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생들이 ‘공부’를 특기와 적성으로 강요받는 고교 시절,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 이들의 대학 합격 소식이 반갑기만 하다. 사진은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에 참여한 학생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대학에 갈 때 진로와 적성을 고려하라는 말은 고리타분하지만 진리다. 입학사정관제 등 자기 전공에 대한 열정과 적성을 지닌 학생을 뽑는 전형이 생기는 이때, 고교생들이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원칙이기도 하다. 좋은 대학, 성공이 보장된 학과가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대학과 내 적성에 맞는 학과를 찾는 데 고교 시절을 아낌없이 투자한 이들의 대입 성공 사례는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목표 뚜렷한 학생들 ‘나의 대입 성공기’
사회복지사 꿈 박계숙양 가톨릭대 합격
“병원 봉사·방송반 활동 끌리는 일 열심히 했다”
박계숙(19·경남 창원 남산고)양한테 고교 시절은 치열한 진로 탐색의 시간이었다. 고교 1학년 때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미리 경험해 보고 싶었다. 창원의 노인전문요양병원에서 매주 봉사활동을 했다. 두 시간 남짓 노인들의 말벗이 돼주는 봉사였다. 명절을 빼고는 한 주도 거르지 않았다. 시험 때는 교과서를 들고 가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읽어주며 시험공부를 대신하기도 했다. 그렇게 꼬박 90시간을 채웠다. 중학교 3년 내내 청소년 수련관에서 봉사 동아리 활동을 하며 쌓은 경험까지 더하면 박양의 꿈은 사회복지사로 굳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고교 2학년이 된 뒤 봉사활동 경력을 쌓는 일을 그만뒀다. “사회복지사 말고 아나운서도 되고 싶었거든요. 내 적성에 맞는 일인지 시험해 볼 기회가 고교 시절 말고 또 언제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죠.” 방송반 활동에 뛰어들어 아나운서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경상남도 교육영상 축제’에 참여해 장려상도 받았다. 방송부 활동을 하며 후배들과 지낸 경험은 리더십을 쌓는 데도 좋았다. 2학년 끝 무렵에 전교 부회장 당선에 밑거름이 됐다. 봉사활동 경력과 더불어 다양한 과외활동 경험은 박양이 가톨릭대 입학사정관제 전형인 잠재능력 우수자 전형에 합격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사회복지학과가 있는 사회과학부에 지원했다.
물론 이 화려한 경력은 대학 입학을 위해 일부러 만든 게 아니다. “대학 갈 때 도움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있다는 것도 고3이 돼서야 안 걸요. 그냥 저는 다양한 과외활동이 인생의 밑거름이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을 뿐이에요.”
결국 박양은 사회복지사를 선택했다. 태생적인 발음의 한계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아나운서를 ‘버린’ 이유다. 대학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도 미처 하지 못한 다양한 진로 체험을 고교 시절에 해낸 그는 인생을 몇 년이나 앞서 살고 있는 걸까. “고딩들은 겨울방학에 주로 모의고사 몇 점 올려야지, 문제집 몇 권 풀어야지 하는 계획을 세우는데 이보다 자기 진로를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진로가 정해지면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를 정하는 것도 쉽고요. 그러면 그 대학이 요구하는 대로 공부할 수 있어 훨씬 능률적이죠.” 후배들에게 남긴 박양의 조언이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아나운서 꿈 오승진양 경희대 합격 “기사 읽는 연습 꾸준히 무용대회 사회 경력도”
오승진(19·경남 진주 제일여고)양은 거의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한다. 경희대 입학사정관제 전형인 네오르네상스 전형으로 합격한 뒤 처음으로 서울에서 지내지만 친구들은 그가 서울 태생인 줄 안다. “여전히 사투리는 남아 있어요. 서울 친구들 이야기 하는 거 들으면서 지금도 공부 중이에요.”
그가 아나운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중2 때다.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일기예보나 신문기사를 또박또박 읽었다. 공부하다 집중이 안 될 때도 책을 큰 소리로 읽을 정도로 ‘말하기 연습’에 정성을 쏟았다.
고등학생이 된 뒤에는 직접 아나운서로 활동할 기회를 찾아나섰다. 1학년이던 2006년, 진주 지역에서 열린 ‘개천예술제 전국시낭송대회’에 참여해 고등부 최우수상을 받았다. 학교에서 시낭송 지도를 받을 수 없어서 혼자 인터넷을 뒤져 시낭송 무대 매너와 발음법을 공부했다. 2학년 때는 학교장의 소개로 ‘산사로의 춤 나들이’라는 전국 무용 대회의 사회까지 맡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사회를 보는 일에는 인간미가 필요해요. 정확한 발음이나 무대 매너보다 중요한 것은 청중의 마음을 읽는 거예요.” 매 순간 청중이 원하는 걸 꿰뚫어보고 프로그램을 융통성 있게 진행하는 게 진짜 아나운서의 구실이라는 걸 깨닫는 일은 책상 앞에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1회 한국방송 말하기능력시험’에 응시하는 등 끊임없이 학교 밖 활동을 찾았던 이유다.
그가 영어학부에 지원한 것은 통역 없이 국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는 포부 때문이다. 아나운서를 꿈꾸던 소녀는 이미 중1 때 주한미군방송(AFKN)을 수십번 따라 읽으며 훈련한 경험이 있었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 발음을 구사하겠다는 일념이었다. 발음에 대한 관심은 지적 호기심으로 성장했다.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영어 성적이 좋더라구요. 영어의 음성학적 구조가 음악의 본질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대학에 가면 꼭 연구해 보고 싶었어요.” 면접 전형에서 면접관한테서 좋은 반응을 얻은 대목이기도 하다.
“고교생한테 요구되는 것은 학업뿐만 아니라 ‘내면의 성숙’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마이크를 잡고 있는 순간 가장 행복했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안으로 성숙했다고 생각합니다.” 말 한마디도 흩뜨리지 않는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진명선 기자
박계숙(19·경남 창원 남산고)양
아나운서 꿈 오승진양 경희대 합격 “기사 읽는 연습 꾸준히 무용대회 사회 경력도”
오승진(19·경남 진주 제일여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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