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재량에 맡겨져 형평성 시비
정작 죽어가는 사람은 외면하고
박지원·권노갑씨 몇차례나 ‘특혜‘
‘탄현 비리’도 집행정지 로비 조사
정작 죽어가는 사람은 외면하고
박지원·권노갑씨 몇차례나 ‘특혜‘
‘탄현 비리’도 집행정지 로비 조사
법원이 구속된 피고인을 질병 등의 이유로 풀어주는 구속집행정지 제도가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 ‘힘있는’ 피고인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급 장애인 정아무개(56)씨는 사기 혐의로 지난해 6월 구속기소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구속되기 전부터 당뇨 치료를 받고 있던 정씨는 한달 뒤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정씨는 지난해 11월 엉덩이에 욕창이 추가로 발생해 두번째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서울구치소도 이를 건의했지만, 법원은 또 기각했다. 정씨가 올 1월 욕창 합병증 등으로 병원에 입원하자 변호인은 세번째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법원은 그제서야 허락했지만, 정씨는 욕창 합병증이 악화돼 지난 1일 숨지고 말았다.(<한겨레> 2월20일 10면)
반면, 탈세 혐의로 2001년 9월 구속기소된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은 두달도 채 안 된 같은해 10월 말 건강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풀려났다. 김 전 회장은 2004년 상고심이 진행 중일 때는 해외여행 허가도 받았다. 대북송금을 주도한 혐의 등으로 2003년 6월 구속기소된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은 항소심에서 한차례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았고, 상고심에서는 두차례나 연장됐다.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도 2002년 8월 항소심에서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뒤 두차례 연장됐다.
이처럼 구속집행정지 제도가 형평성 시비를 낳고 있는 것은 그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101조)에는 ‘법원은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는 피고인의 주거를 제한하여 구속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고만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 재판부의 재량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고위 법관 출신인 ‘전관’ 변호사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대한변호사협회 신현호 공보이사는 “변호사 업계에서는 구속집행정지 사건에서 전관 변호사들이 일반 형사사건보다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다는 지적이 많다”고 말했다.
구속집행정지를 도피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피고인들도 많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구속집행정지를 새로 받거나 정지 상태에 있던 피고인 552명 가운데 19명이 도주해 잠적했다고 밝혔다. 이상경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해 법무부 국정감사 때 “구속집행정지는 비교적 짧은 기간(1개월 이내)인데도 많은 도주자가 발생했다”며 “해외도피 가능성이 높은 중죄인이나 경제사범은 집행정지 즉시 자동적으로 그 기간이 끝날 때까지 출국금지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영수)는 25일 경기 고양 탄현 주상복합아파트 사업 비리에 연루된 이재학(46)씨가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는 과정에서 로비가 벌어진 정황을 잡고, 지난 23일 관련자 이아무개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재학씨는 지난해 3월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낸 뒤 대법원 확정 판결 전에 도주했다가 붙잡혔다.
검찰은 “이씨가 구속집행정지를 받는 과정에 개입했다가 중국으로 도주한 브로커 2명이 지난 20일께 입국해, 23일 이 가운데 1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고 밝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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