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른바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한국전력 자회사 4곳과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모두 8곳을 28일 압수수색했다. ‘삼성그룹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을 놓고는 삼성전자와 삼성웰스토리 본사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강제수사에 들어갔다. 정권교체기에 검찰이 현 정부와 대기업을 향한 수사에 동시다발적으로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동부지검 기업·노동범죄전담부(부장 최형원)는 이날 산업부 산하 한전 발전 자회사인 한국남동·남부·서부·중부발전을 비롯해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에너지공단 등 8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지난 25일 산업부 압수수색에 나선 지 사흘 만에 공기업 8곳을 추가로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의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산업부가 산하 공기업 기관장들을 압박해 사표를 받아냈다는 내용이다. 2019년 1월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하며 백운규 전 장관 등을 동부지검에 고발했는데, 검찰은 고발장을 접수한 지 3년이 지난 뒤에야 강제수사에 나선 것이다.
검찰이 삼성그룹을 겨냥한 수사에 나선 것도 관심거리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고진원)은 이날 경기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삼성전자 본사와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삼성웰스토리 본사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부당지원 의혹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관련 의혹을 검찰에 고발한 지 9개월 만이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6월 삼성그룹 급식 계열사인 삼성웰스토리에 사내급식 물량을 전부 몰아주고 높은 이익률을 보장해준 혐의(공정거래법 위반)로 삼성전자 등 4개사와 삼성웰스토리에 과징금 총 2349억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또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과 삼성전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검찰은 지난 9개월 동안 공정위로부터 확보한 관련 자료 검토 및 기업 관계자 참고인 조사를 벌였지만, 최근까지 강제수사엔 나서지 않았다. 검찰은 삼성웰스토리 부당지원 의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권 승계 의혹 관련성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정권교체기에 현 정부와 대기업을 겨냥한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을 두고 ‘존재감을 키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당선자의 검찰권 강화 공약을 두고 여론이 갈리는 상황에서 검찰이 대형 수사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 같다”며 “일선 현장에서는 어떤 사안이든 수사를 하려고 하는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는데, 정권교체를 앞두고 검찰 지휘부의 조직 장악력이 약해진 것도 또 다른 원인”이라고 짚었다.
한편에서는 새 정부 출범에 앞서 검찰이 ‘코드 맞추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의 경우, 대검에 보고는 했겠지만 김오수 검찰총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류 세력’에 합류하려는 동부지검 차원의 판단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더불어민주당에서 내비치고 있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견제하기 위한 수사일 수도 있다.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차원으로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삼성 수사의 경우도 기업 수사를 강조해 온 당선자의 뜻에 발맞추려는 행보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과도한 의미부여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구조가 비슷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이 지난 1월 나왔기 때문에 검찰이 이번에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선 전에 수사에 착수했다면 ‘선거에 영향을 준다는 비판을 받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심우정 동부지검장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 체제에서 법무부 기조실장으로 일했다는 점에서 새정부 코드 맞추기는 과도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를 해오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의 대법원 확정판결로 법리검토를 거쳐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 1월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에게 일괄 사표를 강요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징역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삼성 수사와 관련한 입장문을 내어 “공정위 고발과 시민단체 고발로 통상의 절차에 따라 계속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의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를 두고 정부·여당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서울동부지검이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산업부 압수수색 벌였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청부 수사로 정국 주도권을 틀어쥐고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검찰독재의 시작이 아닌지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사실상 종결 수준에 접어든 사건을 검찰이 대선 끝났다고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끄집어냈다. 아무런 추가 물증 정황이 없다. 달라진 건 정치보복을 공언해왔던 윤석열 당선자가 당선됐다는 거 하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검찰이 고발장을 접수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다가 정권교체가 이뤄지자 즉각 압수수색에 나선 것을 겨냥해 “참 빠르다”고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