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과학기술 현장
15. 차세대초전도응용기술개발사업단
16. 수자원지속적확보기술개발사업단
17. 차세대소재성형기술개발사업단
1991년 3월16일 오후, 대구시에 공급되는 수돗물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이 물을 먹은 대구시민들은 갑자기 구토, 설사, 복통 등을 일으켰다. 원인은 ‘페놀’이었다. 이틀 전인 14일 밤 경북 구미공업단지 안에 있던 두산전자에서 가전제품용 회로기판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페놀 원액 30t이 배관상 손상으로 누출돼 대구 지역 상수원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독극물이 공장에서 누출된 것도 문제지만, 취수장에서조차 페놀이 유입된 사실을 몰라 일이 커져버렸다. 이 일로 대구 지역뿐 아니라 낙동강 주변 1000만 시민이 큰 불편과 불안을 겪어야 했다.
지난 18일 서울대에서 만난 서일원(52) 교수는 수리공학을 전공한 수질오염 전문가다. 그는 수자원지속적확보기술개발사업단의 지원 아래 지난 10년 동안 ‘램스’(RAMS·River Analysis & Modeling System, 2차원 하천해석 모형시스템)를 개발하는 데 몰입했다. 램스는 복잡한 자연하천의 흐름과 오염물질의 확산, 그리고 하천 바닥의 변동을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페놀 같은 독극물뿐 아니라 발전소에서 나오는 열 폐수 등도 초깃값만 입력하면, 어떤 하천에서도 확산 속도 및 확산 범위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수질오염 사고가 발생했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죠.”
팔당호 근처 용담대교에서 오염물질을 순간 주입할 때 12시간 뒤 오염원의 움직임을 2차원 하천해석 모형시스템 ‘램스’로 나타낸 것이다. 붉은색으로 변할수록 오염 농도가 높다. 서일원 교수 팀 제공
서 교수는 하천 수질오염에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을까? “사실 하천에 대한 저의 관심은 오래된 편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낙동강에 세워진 안동댐이 큰 화제였습니다. 안동댐은 낙동강 주변의 잦은 홍수를 방지하고, 주변 도시와 농촌, 공장 등에 연간 10억t 가까운 물을 공급하며, 전력까지 생산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나타냈죠. 또한 당시 미국에서 유학중이던 외삼촌의 영향도 컸습니다. 도로나 철도, 댐 등을 건설하는 토목공학(civil engineering)의 매력을 일깨워주셨죠.”
이런 연유로 학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서 교수는 석사과정부터 하천 연구에 힘을 쏟았다. “1985년부터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어요. 당시 미국은 수질오염으로 말미암은 오염물질 확산 연구가 활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977년 제너럴일렉트릭(GE)사가 수십 년간 뉴욕의 허드슨강에 폴리염화비페닐(PCB)을 방류한 게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죠.” 서 교수는 유학 초기, 수리확산 분야를 체계화하고 수질오염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피셔(Hugo B. Fischer) 교수가 쓴 책을 접하게 됐다. 이후 그는 당시로선 생소한 ‘환경수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물을 다스리고 이용하는 일 못지않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일도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 교수 팀이 10년간 공들인 램스는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하게 됐을까? “자연하천에서 오염물질 확산을 예측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하천 지형과 유량, 유속, 오염물질의 성질 등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복잡한 수치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선 3단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1단계는 개념 모델(conceptual model) 선정입니다. 하천을 몇 차원으로 해석할까 결정하는 겁니다. 당연히 차원이 높아질수록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아집니다. 저희 연구팀은 2차원 분산모형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국내에선 처음 개발하는 건데 일종의 모험이었죠. 2단계는 수학 모델(mathematical model) 개발입니다. 복잡한 현실 상황을 수학적 표현으로 번역하는 겁니다. 이때 편미분 방정식이나 비선형 방정식 등을 적용하죠. 마지막 단계는 수치해석 모델(numerical model) 개발입니다. 수학적 표현을 포트란 등 컴퓨터 언어로 다시 번역하는 겁니다. 매우 힘겨운 과정이었지만, 마지막 3단계 수치해석 모델은 저희의 지적 재산이 됐습니다.”
