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3시30분께 서울서부지법 406호 법정 피고인석에는 말간 얼굴의 청년이 앉아 있었다. 평화주의 신념으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해 재판에 넘겨진 김형수(33)씨는 긴장된 듯 연신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2017년 12월과 이듬해 2월 각각 예비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벌금 50만원씩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이날 항소심에서 검찰은 그가 2011년 11월 입대해 군 복무를 마친 경험을 들어 그의 양심이 타협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려고 했다. “(입대) 당시 형사처벌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 신념이 확고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답변”이라며 눈물을 보인 그에게 검찰은 “입대 당시 신념과 신앙보다 전과자로서 불이익을 피하고자 하는 생각이 우선했던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신념은 태어날 때부터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취지의 질문이었다.
그러고는 가정을 전제한 물음을 이어갔다. “우리나라가 침략을 받는 상황에서도 방어를 위한 군사행동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이에 김씨가 “그렇다”라고 답하자, 이번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가족 중 1명이 입대해야 할 상황이어도 입대할 생각이 없는가”라고 몰아붙였다. 그가 왜 병역을 거부하는지는 검찰의 관심 대상이 아닌 듯 보였다.
평화주의 신념으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해 재판에 넘겨진 김형수(33)씨(사진 오른쪽). 김형수 제공
<한겨레>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자 7명에게 받은 2019~2021년 작성된 검찰 피고인신문조서·의견서를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백승덕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추지현 서울대 교수(사회학)에게 의뢰해 분석해보니,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유도성 질문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동석 교수는 이런 질문을 두고 “신문을 가장한 괴롭힘”이라며 “검찰은 피고인에게 ‘총을 들겠다’는 답을 얻으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그의 삶과 태도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없을 정도의 중대한 모순이 있는지 증명하는 구실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 신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연결지은 ‘집총(총을 드는) 행위’였다. “남아메리카에선 무장 게릴라들이 수녀들을 강간하고 살해한 적이 있고, 우리나라도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잔학한 살상이 있었다. 당시 승병과 의병은 칼과 창을 들었는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종교적 이유가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로 대체복무를 처음 인정받고, 1심 재판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오수환(32)씨의 검찰 신문 내용이다. 현역병 입대를 거부한 시우(활동명·34)씨도 “5·18 민주항쟁에서도 일부 시민은 민주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폭력적 방법을 택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검찰 신문을 받았다.
특히 검찰은 가족과 지인을 연결지어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물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판단하려고 했다. 검찰이 시우씨에게 신문에 앞서 미리 건넨 질문지엔 “일본군이 성 노예를 삼기 위해 지인 여성들을 데려갈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제대로 된 군사력을 갖지 못해 위안부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닌가”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난 2월 병역거부로 징역 1년6개월 형을 확정받은 오경택(33)씨도 “가족 등이 외부적 폭력으로 생명의 위협이 있는 경우,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이상(활동명·32)씨는 이런 검찰의 신문에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질문은 그만해 달라”고 저항했지만, 검찰은 “상시적으로 발생할 문제에 대해 신념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묻는 것”이라며 멈추지 않았다.
재판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9년 11월 김형수씨의 항소심 첫번째 신문 때 재판장은 그에게 “가족을 누가 공격하려고 칼을 들이대는 순간에도 칼을 발로 차지 않을 것인가”라고 물었다. 검찰이나 법원이 극단적 상황을 가정해 모든 폭력을 거부하는 절대적 비폭력을 ‘양심’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가정을 전제로 한 질문으로 개인의 양심을 심사하고, 절대적 비폭력을 양심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짚었다. 오동석 교수는 “추상적 가능성만으로 양심을 심사하는 것은 위헌성이 높다”며 “모든 폭력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정성을 부정하는 국가적 행위는 그 자체로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추지현 교수도 “정당방위에 대한 판단도 폭력이 방어를 위해 불가피한 최후수단이었는지를 심사한다”며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지배를 위한 폭력과 생존이나 공존을 위한 최후의 폭력을 동일하게 간주하는 것은 5·18 민주화운동이나 항일투쟁의 가치를 절하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납세까지 문제 삼으며 양심의 진정성을 시험했다. 검찰은 오경택씨에게 “피고인이 납부하는 세금이 군대를 위해 사용되는데 군대 유지를 위해 조력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세금이 국방비로 쓰여 군대가 유지되는데도 오씨가 세금을 내는 것은 그의 양심이 모순적이라는 논리다. 백승덕
연구원은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나라들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부정하기 위해 자주 활용한 비판”이라며 “1984년까지 운영된 독일 국방부 산하 심사위원회가 ‘납세 자체가 연방군을 돕는 것’이라며 대체복무 신청을 기각해 논란이 된 납세 거부 주장을 30여년이 지난 한국 검찰이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체복무 도입 취지를 부정하거나 국민 정체성까지 의심하는 질문도 있었다. “병역거부로 대한민국을 수호할 군대가 사라져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줄 국가적 토대가 상실될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봤는가?” 지난 2월 병역거부로 징역 1년6개월 형을 확정받은 홍정훈(32)씨가 받은 검찰 신문이다. 김형수씨도 “대한민국 군대가 유지되기 때문에 평화가 보장된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추 교수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국방의 의무와 배치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대법원 판결이나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와도 맞지 않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앞서 헌재는 2018년 6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병역자원이나 전투력 감소를 논할 정도로 의미 있는 규모가 아니고, 병역자원 손실이 발생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병역거부와 무관한 성 정체성을 공격하기도 했다. 성 소수자인 시우씨는 “여성과의 결혼이 굳이 아니더라도 동성혼을 포함해 향후 아이를 입양할 수도 있는가”란 말을 검찰 신문에서 들어야만 했다. 오수환씨도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는데도, 검찰은 그에게 “동성을 좋아하는 성 소수자인가? 집단주의 문화와 동성애 처벌 반대도 병역을 거부한 사유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오 교수는 “병역거부와 무관한 사안에 관해 입장 표명을 강요하는 것은 전형적인 양심의 자유 침해인 동시에 사생활 비밀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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