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송도에서 가죽공방을 운영하는 강지우씨. 이우연 기자
‘20대 사장님’이 늘고 있다. 단순 체감이 아니다. 20대 소상공인 사업체 수는 2019년 6만9000개에서 2020년 18만2000개로 1년 전보다 164% 증가했다. 같은 기간 10.3% 증가한 30대, 소폭 감소한 40대 이상 연령층에 견줘 20대 창업은 도드라진다. 코로나19 이후 중장년층 자영업자 폐업이 잇따르는 상황에서도 청년들이 창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창한 유니콘 기업이 아닌 자신만의 작은 회사와 가게를 꿈꾸는 7명의 ‘20대 사장님’을 만나 희망, 실패, 시행착오 속에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얘기를 들었다.
“망하더라도 잘리는 직업은 갖고 싶지 않아서”
조선기(29)씨는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바를 덜컥 차렸다. 그는 10년차 배우다. ‘연기로 인정받겠다’는 일념으로 연기판에서 버텼지만 코로나19는 얼마 없는 오디션 기회마저 빼앗아갔다. “잘나가는 스타급 배우들에게는 코로나19 영향이 별로 없겠지만, 저 같은 무명 배우들에게는 오디션 기회가 정말 주어지지 않아요. 영화산업 전체가 힘들어지니까, 찍는 영화 수 자체도 줄어들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오디션 볼 기회도 많이 사라졌어요.”
2020년 6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활비를 책임지던 서울 대학로 요리주점 매니저 일도 관둬야 했다. “한달 매출이 5, 6천만원일 정도로 손님 많은 곳으로 유명했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니까 한달 매출이 300만원까지 곤두박질쳤어요. 사장 형이랑 친한 사이였는데, 차마 알바들에게 ‘그만둬 달라’는 얘기를 못 하더라고요. 매니저여서 알바 자르는 일을 대신 했어요. 그러고 나서 결국 저도 그만둬야 했어요.”
그가 창업을 택한 이유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기만 해왔는데 이제 와서 취업할 곳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30대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또 다른 알바로 겨우 돈을 벌면서 살고 싶지 않았어요. 소규모 투자로 그나마 수익을 낼 수 있는 무언가는 창업밖에 없더라고요. 벼랑 끝에서 내릴 수 있는 마지막 선택? 가게 차려서 망하는 두려움보다 벼랑 끝이 더 무서웠어요. 더는 잘리는 직업을 갖고 싶지 않아요.”
모아둔 돈과 부모님 도움으로 종잣돈 5500만원을 만들었다. 그래도 모자라 공사장 등에서 일해 보탰다. 바를 차리고 얼마 뒤 ‘위드 코로나’ 정책에 따라 밤 11시로 영업제한이 풀렸다. 좋을 때는 하루 100만원도 벌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영업제한 시간이 밤 9시로 강화되자 올 것이 왔다. 매출이 0원인 날도 많다. 그래도 아직 좌절하지 않는다. “가게에서 사람들이 웃으며 즐기는 모습을 볼 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코로나19로 조씨 같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두달 전 발표한 ‘2021 예술인 실태조사’를 보면, 코로나19 이후 예술활동 횟수와 수입 모두 감소했다. 예술작품 발표 횟수는 2018년 1인당 평균 7.3회였던 것이 2021년 조사에선 3.8회에 그쳤다.
홍다연(27)씨도 지난해 온라인 창업을 했다. 홍씨 역시 고등학생 때부터 연기 하나만 보고 살아왔다. 코로나19로 연기 일감이 줄었고 꿈도 접어야 했다. 항공사 스튜어디스인 동갑내기 친구가 지난해 2월 무급휴가 상태가 되며 수입이 끊기자, 두 사람은 의류 온라인 쇼핑몰을 차렸다. 그동안 모은 돈과 신용대출 받은 1000만원이 종잣돈이다. “아직 한달 수익이 3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밖에 안 돼요.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 결혼할 돈도 모아야 해서 사업을 어떻게든 이어나가야 해요.”
회사 생활의 답답함,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용기를 내어 ‘나만의 일’이라는 꿈을 좇는 청년들도 많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서 2년째 가죽공방을 운영하는 강지우(30)씨는 2018년 꽃배달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창업 꿈을 품었다. “문과를 졸업해서 그런가 기술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어요.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면서 안주하는 스타일보다는 나만의 일을 찾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회사 생활이 창업 욕구를 자극했던 것 같네요.”
머릿속으로 그렸던 물건을 실제로 만들었을 때, 손님들이 ‘진짜 이걸 만들어 주네요’라며 반응을 보일 때 강씨는 보람을 느낀다. “손님들은 필요한 걸 얻고,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걸 만드니 서로 기분이 좋아요.”