서 교수 팀은 책상에 앉아 수학과 컴퓨터만 가지고 씨름한 게 아니다. 실험실과 현장을 오가며 끊임없이 램스를 테스트했다. 실험실에선 자연하천의 일반적 특징인 사행수로를 제작해 유속 및 수위 변화를 측정하고, 오염물질 유입 때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또 한강의 지천(청미천, 섬강, 홍천강 등)에 나가 현장 데이터를 수집·정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검증된 램스를 한강 취수원인 팔당호에 적용해 오염물질 유입 사고 수치모의실험을 진행했다. “한강은 수질오염 사고에 취약한 곳입니다. 취수장이 분산된 낙동강과는 달리, 팔당호 주변에 취수장이 집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수치모의실험 결과 팔당호에 페놀이 유입됐을 때 자연적으로 페놀이 빠져나가는 데 꼬박 1주일이 걸립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팔당호 물을 공급받고 있는 수도권 2400만 시민들이 1주일 동안 물을 사용하지 못할 수 있단 거죠. 하루빨리 4대강에 수질오염 사고 예·경보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서일원 교수 팀이 개발한 램스로 하천오염물질을 막을 순 없다. 그러나 램스가 보여준 모의실험 결과는 우리가 수질오염 사고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으면, 무서운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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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 수자원지속적확보기술개발사업단장 인터뷰
“수자원 통합관리 제도적 장치 필수”
우리나라 90% 이상이 도시화되었으나, 물순환을 고려하지 않은 도시 개발로 중소하천이 고갈되고 있다. 또 과다한 지하수 사용으로 전국의 지하수위가 낮아지고 있다. 급속히 진행되는 기후변화도 우리나라 수자원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인이다. 앞으로 수자원을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통합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은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에 정부는 2001년 3월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반한 수자원관리시스템 개발을 위해 수자원지속적확보기술개발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지난 24일 김승(56·사진) 사업단장과 수자원 사업단의 그간 성과 등에 대해 인터뷰했다.
2009년 현재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인가?
“1인당 쓸 수 있는 수자원의 총량과 인구만 고려한다면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된다. 그러나 수자원의 총량뿐 아니라 사회기반시설, 소득, 관리 등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한 ‘물 빈곤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같은 ‘우’ 등급 국가로 분류돼 있다. 정부나 사업단은 수자원의 수요공급계획 측면에서 물 부족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로 ‘가뭄’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현재 사회기반시설로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사업단의 대표적 성과를 꼽는다면?
“지표수 분야에선 하천의 수심·유량·유속·수질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세계 최소형 원격조종 보트(R2V2)를 개발했다. 이 보트는 상용화되어 현재 아마존강의 유량을 측정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지하수 분야에선 ‘지하수 인공함양 기술’을 들 수 있다. 현재 제주시로 흐르는 한천 상류 계곡에서 물을 아래로 흐르게 해 지하로 주입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제주시는 좀더 안정적으로 지하수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체 수자원 분야에선 하수처리수를 농업용수로 재이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사업 종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는?
“선진국 등에선 이미 통합적으로 수자원을 관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제도적 장치가 필수다. 유역별로 지방정부가 주축이 돼 이해 당사자들과 함께 수자원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물관리기본법’이 통과되면 유역별로 실질적인 통합 수자원 관리가 추진될 것이다. 이때 지난 10년 동안 사업단이 개발해 온 기술들을 폭넓게 적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조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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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히 알기
● 페놀(phenol)
물에 녹으면 약한 산성을 띠는 백색 결정이다. 요즘엔 전자제품 인쇄회로기판(PCB) 제조 공정에 주로 사용된다. 페놀은 인체에 흡수될 경우 심각한 장애나 사망을 일으키는 맹독 물질이다. 페놀 증기를 마시면 목구멍과 코가 타는 듯한 느낌이 들며, 기침, 두통, 호흡곤란 등을 겪게 된다. 페놀 증기가 눈에 닿으면 각막혼탁 증상이 나타난다. 1991년 3월 낙동강 페놀 오염사고는 페놀 유입 시기와 장소, 확산 속도를 몰라 일이 커졌다. 구미공단 두산전자에서 유출된 페놀이 대구 지역 상수원으로 쓰이는 다사취수장에 유입됐다. 페놀은 상수도 소독제인 염소와 결합해 악취가 심한 클로로페놀로 바뀌었다. 클로로페놀은 농도 1㎎/ℓ 이상일 경우 중추신경장애 등을 일으킬 수 있다.
● 상수도(waterworks)
수돗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오게 됐을까? 먼저 댐으로 강을 막아 물을 모은다. 그리고 취수탑을 세워 펌프로 길어 올려 정수장으로 보낸다. 정수는 상수도 시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침전, 여과, 살균 과정을 거쳐 수질을 좋게 만든다. 이렇게 정수된 물은 상수도관을 통해 각 가정에 보내진다. 상수도 수원(水源)은 수량이 풍부하고 수질이 깨끗하며 주변 오염원으로부터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한강 취수장은 주변 오염원으로부터 잘 보호된 편이나 팔당호 주변에 집중돼 있다는 게 약점이다. 팔당호 주변 다리 등에서 화학물질을 실은 차가 사고가 나면 수도권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을 수 있다. 낙동강 취수장은 분산돼 있긴 하나, 주변에 공장들이 많아 수질오염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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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영 기자
ijoe0691@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