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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과학자의 사회적책임

등록 2007-10-28 15:14수정 2007-10-28 16:09

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 비타민
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 비타민
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비타민 / 난이도 고2~고3

■ 교과서 훑어보기

과학 지상주의 관점에서 도덕 규범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과학 지상주의는 우리가 도덕 문제를 생각할 때 사용하는 개념과 어휘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도덕>(교육인적자원부) 19쪽

과학자의 외적 책임은 사회에 대한 책임이다.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 과제의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 항상 주의해야 하며, 악용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을 분명하게 경고해야 한다. 그리고 해로운 결과가 예상되는 연구, 즉 기대되는 유용함보다 해가 더욱 많은 것으로 예상되는 연구는 마땅히 중단해야 한다. ―<시민 윤리>(교육인적자원부) 89쪽


■ 교과서에서 논제 찾기

‘과학자는 연구 결과에 대해 사회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끝나지 않고 있지. 이를 놓고 과학자에게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견해가 의외로 많아. 과학 기술은 그 자체를 놓고 볼 때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 없다는 거야. 같은 칼이라도 어머니 손에 쥐어지면 음식을 만드는 식칼이 되지만, 강도의 손에 쥐어지면 흉측한 살인 무기가 되기도 하거든. 그런데 후자를 들어 칼 그 자체가 살인을 야기했다고 한다든가, 칼을 만든 사람이 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이라는 거지. 설사 칼 제작자가 칼의 악용 가능성을 알고 있었어도,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쓰는가는 전적으로 사용자에 달려 있다는 거야. 그런데 이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과학은 ‘객관적’이며 ‘가치 중립적’이라는 두 가지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어. 이 두 문제를 집중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여기에 있지.

첫째, 과학이 객관적이라는 말은 과학 법칙이 ‘보편 타당한 진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과학 법칙은 시대가 바뀐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고, 적용 대상이 무엇이건 완벽하게 적용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는 거야. 따라서 보편 타당한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는 거지. 객관적인 것에 대해서는 가치 판단을 할 수 없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야.

하지만, 어떤 과학 법칙이 보편 타당하려면 그 법칙이 적용되는 분야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예외도 없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해. 운동에 관한 보편 타당한 법칙이 있다고 하면 어떤 운동을 막론하고 모두 이 법칙에 의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 법칙에는 예외가 있어. 예를 들어, 뉴턴의 고전 역학은 처음에는 우주의 모든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처럼 여겨졌지만, 오늘날 원자 세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어. 이처럼 과학 법칙은 보편 타당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 또한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어.


‘과학자의 사회적책임’(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 비타민)
‘과학자의 사회적책임’(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 비타민)

아울러, 과학은 관찰과 관찰 결과의 해석에 주관적 요소가 개입하기 때문에,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어. 과학은 관찰을 통해 현실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모으고 이 자료에 근거해 이론적인 가설을 세워 이를 검증함으로써 지식을 확장하지. 그런데 사람이 사물을 관찰하는 과정에는 관찰자의 주관이 반드시 개입하게 돼. 즉, 관찰자가 가지고 있는 사전 지식이나 가치관에 따라 동일한 대상물의 관찰 결과가 달라지지. 나아가, 관찰 결과의 해석에서도 주관적 요소가 강하게 작용해. 과학자는 과학의 주류 논리에 입각해 관찰 결과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아주 강한데, 이를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하였어.

둘째, 과학이 가치 중립적이란 말은 과학 활동이 사회와 맺는 관계에서 파생되는 성질인데,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어. 과학이 가치 중립적이려면, 첫 번째로 그 발전 방향이 사회적 요인과 무관하게 정해지며, 사회적 요인이 개입한다고 하더라도 발전의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늦출 수 있는 정도일 뿐이지 그 방향을 바꿀 수 없어야만 해(발전 방향의 중립성). 그리고 두 번째로는 과학의 발전 결과 나타난 지식이나 그것을 응용해 나타난 기술이 사회 전체에 불편 부당(不偏不黨)한 영향을 미쳐야만 하지(연구 결과의 중립성).

하지만 이 잣대로 비추어 보았을 때 과학 활동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아. 우선 과학의 발전 방향은 연구비가 어떻게 배분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 예컨대, 생물학 내에서도 연구비가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태학 연구보다 ‘상업적으로 유용한’ 생명 공학 연구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학 연구가 가치 중립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

이는 가치 중립성의 두 번째 차원으로 연결되는데, 과학 연구가 내놓은 결과가 종종 사회 성원 중 일부에게만 이익을 주고 대다수 사회 성원들이나 자연 환경에 대해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연구 결과가 가치 중립적이라는 관점도 받아들이기 어려워. 예컨대, 처음에는 놀라운 과학의 개가로 평가되었던 프레온 가스가 지금에 와서는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몰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이처럼 과학은 객관적이지도, 가치 중립적이지도 않아.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점점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이 같은 점에 비추어 볼 때 과학자의 책임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어. 따라서 과학자들은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이 연구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고, 과학 연구 결과가 사회에 나와서 잘못 사용될 경우에는 이를 비판하고 억제하는 일을 수행해야 해. 이는 과학자들이 막중한 책임을 지닌 전문가 집단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21세기의 거대 과학(Big Science) 시스템 밑에서 세분화·전문화된 연구만을 수행함으로써 연구의 자율성을 잃어 가는 과학자 집단 자신의 소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

박용성 <교과서와 함께 구술 논술 뛰어넘기> 저자, 여수여고 교사

위 논제와 관련된 기출문제(2005학년도 서울대 논술 문제)는 인터넷 한겨레(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기출 문제에 대한 박용성 선생님의 동영상 강의는 전라남도교육정보원(www.jnei.or.kr)에 들어가 ‘인터넷교육방송→고교논술→실전논술’순으로 검색하면 무료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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