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들의 소박한 일상이 덜컹거리는 기차소리와 함께 종착역을 달려가는 모습을 그린 ‘3등 열차’.
교과서 미술기행 /
오노레 도미에의 ‘빨래하는 사람’ ‘3등열차’
진실이 불합리한 시대를 치유할 수 있을까? 진실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가변적인 논리가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성이다. 그래서 진실은 언제나 인간의 양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승리가 곳곳에서 도미노 게임을 하듯 자기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효율성에 밀려 절망하고 자기 권리를 박탈당하게 될까.
오노레 도미에는 19세기 화가다. 그런데 도미에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오늘을 만난다. 무섭고 쓸쓸한 일이다. 도미에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독재, 파리 코뮌의 복판에서 민중의 역사를 선명하고 당당하게 그려냈다. 이 현장감 생생한 그림은 시대를 뛰어넘어 위기의 순간에 저항의 깃발이 된다. 그의 그림은 설명이 필요없다. 그것은 그가 이미 뛰어난 민중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보는 순간 곧장 작품에 몰입하고 작품 속에서 느낀 강렬한 감동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올리는 힘을 갖는다. 이는 예술가 도미에가 평생을 걸고 싸워낸 신념이 작품으로 완벽하게 체화되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어두워질수록 모두가 침묵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도미에는 권력에 야합한 상황이나 비겁한 침묵을 날카로운 붓으로 찢어내 본질을 만천하에 드러낸다. 그래서 도미에의 그림은 무거운 어둠 속 불의 글씨를 읽어내는 외로운 예언자처럼 절박하다.
도미에의 ‘빨래하는 사람’은 마주할수록 가슴이 저릿저릿한 그림이다. 예닐곱 살 딸은 돌봐줄 사람이 없어 하루 종일 무료하게 엄마의 힘겨운 빨래가 어서 끝나길 기다린다. 어느 부잣집 빨래가 이들 모녀의 한 끼 밥이 되지만 딸은 엄마 손이 세상에서 제일 든든하다. 얼마나 더 올라가야 희망이 보일까. 강물은 채 덜 풀려 손이 붉게 퉁퉁 부풀어 오르고 아무리 일을 해도 형편이 나아질 기미는 좀체 보이지 않는다.
가진 자에게 더 많은 소유의 자유를 외치는 신자유주의 때문에 이들의 행보가 위태롭지만 그들이 달리 선택할 길은 불행하게도 없다. 그것은 정직한 노동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도미에는 그림의 후경을 따뜻한 축복의 금빛으로 에워싸며 노동자들의 내일을 격려하고 있다. 어떤 순간에도 절대로 지지 말라고! ‘3등열차’는 민중들의 소박한 일상이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와 함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정겨운 그림이다. 젖을 물리는 젊은 엄마와 기도를 하는 듯한 나이든 여자, 그 곁에서 업어가도 모를 만큼 곯아떨어진 아이의 모습이 낯익다. 이들은 이 좁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오랫동안 달려왔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엔 평화와 감사의 빛이 노을처럼 물들어있다. 이 그림은 몇십 년 동안 손에서 굴려져 반질반질해진 나무묵주 빛깔처럼 겸손해서 아름답다. 아기가 깨어나 칭얼거려도 사람들은 제 자식처럼 얼러주며 환히 웃는다. 비록 기차 안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한 마을 사람들처럼 정답다. 어쩌면 다같이 가난하기 때문에 함께 나눌 마음도 넉넉한지 모른다. 짐을 잔뜩 든 노인이 새 역에서 탔다. 서로 자리를 양보하느라 좁은 열차 안이 들썩인다. 밤은 깊어가고 창문마다 새파란 별빛을 달고, 3등열차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의 속내를 싣고 달린다. 도미에의 ‘3등열차’는 우리들의 고단한 삶 어귀마다 덜컹이다 떠난다. 이것이 바로 밥을 함께 나누는 인간의 역사다. 도미에가 ‘빨래하는 사람’과 ‘3등열차’를 그리던 시절은 그의 인생 후반부인 가장 혹독한 폭압과 훼절의 시기였다. 가난하고 참담한 절망의 시기에 도미에는 위대하고 빛나는 이 그림들을 그렸다. 때로 고통은 예술가의 위대한 승리를 증거하는 발화점으로 작용한다. 도미에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신념을 꺽은 적이 없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선명하고 당당하다. 그것은 강렬한 응집력을 뿜어내는 진실의 전언이다.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를 갖는다. 자신의 노동이 아이의 희망이 되고 좀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열심히 일해 왔다. 그런데 죽어라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회적 부가 증가한다면 그 부를 생산하는 노동계층의 몫도 정당하게 나누어져야 한다. 그 고유의 권리가 부정당할 위기에서 도미에의 그림을 다시 본다. 도미에의 그림은 가난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열망하는 시대의 기록이다.
정지원 / 시인
부잣집 빨래를 하느라 손이 붉게 퉁퉁 부풀어 오른 엄마와 온종일 엄마를 기다린 예닐곱살 딸을 그린 ‘빨래하는 사람’. 도미에는 이들을 따뜻한 금빛으로 에워싸며 노동자들의 내일을 격려한다.
가진 자에게 더 많은 소유의 자유를 외치는 신자유주의 때문에 이들의 행보가 위태롭지만 그들이 달리 선택할 길은 불행하게도 없다. 그것은 정직한 노동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도미에는 그림의 후경을 따뜻한 축복의 금빛으로 에워싸며 노동자들의 내일을 격려하고 있다. 어떤 순간에도 절대로 지지 말라고! ‘3등열차’는 민중들의 소박한 일상이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와 함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정겨운 그림이다. 젖을 물리는 젊은 엄마와 기도를 하는 듯한 나이든 여자, 그 곁에서 업어가도 모를 만큼 곯아떨어진 아이의 모습이 낯익다. 이들은 이 좁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오랫동안 달려왔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엔 평화와 감사의 빛이 노을처럼 물들어있다. 이 그림은 몇십 년 동안 손에서 굴려져 반질반질해진 나무묵주 빛깔처럼 겸손해서 아름답다. 아기가 깨어나 칭얼거려도 사람들은 제 자식처럼 얼러주며 환히 웃는다. 비록 기차 안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한 마을 사람들처럼 정답다. 어쩌면 다같이 가난하기 때문에 함께 나눌 마음도 넉넉한지 모른다. 짐을 잔뜩 든 노인이 새 역에서 탔다. 서로 자리를 양보하느라 좁은 열차 안이 들썩인다. 밤은 깊어가고 창문마다 새파란 별빛을 달고, 3등열차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의 속내를 싣고 달린다. 도미에의 ‘3등열차’는 우리들의 고단한 삶 어귀마다 덜컹이다 떠난다. 이것이 바로 밥을 함께 나누는 인간의 역사다. 도미에가 ‘빨래하는 사람’과 ‘3등열차’를 그리던 시절은 그의 인생 후반부인 가장 혹독한 폭압과 훼절의 시기였다. 가난하고 참담한 절망의 시기에 도미에는 위대하고 빛나는 이 그림들을 그렸다. 때로 고통은 예술가의 위대한 승리를 증거하는 발화점으로 작용한다. 도미에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신념을 꺽은 적이 없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선명하고 당당하다. 그것은 강렬한 응집력을 뿜어내는 진실의 전언이다.
정지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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