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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표준어는 규범속에만 있지 않아

등록 2007-10-21 15:35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김철호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 [난이도 = 중등~고1]

1. ‘국어’와 ‘우리말’

2. 살아 있는 말이 ‘표준어’다

3. 띄어쓰기를 얕보지 말라①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맞춤법을 배운다. 그래서 글을 쓸 때 내 표현이 맞춤법에서 벗어나지나 않았는지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한글 맞춤법>에는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는다’고 나와 있다. 맞춤법을 지키려면 표준어를 알아야 한다. 표준어는 국립국어원의 <표준어 규정>에 나와 있다. 그런데 나라에서 표준어를 만든 이유는 뭘까?

부산 친구가 서울 친구한테 “포장마차에 가서 담치나 먹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서울 친구는 “차라리 홍합을 먹지” 한다. 서로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홍합이 담치예요” 하면서 “두 분, 다음부턴 ‘홍합’으로 통일하시죠?” 하고 제안한다. 표준어의 역할이 바로 이것이다. 지역마다, 또는 사람마다 다른 말을 하나로 통일해서 의사소통을 더 쉽게 해주자는 것이다. 공문서나 방송에서 표준어를 중시하는 까닭은, 그래야 뜻을 알아듣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홍합’과 ‘담치’가 같다는 걸 알게 된 두 친구가 두 말을 섞어 쓴다고 해서 우정에 금이 갈까? 굳이 ‘홍합’만을 살리고 ‘담치’를 죽이느니, 둘 다 살려놓고 서로 상대의 말을 익힌다면 어떨까? 그러면 언어의 다양성이 살아나지 않을까? 문화의 생명은 다양성이 아니던가.

또 하나 생각할 문제가 있다. 표준어는 서울말을 중심으로 삼는다(‘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물론 서울이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온 수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지방 말들을 모두 ‘비표준어’로 깎아내려도 되는 것인가?

팔도 사투리로 범벅이 된 <토지>나 남도 방언의 보고인 <태백산맥>은 전국민의 애독서가 되었다. 가게 출입문에 ‘미시오’ ‘당기시오’ 대신 ‘밀어유’ ‘땡겨유’ 하고 적어놔도 손님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는커녕 기분좋게 미소를 짓는다. 현실이 이런데도 유독 서울말을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있는 <표준어 규정>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지방 말을 입에 붙인 수많은 사람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표준어 규정>이나 <한글 맞춤법>을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문규범은 되도록 지키는 것이 좋다. 그래야 내가 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범의 역할은 거기까지만이다. 어문규범은 ‘중요한 참고자료’일 뿐이다. 규범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규범이 내친, 혹은 규범에 나와 있지 않은 ‘살아 있는 말’을 죽일 수가 있다. 살아 있는 말을 받아들여 규범에 반영하는 게 옳지, 살아 있는 말을 규범에 맞춰 잘라버리는 건 뿌리와 이파리가 뒤바뀐 꼴이다.

영어에는 영국이나 미국 정부가 정한 표준어 같은 게 없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한테는 <웹스터 사전>이나 <옥스포드 사전>에 나와 있는 말이 ‘표준적인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두 사전의 권위를 인정해서 거기에 맞춰 언어생활을 하고 있다. 영어의 ‘표준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선택한 결과다.

내가 쓰는 말이 규범에 맞는지 몰라서 고민하는 건 둘째로 할 일이다. 첫째로 할 일은, 내 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한테 통할지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표준어는 규범 속에만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쓰는 말이라면 다 표준어 자격이 있다.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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