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군 모항리 주민 임순덕(66, 왼쪽)씨가 기름을 닦은 천이 든 부댓자루를 옮기는 것을 한 자원봉사자가 돕고 있다. 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일만의 조우 ‘눈물 핑’…어민들 “이젠 살 것 같다”
‘인간 띠’ 느는 만큼 검은 바다도 점점 제 빛깔 찾아
‘인간 띠’ 느는 만큼 검은 바다도 점점 제 빛깔 찾아
12월7일 새벽,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5마일 해상에서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크레인 부선 삼성 1호와 충돌해 원유 1만2547㎘가 유출되는 사상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태안을 중심으로 11개 읍면 473곳의 어장 5159㏊와 만리포·천리포 등 해수욕장 15곳이 기름에 뒤덮였다. 바다에 기대어 살아온 주민들은 검은 파도에 삶터를 송두리째 잃은 것이다. 하지만 4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와 기름띠를 걷어내면서 복구는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주민들의 노력은 검은 절망을 점차 희망으로 바꿔가고 있다.
원유 유출 사고 스무이틀째인 지난해 12월29일 오후,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해수욕장에서 기름설거지를 하던 이정심(64)씨는 함박눈이 내리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휘이 둘러보며 말했다. “날개가 있으니 피했겄지. 지들도 여기가 고향인데 아주 떠났겄어?”
가창로(70)씨가 말을 받았다. “어제 행섬독살에 2마리 날아 다니는거 못봤남? 군인들 기름치우는 암벽 쪽에는 3~4일 전부터 날아다닌다는디.”
안방 걸래질하듯 무릎꿇고 기름을 닦아내던 최노분(60)씨가 “정말로 봤어유?”라고 묻더니 피식 웃음지었다. 이정심씨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이 마을로 시집와 40여년을 산 이씨나 칠십 평생을 산 가씨나 갈매기가 그립기는 처음이다. 삭신이 쑤셔 쉴라치면 시끄럽게 짖어대고, 떼지어 날아와서는 빨래에 ‘똥 폭격’을 해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의항은 갈매기들이 바닷가를 하얗게 덮을 만큼 많았다. 그 많던 갈매기들이 원유유출 사고가 난 지난해 12월7일 순식간에 종적을 감췄다.
이날 이후 검은 파도는 마을 남쪽 작은댕골산에서 바른쟁이산, 구리미산, 가르미끝산, 태백산을 휘감더니 무서운 속도로 마을 앞 행섬독살, 재너머 어항 등 보이는 모든 것을 검게 뒤덮었다. 해삼, 전복, 바지락, 가리비 양식장은 물론 제철을 맞아 통통하게 살오른 굴 양식장 등 마을 어장 168㏊도 검은 띠에 잠겼다.
태안반도에 갈매기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의항과 만리포해수욕장에서 갈매기들이 눈에 띈다. 주민들이 애타게 갈매기를 기다리는 건 바다 삶터로 돌아갈 날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갈매기가 돌아오는 건 먹이가 있다는 것이고, 최소한이겠지만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일 터이다. 가재분(61)씨는 “기름바다를 양동이, 세숫대야로 퍼내다 힘들면 기름을 유출한 놈들이 미워 “이눔들아!”라고 고래고래 소리도 질렀는데 그러다 보니 갈매기가 안보였다”고 전했다. 주민들이 지쳐가던 사고 사흘째 의항 바닷가에 하얀 방제복 차림의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왔다. 하루하루 자원봉사자들의 인간띠가 늘어나고 그들이 머물다간 자리가 넓어지면서 끝없을 것 같았던 검은 바다도 점점 제 빛깔을 찾았다. 20여일만에 ‘이만하면 살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김화문(62·대야호 선장)씨는 “어제 전복어장에서 기름덩이 건져내다 갈매기를 봤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눈물이 났다”며 “자원봉사자들도 우리에게 희망을 준 고마운 갈매기들”이라며 웃었다. 그러나 엄청난 절망이 희망 쪽으로 무게 중심을 조금 옮겼을 뿐 주민들에게 올 겨울은 혹독한 삶을 이어야 하는 고난의 시간이다. 이곳에서 많이 나는 굴, 간재미, 주꾸미 등의 어물은 사라진지 오래다. 어르신들은 한달여 동안 어로를 못하면서 심심풀이로 고스톱칠 용돈도 떨어졌다. 보상받으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삽 한자루들고 낙지잡아 3남매 대학 보낸 이아무개씨 등 이곳 주민 10명 가운데 7~8명은 보상 근거가 없어 애태우고 있다. 해신호 선장 박완배(56)씨는 “처음에는 내 생전에 다시 저 바다에 통발을 내릴 수 있다면 만선을 못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다”며 “아직도 기름때가 적지 않지만 열심히 치우고 가꾸면 언젠가 꽃게들이 돌아오지 않겠느냐”고 속내를 내보였다. “방제작업을 하면서도 갑판에 쌓아놓은 통발을 살피고 망대에 파란 깃발을 고쳐 매답니다. 달랑게, 칠게까지 돌아오면 출항해야 하잖아요.” 대야호 김 선장도 거들었다. 태안/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태안반도에 갈매기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의항과 만리포해수욕장에서 갈매기들이 눈에 띈다. 주민들이 애타게 갈매기를 기다리는 건 바다 삶터로 돌아갈 날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갈매기가 돌아오는 건 먹이가 있다는 것이고, 최소한이겠지만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일 터이다. 가재분(61)씨는 “기름바다를 양동이, 세숫대야로 퍼내다 힘들면 기름을 유출한 놈들이 미워 “이눔들아!”라고 고래고래 소리도 질렀는데 그러다 보니 갈매기가 안보였다”고 전했다. 주민들이 지쳐가던 사고 사흘째 의항 바닷가에 하얀 방제복 차림의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왔다. 하루하루 자원봉사자들의 인간띠가 늘어나고 그들이 머물다간 자리가 넓어지면서 끝없을 것 같았던 검은 바다도 점점 제 빛깔을 찾았다. 20여일만에 ‘이만하면 살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김화문(62·대야호 선장)씨는 “어제 전복어장에서 기름덩이 건져내다 갈매기를 봤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눈물이 났다”며 “자원봉사자들도 우리에게 희망을 준 고마운 갈매기들”이라며 웃었다. 그러나 엄청난 절망이 희망 쪽으로 무게 중심을 조금 옮겼을 뿐 주민들에게 올 겨울은 혹독한 삶을 이어야 하는 고난의 시간이다. 이곳에서 많이 나는 굴, 간재미, 주꾸미 등의 어물은 사라진지 오래다. 어르신들은 한달여 동안 어로를 못하면서 심심풀이로 고스톱칠 용돈도 떨어졌다. 보상받으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삽 한자루들고 낙지잡아 3남매 대학 보낸 이아무개씨 등 이곳 주민 10명 가운데 7~8명은 보상 근거가 없어 애태우고 있다. 해신호 선장 박완배(56)씨는 “처음에는 내 생전에 다시 저 바다에 통발을 내릴 수 있다면 만선을 못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다”며 “아직도 기름때가 적지 않지만 열심히 치우고 가꾸면 언젠가 꽃게들이 돌아오지 않겠느냐”고 속내를 내보였다. “방제작업을 하면서도 갑판에 쌓아놓은 통발을 살피고 망대에 파란 깃발을 고쳐 매답니다. 달랑게, 칠게까지 돌아오면 출항해야 하잖아요.” 대야호 김 선장도 거들었다. 태안/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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