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관계자들이 지난해 4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국회의원의 ‘장애 비하 발언’에 대한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소송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외눈박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갈팡질팡 대일인식, 그러니 정신분열적이라는 비판까지 받는 것 아닌가”.
국회의원들이 지난 2020∼2021년 사용한 표현이다. 장애인들은 지난해 4월 이런 발언을 장애인의 특성을 비하의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보고 이들을 상대로 차별구제 소송을 냈다.
1년 만인 15일 재판부는 이들이 장애인들에게 손해배상을 물어야 할 정도의 책임은 없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으나 해당 발언은 “장애인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며 “원고들과 같은 장애인들은 상당한 상처와 고통, 수치심 등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서 “장애인 비방 의도가 없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다” “의원 면책특권에 해당한다”고 반박한 의원들에게 해당 표현들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재판장 홍기찬)는 이날 조태흥씨 등 장애인들이 ‘집단적 조현병(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외눈박이(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정신분열적(조태용 국민의힘 의원,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꿀 먹은 벙어리(김은혜 국민의힘 의원)’, ‘절름발이(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발언을 한 국회의원들과, 박병석 국회의장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차별구제 소송에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장애인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바탕으로 부정적 의미를 담아 상대방을 공격하고 깎아내리기 위해 해당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혐오 표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원들에게 원고 1인당 1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고, 국회의장에게는 이들을 징계하고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에 장애인 모욕 발언 금지 규정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6명의 의원들은 대리인과 답변서를 통해 공통으로 장애인을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조태용·김은혜 의원은 각각 자신들이 사용한 ‘정신분열적’, ‘꿀 먹은 벙어리’라는 표현이 언론과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관용구처럼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허은아 의원은 ‘집단적 조현병’이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나온 표현이므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범위 내에 있다고 했다.
재판부 “해당 표현은 인권침해나 차별 지속시킬 우려”
재판부는 장애인들의 주장대로 이들의 표현이 모두 장애인을 비하하고 장애인에 대해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는 표현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비판 또는 비난할 목적으로 이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장애인을 사회에서 의식·무의식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혐오를 공고화해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나 차별을 지속시키거나 정당화시킬 상당한 우려가 있다”고 했다. 또한 “특정 언어가 원래의 의미에서 확장돼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그 언어가 가리키는 대상에 대한 오랜 혐오와 고정관념, 부정적인 편견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며 “이런 말과 행동은 행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말과 행동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가진 혐오와 부정적인 효과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특히 해당 표현을 사용한 자들이 혐오표현을 쓸 경우 영향력이 더 클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국회의원 지위에 있던 자들로 인권 존중의 가치를 세우고 실천하는 데 앞장서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며 “피고들의 사회적 지위로 인해 그 발언은 일반적인 국민들의 발언과 비교해 더욱 빠르고 넓게 전파될 가능성이 크고, 개인과 사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피고들의 표현은 적절치 못하고 이로 인해 장애인들은 상당한 상처와 고통, 수치심 등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1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장애인 차별 발언을 한 국회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장애인 당사자 원고들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재판부 “모욕죄 범위 지나치게 확대 우려” 장애인들 “좌절감”
다만 재판부는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기각하며 “정치적 표현에 대해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거나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 헌법상 표현의 자유는 공허하고 불안한 기본권이 될 수밖에 없다”며 “각 표현이 장애인들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장애인 개개인에 대한 모욕이 된다고 평가하게 되면 모욕죄 및 모욕으로 인한 불법행위의 성립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또한 박 의장에 대해 제기한 청구에 “원고들과 피고 박병석 사이의 분쟁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사건에 대한 판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재판을 종결하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의원들에 대한 징계와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 신설이 피고들의 행위를 직접 시정하는 조치라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소송을 제기한 장애인 당사자들은 재판 후 법원의 결정에 유감을 표했다. 장애인 당사자인 주성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간사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가리키며 “어느 당의 대표로 있는 사람의 한 마디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게 사회적 지위가 가진 말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나서서 장애인의 권리를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그 부분이 잘 이뤄지지 않아서 당사자로서 좌절감을 많이 느낀다”라고 말했다. 원고 쪽은 향후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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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초 만에 “또 좌절”…‘장애인 차별’ 발언 의원들 상대 소송 법원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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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연 기자
az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