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명예 살인’ 위협에 시달린 파키스탄 국적 외국인 가족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하라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클립아트코리아
연애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명예살인’ 위협에 시달린 파키스탄 국적 외국인 가족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하라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은 파키스탄 국적인 ㄱ씨 부부와 자녀가 인천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결정 취소소송에서 출입국·외국인청의 상고를 기각하고,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을 확정했다고 6일 밝혔다.
서울의 한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파키스탄 출신 유학생 ㄱ씨는 2016년 3월 파키스탄에 잠시 입국했다가 지금의 아내인 ㄴ씨를 만나 결혼을 약속했다. 하지만 ㄴ씨 가족은 ㄱ씨의 신분을 이유로 이들의 결혼을 극렬히 반대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여성이 가족 동의 없이 스스로 결혼 상대를 선택하면 가족의 명예를 손상하는 것으로 간주해 살해(명예살인)하는데, 이에 따라 ㄴ씨의 가족들도 결혼 상대를 스스로 고른 ㄴ씨를 구타하고 살해 협박을 했다. 같은 해 8월 이들 부부가 유학생과 유학생 배우자 체류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한 뒤에도 가족들의 위협이 계속되자, 두 사람은 2019년 3월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출입국·외국인청은 ㄱ씨 가족의 난민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의 난민 신청 사유가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난민 불인정 처분의 근거였다. 출입국·외국인청의 처분에 불복해 낸 1심 소송에서도 재판부는 “이들을 위협하는 건 일부 과격한 가족 구성원일 뿐이다. 이는 사인의 범죄 행위에 불과하고 파키스탄 사법제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이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라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달랐다. ㄱ씨 부부가 박해에 놓여있다고 보고 이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난민 신청인이 가족 의사에 반해 사회계급이 다른 상대방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생명, 신체에 대한 위협 등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 난민협약에서 말하는 박해에 해당한다”며 “원고들의 난민 인정 신청을 불허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번에는 출입국·외국인청이 2심 판단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이들을 난민으로 본 판결을 확정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