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22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정보경찰 증거인멸 혐의 관련 첫 공판기일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해 5월 이후 용산경찰서 정보관들이 “지역정보는 필요 없다. 집회관리에 매진하라”는 지시를 받아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로 인해 이태원 참사 발생 당시 현장에 이태원 지역을 담당하는 정보관이 배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관이 배치됐다면 긴급 상황 발생시 경찰의 초동대처가 빨랐을 것이라는 지적이 참사 직후부터 제기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배성중)는 22일 오후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과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 정보과 직원 ㄱ씨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박 전 부장과 김 전 과장은 참사 직후 ㄱ씨에게 핼러윈 대비 관련 자료 파일을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증거인멸 교사,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교사)를 받는다.
이날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용산경찰서 정보관 ㄴ씨는 ‘이태원 위험 보고서’를 작성하고도 집회관리에 매진하는 분위기 때문에 핼러윈 축제 현장을 챙기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태원 지역을 담당했던 정보관 ㄴ씨는 “6월부터 10월까지 대규모 집회관리로 제 지역(이태원) 정보업무를 할 여유 시간이 없었다”며 “(김 전 과장의 생각이) ‘용산서 정보는 예전과 다르다. 지역정보는 필요 없다’여서 지역정보 활동을 나가겠다고 말할 엄두도 못 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ㄴ씨는 지난해 10월26일 ‘이태원 핼러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을 작성한 뒤, 이를 김 전 과장에게 보고했지만 “크리스마스에 정보관이 배치되느냐, (핼러윈 축제는) 크리스마스 같은 거다. 정보관이 할 일이 아니다”라는 반응이 있었다고 했다. ㄴ씨는 자신의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라 ‘나가봐야 할 것 같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김 전 과장은 “주말에 집회 관리해야 하니까 안 가도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참사 당일 ㄴ씨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주변 대규모 집회관리를 하느라 핼러윈 축제 현장에 배치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ㄴ씨는 “과거엔 정보관이 (핼러윈 축제 기간) 한두명 나갔다고 알고 있다”며 “(정보관이 배치되면) 현장에서 긴급 사건이 발생했을 때 무전을 할 수 있다. 눈으로 보고 얘기하는 거라 ‘도와주세요’ 하면 즉시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참사가 발생한 뒤 김 전 과장과 용산경찰서 전 정보계장 ㄷ씨가 ㄴ씨를 불러 ‘보고서를 작성한 건 누가 알고 있느냐, 안 썼다고 하는 건 어떠냐’ 등의 얘기를 장시간 한 것에 대해선 “그런 지시가 있었지만 나는 원치 않았다. 부당한 지시였다고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ㄴ씨는 증언하는 동안 여러 번 울먹였고, 한차례 오열했다.
한편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은 보고서를 쓰면서까지 이태원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을 예상했다. 그런데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이 보고서는 책임자들이 사전에 대비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