1월3일 오후 2시께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이진훈씨가 자신의 사업 아이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자신만의 패션브랜드를 만들고 지난해 8월부터 온라인 의류사업을 시작한 이진훈(25)씨 역시 회사의 톱니바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컨설팅사에서 인턴으로 잠깐 일했는데 ‘이게 내 미래면 회사를 계속 다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0대 남성 팀원들이 매일 야근하고 회사에 종속돼 살더라고요.” 창업 뒤 가장 뿌듯한 순간은 고객들이 상품에 담긴 ‘지속가능한 상품 안에 젊음의 가치를 담는다’는 메시지에 공감할 때다. “아직 적자를 보고 있지만 계좌가 0이 되기 전까진 열심히 할 거예요.”
지난해 여름부터 온라인에서 휴대전화 케이스와 티셔츠를 팔기 시작한 계민기(22)씨는 창업을 ‘자유’라고 말했다. “자기 주도적인 진로를 택하고 싶었어요. 돈만 바라보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며 내 꿈을 이루는 걸 목적으로 하고 싶어요.”
학벌, 취업, 소득, 자산의 연쇄고리가 만들어내는 양극화를 뛰어넘는 발판으로 창업을 택하기도 한다. 노진욱(가명·25)씨는 대학 졸업 뒤 가구 상하차 아르바이트 등도 하고 중소기업도 다녔다. 최근 회사를 그만두고 헤어·메이크업 관련 플랫폼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취업해서 돈 벌려면 어느 정도 이름 있는 기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벌이 좋아야 하잖아요. 그렇지 못한 대다수 평범한 청년들에겐 돈과 미래를 준비하는 수단으로 창업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닐까요.”
지난해 가을 최은영(가명·28)씨는 29㎡(9평) 남짓한 가게에 홀로 앉아 있는 날이 늘어갔다. 지난해 5월 카페 문을 연 최씨는 결국 1년을 못 넘기고 지난해 말 폐업했다.
지난달 3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서 만난 최씨는 굳게 닫힌 카페 문에 덕지덕지 붙은 광고 전단을 떼어냈다. “아직 폐업 신고 전이에요.” 웨딩숍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7년 동안 일한 최씨는 지난해 3월 퇴사했다. 코로나19로 재작년 여름부터 웨딩숍 사정이 어려워졌다. 최씨 월급은 150만원 남짓으로 줄었다. “새로 바뀐 대표가 무급휴가로 주말만 일하거나 일주일에 세번만 일하는 걸로 계약하자고 하더라고요. 이 돈으로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지난 1월3일 수원시 장안구에 최은영씨가 차린 카페. 박지영 기자
21살부터 메이크업 일 말고는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최씨는 평소 관심이 있던 카페 창업에 도전했다. 유튜브 영상과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카페 창업 관련 정보를 얻었다. 먼저 카페를 차린 친구 조언을 들으며 ‘사장님’ 공부도 했다고 한다. 가게 자리를 알아보고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갔다.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놓은 돈까지 2000만원이 들었다.
최씨가 창업이라는 두 글자 뒤에 수많은 노력과 시행착오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매장용 에어컨, 카드결제 포스기, 시시티브이(CCTV) 설치부터 음료 제조까지 모든 결정은 최씨 몫이었다. “모든 게 처음이니까 사소한 기계 설치도 딱딱 제대로 되는 게 없었어요. 너무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울기도 많이 울었죠.”
개업 후 처음 3개월 동안 월 매출은 200만~300만원 정도였다. 매출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카페 문 열고 4개월째부터 매출이 월 100만원 밑으로 떨어졌어요. 50만원 월세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마다 프리랜서로 메이크업 일을 다시 했어요.” 그는 인건비가 아까워 아르바이트를 두지 않고 주중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온종일 카페를 지켰다.
쉬는 날 없는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직장 다닐 때는 쉬는 날도 있고 마음 편하게 놀기라도 했을 텐데, 지금은 쉬지도 못하고 벌지도 못한다. 차라리 직장에 다시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계속하셨어요.”
지난해 12월 중순 가게를 내놓자, 곧 최씨와 같은 20대 여성 2명이 가게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자매 사이로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를 내신다고 하데요. 그 순간 남에게 이 가게를 주기 싫은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섭섭했죠.”
매일 성공을 꿈꾸는 수많은 창업 신고가 쏟아지고, 꺾여버린 희망을 증명하는 폐업 신고가 쌓여간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1 청년체감 경제고통지수 분석’ 보고서를 보면, 29살 이하 개인사업자 폐업률은 2020년 20.1%로, 전체 평균(12.3%)의 1.6배에 이른다. 보고서는 “청년들이 진입장벽이 낮은 소매업·음식업 등의 창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경기불황, 동종업계 경쟁 심화 등으로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