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명 검찰총장이 26일 낮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사법처리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차에 오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정회장 처리’ 장고 들어간 정상명 검찰총장
환율하락 속 수출 타격 우려
‘아들 구속’은 내부반발 걱정
환율하락 속 수출 타격 우려
‘아들 구속’은 내부반발 걱정
정상명 검찰총장은 26일 출근길에 기자들이 정몽구(68) 현대차 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대해 묻자 “하루 종일 고민해 보겠다”고 답했다. 실제 정 총장은 이날 정 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문제를 놓고 온종일 씨름했다.
수사팀은 정 회장 부자의 처리와 관련해 여러 방안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정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는 최종 의견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정 회장이 비자금 조성과 계열사간 지급보증 등을 지시한 혐의를 강하게 부인함에 따라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고, 횡령·배임의 액수가 커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도주의 우려도 크다고 판단했다. 경제적 파장이 적지 않겠지만, 수사 결과로 판단할 때 정 회장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은 비자금 사용처를 잘 알 것으로 판단되는 정 회장의 구속이 비자금 사용처에 대한 수사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하지만 정상명 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는 법의 잣대만으로 정 회장의 구속을 결정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정 회장이 구속되면 현대차의 경영 공백이 오고, 결국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재계의 ‘하소연’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정 총장은 최근의 환율 하락 사태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현대차가 환율 하락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마당에 오너까지 구속되는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칫 정 회장 구속으로 빚어지는 경제적 충격에 대한 책임이 검찰에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 총장은 지난해 300억원대의 회삿돈을 빼내 가족의 생활비 등으로 쓴 두산그룹 총수 일가를 모두 불구속 기소했던 전례 등과의 형평성 문제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검찰 수뇌부는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36) 기아차 사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정 사장은 경영권 편법 승계의 최대 수혜자라는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의 경영이나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상대적으로 적고 편법적인 부의 상속을 단죄한다는 상징성도 있어, 여론도 어느 정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런 방안은 검찰의 명예를 걸고 의욕적으로 수사를 해온 수사팀은 물론 일선 검사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 수뇌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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