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북공정 사업은 한국내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다. 사진은 동북공정 반대 시위 모습. <한겨레>자료사진
우리말 논술 /
⑦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관련 논제 해결하기 [난이도 = 고등]
[논제 1]
제시문 (가), (나)에 나타난 역사관을 비교 설명하시오. (500±50자)
[논제 2]
제시문 (다)와 자신의 역사관을 반영해 제시문 (라), (마)와 같은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런 현상이 주변국과 자국에 미치는 문제점을 서술하시오. (800±50자)
(가)
역사가의 곤경은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마도 아주 어렸을 때나 아주 늙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인간은 환경에 전적으로 휘말리거나 환경에 무조건 복종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인간은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도 못하며 환경에 대한 절대적 지배자도 아니다.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역사가와 테마의 관계다. 역사가는 사실의 비천한 노예도 아니고 사실의 포악한 주인도 아니다.
역사가와 사실과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고 주고받는 관계다. 연구 중의 역사가가 잠시 일을 멈추고 자신이 생각하거나 쓰고 있을 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반성해 본다면 알게 되는 일이지만, 역사가는 그의 해석에 따라 사실을 형성하고 그의 사실에 따라 해석을 형성하는 끊임없는 과정에 매달려 있다. 한쪽을 다른 한쪽의 우위에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가는 사실의 잠정적 선택과 잠정적 해석-이 해석에 비추어서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잠정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으로부터 출발한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 해석과 사실의 선택과 정리는 모두 쌍방의 상호작용을 통해 미묘한, 어쩌면 반쯤은 무의식적인 변화를 겪는다. 또한 역사가는 현재의 한 부분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의 상호작용이 포함되어 있다.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 꼭 필요한 것이다. 사실을 갖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으며, 따라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죽은 것이고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나의 최초의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상호작용의 과정, 즉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황문수 역) 50~51쪽
(나)
과거 사실에 대한 랑케의 주장은 과거 사실이 역사가의 마음 밖에 존재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로서의 사실은 과거에 존재하는 것이지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사실에 대해 연구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오늘 연구하든지 혹은 20년 후에 연구하든지 상관없이, 과거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 사실이 독립성과 객관성, 절대성을 가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랑케는 ‘나는 나의 자아를 소거(消去)해서 다만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하며 강대한 모든 힘을 눈앞에 나타나게 하려고 할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 자아의 소거는 단순히 역사가의 자아만을 소거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왜곡하고 때로는 없는 것처럼 도외시했던 사이비 역사가들의 자아를 소거하는 것이다. 과거 사실의 객관성과 독립성이란 정치로부터 과거 사실의 독립이요, 신학으로부터 과거 사실의 독립이요, 철학으로부터 과거 사실의 독립이다. 그리고 이는 곧 역사학의 독립을 의미한다. 과거 사실 그 자체를 위한 학문, 역사를 위한 역사학, 바로 그것이 진정한 역사학이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랑케를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과거 사실의 절대성과 객관성에 근거한 과거 사실의 독립과 역사학의 독립. 과거 사실은 과거 사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과거 사실이 어떤 다른 이념이나 신념 혹은 이해관계에 봉사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왜곡되어 더 이상 과거 사실일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사실은 과거 사실 그 자체에 봉사하는 것 이외에 어떤 이념이나 신념 혹은 이해관계에 봉사할 수 없다.
