸트에 이르기까지, 성찰하는 사람은 그 순간 사춘기다. 사춘기야말로 냉정한 이성과 감성의 시소를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자유이용권이 아닐까? <한겨레> 자료사진
삶, 사유, 논술 /
시간은 참 오묘하다. 학창 시절엔 왜 그리 사건이 커 보일까. 같은 일상이 날마다 반복되는데도 단순하고 쉬운 일이 없다. 친구와 다투고 냉전 중일 때, 선생님께 꾸중을 들을 때, 수업 시간 도중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시간은 너무나 얄밉게도 천천히 간다. 반면, 시험 준비를 하거나 지각할 것만 같은 위태로운 시간은 저혼자 성큼성큼 뛰어간다.
어른들의 일상이라고 애타는 시간이 없지 않으나, 시간을 느끼는 마음은 사뭇 다르다. 연말이 되면 ‘또 한 해가 가는군. 나는 무엇을 했지?’라고 묻는 해가 늘어 간다. 프랑스 철학자 장 마리 귀요는 시간에 대한 경험이 관찰자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들어 ‘내면의 광학’이라 불렀다. 화가가 원근법을 이용해서 입체 공간을 표현하듯, 기억도 먼 것과 가까운 것이 따로 정돈된다.
“젊은이들은 욕망을 참지 못한다. 젊은이는 시간을 집어삼켜 앞서나가고 싶어하지만, 시간은 천천히 흐를 뿐이다. 게다가 젊은 시절에는 많은 일들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되고, 그 인상들이 생생하고 신선하기 때문에 그 시절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중략) 그러나 노년은 연극에서 전혀 변하지 않는 배경과 같다. 이번 주도 다음 주도, 이번 달도 다음 달도 모두 비슷해 보인다. 단조로운 삶이 계속 이어진다.”(<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중에서)
청소년은 어른들에 비해 심리적 확대경들이 너무 많다. 짧은 꿈 속에서도 환상의 나라를 구석구석 여행하듯 일상의 경험들을 응축하여 하나하나 생생하게 느낀다. 마음 속 주머니에 비해 그 내용의 무게가 너무 벅찬 탓일까? 어른을 준비하는 시기에는 소소한 모든 것들에 예민해진다.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방 안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어느 것부터 보아야 할지 정신이 산만해진다. 게다가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장래를 생각하면 늘 현재를 다잡아야 한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멋진 배우자를 만나야 하며, 그래서 성공한(!) 인생으로 마감해야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은 공포스럽다. 공포영화는 후반부에야 괴물의 정체를 드러낸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를 이겨내려면 바로 이 순간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학생들의 자아는 긴장감을 먹고 성장한다.
그런데 이 긴장감이 높아질수록 마음의 향방은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생리적 ‘욕구’와 정신적 ‘욕망’을 구분하면서 마음의 불안을 살폈다. 배가 고플 때 밥을 먹고 싶은 욕구는 배가 부르면 멈춘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음식을 탐하는 것은 화를 풀고 싶은 마음의 욕망 때문이다. 욕구는 금세 만족되지만 욕망은 계속 달아난다. 그래서일까?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은 시험 기간에 더 증가한다. 이성은 더 집중하려 하는데도 시험을 잘 보고 싶은 정신적 압박감이 졸음을 유발한다. 학생 자신은 피곤해서라 여기지만, 실은 마음의 불안 탓이다. 이 ‘신경증적 졸음’은 마음의 역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학창 시절은 이성적 판단을 훈련하고 지적 성장에 몰두하는 시기다. 그러나 비이성적인 것에도 쉽게 빠져든다. 학생들은 과학교육을 받으면서 사실을 관찰하고 합리적 추론을 배운다. 그러면서도 학교 축제 때 타로 카드로 점을 치거나 수능 시험을 앞두고 행운 부적을 선물한다. 최첨단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살면서도 비가 내리는 음산한 날에는 귀신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른다. 즐겨 읽는 책을 조사해 보면, 해리 포터의 마법 이야기나 환타지 소설에 빠져 있는 학생들이 뜻밖에 많다. 신비와 낭만의 공기는 딱딱한 이성을 피하고 싶은 자아의 또 다른 표출이기도 하다.
새로운 성장을 준비하는 시기의 양가적(兩價的) 혼란은 개인의 일상뿐 아니라 역사와 문학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이성 능력을 확신했던 근대 이후에도 비이성적 사고는 늘 함께했다. 합리적인 근대 과학을 대표하는 뉴턴조차도 몸이 상할 만큼 신비주의적인 연금술 연구에 정성을 다했다. 또한, 괴테의 파우스트 박사는 철학, 의학, 법학, 신학까지 두루 공부했으나 “인간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고백하면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전자 네트워크가 지구를 거미줄처럼 엮는 이 과학의 시대에도 알쏭달쏭한 사이비 종교에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삶은 늘 뒤죽박죽으로 오지만, 우리 마음 속에는 해법도 있다. 마음을 정돈하는 그 힘은 바로 반성적 성찰이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고 물었던 몽테뉴의 질문은 이성에 대해 자만하지 말라는 겸허한 충고다.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부터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 질문했던 칸트에 이르기까지 성찰하는 사람은 그 순간 사춘기다. 사춘기야말로 냉정한 이성과 감성의 시소를 타고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자유이용권이 아닐까?
새로운 삶은 무엇이고 어떤 행복을 살게 될까? 다소 추상적이지만, 이 질문은 더 나은 삶을 열망하는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회전축이다. 청소년들은 현실의 모순에 대해 누구보다 원칙적으로 따지면서도, 갑자기 돌변하여 세상을 낙관하기도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 그 폭발점의 문앞에 서 있는 고등학생에게는 현실의 욕망과 불확실한 미래, 이성과 감성의 진동 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더디기만 한 학교 생활, 좁은 보폭으로 나아가는 그 한 걸음마다 화폭 위의 소실점처럼 중심을 느끼기를 바랄 뿐이다.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새로운 성장을 준비하는 시기의 양가적(兩價的) 혼란은 개인의 일상뿐 아니라 역사와 문학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이성 능력을 확신했던 근대 이후에도 비이성적 사고는 늘 함께했다. 합리적인 근대 과학을 대표하는 뉴턴조차도 몸이 상할 만큼 신비주의적인 연금술 연구에 정성을 다했다. 또한, 괴테의 파우스트 박사는 철학, 의학, 법학, 신학까지 두루 공부했으나 “인간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고백하면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전자 네트워크가 지구를 거미줄처럼 엮는 이 과학의 시대에도 알쏭달쏭한 사이비 종교에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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