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2014 수능 ‘국·영·수 독과점’ 입시전쟁 우려

등록 2010-09-12 16:55

A-B형 나뉘면서 학습부담 증가
사교육 더 기승 부리게 될 수도
사회·탐구영역 선택과목 수 줄어
다양하고 특성화된 교육 위축도
2014 수능 개편안 따져보니…

지난 8월19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중장기 대입 선진화 연구회’가 ‘대입 선진화 방안’을 내놓았다. 발표된 ‘대입 선진화 방안’에는 2014학년도 수능시험 개편방안, 입학전형 개선방안 등이 포함됐다. ‘2014학년도 수능시험 개편안’에 따르면 2014학년도부터는 수능을 두 차례 볼 수 있고 탐구영역 선택과목 수는 줄어들게 된다. 수험생의 과도한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은 국어, 수학, 영어로 이름이 바뀌고 난이도에 따라 쉬운 A형과 지금과 같은 수준의 B형으로 나뉜다. 하지만 사회·과학탐구 영역의 선택과목이 각각 1과목으로 줄어들면서 국영수 위주의 입시교육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사교육의 주범인 국영수가 대학 입시를 결정짓게 되면 사교육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교과부는 이번 개편안을 두고 3~4차례 공청회를 연 뒤 이르면 10월말 늦어도 연말까지는 수능 개편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2번의 시험 결과 가운데 높은 점수를 선택할 수 있어 좋긴 한데, 국영수 비중이 지금보다 더 높아지는 것 같아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중학교 3학년 딸을 둔 이영희(42)씨는 이번 수능 개편안을 보고 시름이 깊어졌다. 이씨가 살고 있는 용인은 비평준화지역이라 입시 경쟁이 심한 편이다. 이씨는 “지금은 수학 학원에만 보내고 있지만 앞으로 국영수가 더 강화된다면 사교육을 더 늘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광주 일곡중 3학년 이가영(15)양은 과목 수가 줄어들면 시험이 더 어렵게 출제되지 않겠느냐며 우려를 나타냈다. “선생님도 시험을 2번 보게 되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시험문제도 더 어렵게 나오지 않을까요?”

이번에 발표된 수능 개편안에 따라 수능 응시과목 수가 최대 8개에서 5개로 줄어들었지만, 국영수 비중은 강화됐다. 사회, 과학 탐구영역 선택과목 수는 각각 4과목에서 1과목으로 대폭 축소됐지만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은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A형과 B형으로 나뉘면서 국영수에 대한 학습 부담만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치우 비상에듀 입시평가실장은 “언어와 외국어를 굳이 A형과 B형으로 나누지 않아도 변별력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며 “개편안이 수능을 더 어렵게 만들면서 수험생들의 학습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별로 A형과 B형 가운데 B형에 가산점을 더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치우 실장은 “어느 대학이 B형을 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B형에 대한 공부를 당연히 하지 않겠느냐”며 “학생들이 어느 수준에 맞춰 공부를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영수 비중 강화는 학교 교육과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확정된 2009 개정 교육과정(미래형 교육과정)에 따라 학기당 과목 수가 10~13개에서 8개 이하로 줄어들었다. ‘집중이수제’ 도입으로 특정 과목을 한 학기 또는 한 학년에 몰아서 배우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또 학교 자율화 정책의 하나로 전체 수업시간의 20% 범위 안에서 교과 시수를 조정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학교에서는 20%의 수업시간을 국영수에 더 할당할 수 있다. 수능 개편안이 이대로 확정된다면 교육과정은 국영수 위주의 입시 교육으로 왜곡될 것이다.

이 때문에 내년부터 적용될 2009 개정 교육과정은 물론 수능 개편안도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않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문일고 김혜남 진학담당교사는 “고교 선택제 때문에 지금도 교육과정이 국영수 중심으로 편성되고 있다”며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교과목은 앞으로 더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 ㅌ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수능이 교육과정을 좌지우지 하는 현실에서 국영수 이외의 과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털어놓았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수능에서 다루지 않는 과목은 수업시간을 줄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성남 복정고 강연수 교사는 “한 학기에 8과목만 편성하게 되면, 국영수 이외의 과목은 집중이수제로 한 학기에 몰아서 다 배워야 한다”며 “국영수 교사는 부족하고 사회나 과학 교사는 남는 등 교사 수급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수능 선택과목이 아니면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입시 과목 위주로 자습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용산고 오세운 교사는 “학생들이 국영수 이외의 과목은 시험을 보지 않으면 공부를 하지 않는다”며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국영수만 잘하는 바보를 양성할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는 ‘학교 자율화’와 ‘교육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학교 현장은 거꾸로 가고 있는 모양새다. 김성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은 “학교가 전략적으로 입시에 도움이 되는 과목만 개설할 수 있다”며 “학교 교육과정이 획일화되면서 학생들이 다양한 수업을 들을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진로에 맞는 특성화된 교육과정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인문대에 가든 공대에 가든 진로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은 국영수에만 몰입해야 한다.

입시 위주의 고교 교육이 최상위권 대학을 가려는 학생들에게만 집중하면서 학력 차별을 강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용인 흥덕고 이범희 교장은 “국영수가 강화되면 학력이 뒤처지는 학생들은 더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게 된다”며 “학생들이 입시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다양한 체험활동과 교과가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동고 조성호 교사는 “단순히 입시 부담을 줄여준다는 목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고등학교 교육을 왜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도순 한국교육네트워크 이사장은 “학생들의 잠재력을 중시하는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겠다면서 국영수를 강화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수능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입학 전형 안에서 수능 비중이 높다면 고교 교육도 입시위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능이 여전히 대학에서 학생들을 평가하고 선발하는 기준이 된다면 학교 교육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