과거 사실은 과거 사실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가져야 한다. 과거 사실이 어떤 이념이나 이론의 부분이기 때문에 가치를 지닌다면, 그것은 그 전체인 이념이나 이론에 봉사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과거 사실은 그 자체로 전체여야 한다. 과거 사실 그 자체에 봉사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과거 사실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며 가치를 지닌다는 랑케의 생각은 한마디로 ‘사실의 개별성’ 혹은 ‘사실의 개체성’으로 요약된다. - 조지형 <랑케 & 카>에서 발췌
(다)
역사라는 말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사실’과 ‘조사되어 기록된 과거’라는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history as past)’와 ‘기록으로서의 역사(history as historiography)’라는 두 측면이 있다. 전자가 객관적 의미의 역사라면, 후자는 주관적 의미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객관적 사실, 즉 시간적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모든 과거의 사건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란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과거 사건들의 집합체가 된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역사가가 이를 조사하고 연구하여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역사가의 가치관과 같은 주관적 요소가 개입하게 되며, 이 경우 역사라는 말은 기록된 자료 또는 역사서와 같은 의미가 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운다고 할 때 이것은 역사가들이 선정하여 연구한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거의 모든 사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이 특별히 의미가 있다고 선정한 사실에 한정되어 있으며 이를 연구할 때는 과학적 인식을 토대로 학문적 검증을 거쳐야 한다. -고등학교 <국사>(교육인적자원부) 10쪽
(라)
일본의 역사학계는 보수적 사학자들이 주도한다.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주로 이들에 의해 집필되며, 이들 보수적 역사학자들과 견해를 같이하는 관료(심의관)들에 의해 검정된다. 그러므로 역사의 왜곡은 이중 삼중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예컨대 1995년 시작된 <자유주의사관 연구회>는 도쿄대학 교육학 교수인 후지오카 노부카츠가 이론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후지오카는 “일본인이 일본이라는 국가에 혐오감을 갖도록 만드는 교육”에서 벗어나 “일본인의 입장에서 자국의 역사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일본 자유주의사관의 출발점이다. 일본의 보수우익 학자들은 자학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일본의 국익을 더 이상 지켜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새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다(2001년 출판).
다음은 일본 새 역사교과서 내용 중 왜곡된 사례이다.(중략)
“한국강제병합: 한반도는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만 군사적으로는 불안정하였다. 영국, 미국, 러시아 3국 모두가 지배를 원했으나 실제로 통치를 유지하기는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지배하고 싶지는 않지만 또 다른 나라가 차지하는 것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지역에 대하여 통치자로서 신흥국 일본의 등장은 3국에 있어 좋은 상황이었다. 일·러전쟁 후 일본은 한국에 한국통감부를 두고 지배권을 강화하고 있었다.
1910년 일본은 한국을 병합하였다(한국병합). 이것은 동아시아를 안정시키는 정책으로서 구미열강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것이었다. 한국병합은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 권익을 방위하는데 필요하였으나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반드시 이익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실행된 당시로서는 국제관계 원칙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일본 새역사교과서 검정 신청본 242쪽)”
-국회도서관 발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관련 자료전》자료집 중 ‘일본 역사교과서의 왜곡’ 내용 발췌.
(마)
중국정부는 2002년 2월 사회과학원 산하의 ‘중국변경사지연구중심(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에서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명칭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이는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아래 고구려는 물론, 고조선, 부여, 발해, 현재의 한국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업이었다.
동북공정의 중심을 이루는 것 가운데 하나는 고구려의 성격 규정이다. 즉 고구려의 전체 역사를 현재 및 미래의 국가 발전 전략에 합당하게 논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포장하여 자국의 역사 속에 편입시키려는 역사적 노력의 일환이다.
따라서 고구려의 건국과정과 귀속문제 등 다양한 내용들이 중국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되었다. (중략) 수당(隋唐) 간의 전쟁에 대한 중국인들의 평가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우리가 삼국통일전쟁을 신라가 주도하여 성공적으로 끝낸 국내전쟁으로 파악하듯이, 이 전쟁 또한 중국 내부의 국내전쟁으로 본다. 결국 고구려를 중국지역에서 명멸하였고, 또 지배를 받았던 다른 종족 내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소수지방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점에서 중국의 대다수 학자들은 이미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둘째, 중국의 통일정권이 수립되었다고 본다. 당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강력했고, 오래 존속한 나라이다. 오랜만에 중국지역을 통일한 수(隋)를 이어받은 당(唐)은 수의 뒤를 이어 고구려등 주변 국가를 정복하여 통일 사업을 완료했다는 것이다.
-윤명철, <고구려와 수당 간의 전쟁에 대한 중국 ‘동북공정’의 시각>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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