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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열아홉 미혼아빠 “일당 2만원으론 도저히…”

등록 2008-01-03 13:40수정 2008-01-03 19:26

암투병 중인 이은숙(47)씨가 집안에서 고교생 아들이 홀로 키우는 손자 지성이를 안아주고 있다. 사진 하어영 기자 <A href="mailto:haha@hani.co.kr">haha@hani.co.kr</A>
암투병 중인 이은숙(47)씨가 집안에서 고교생 아들이 홀로 키우는 손자 지성이를 안아주고 있다. 사진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고교생 박태호군 ‘아이 위해’ 대학진학 포기
동갑내기 여자친구는 이사뒤 전화번호까지 바꿔
국가지원 월 5만원…우리 지성이 맡길곳 없나요?

태어난 지 네 달된 지성이가 울기 시작한다. 고교생 ‘미혼 아빠’ 박태호(19·가명)군은 “배고파서 그러나보다”며 젖병을 물린다. 아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손으로 받친 엉거주춤한 자세다. 박군은 “내 품이 불편한지, 안고 젖병을 물리면 더 운다”고 머쓱해한다. 박군의 어머니 이은숙(47)씨는 “애를 안을 줄도 모르는 애가 애를 키우고 있다”며 웃지만, 눈가는 어느새 젖어 있다.

박군은 2008학년도 용인대 입학이 예정됐던 유도선수였다. 2006년 서울시장배 전국학생유도선수권대회 66㎏급에서 4강에 오른 실력파다. 그런 박군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운동을 접었다. 대학 진학도 포기했다. 아기를 키우기 위해서다.

박군은 지난해 9월1일 아빠가 됐다. 박군과 아기 엄마 김아무개(19)양은 고2 때부터 사귀며 서로 집에도 왕래할 만큼 양가에서 인정하는 사이였다. 이들은 지난해 초여름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김양은 아이를 낳기 원했고, 박군도 동의했다. 하지만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김양은 “대학도 가야 하고 직장도 다니고 싶다”며 입양 얘기를 꺼냈다. 박군도 마음이 흔들리는 사이 출산일이 됐다.

처음 본 아기의 얼굴은 박군의 마음을 순식간에 바꿔놨다. 너무나 예뻤다. 박군은 “이 아이를 다른 곳에 보낸다면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찼다”고 한다. 결국 박군은 “아이를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김양은 이사를 한 뒤 전화번호까지 바꿔 연락이 닿질 않지만, 박군은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성이란 이름을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박군이 미혼 아빠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박군 어머니는 2년째 암투병 중이어서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다. 일용직 노동자인 박군 아버지는 한달 벌이가 100만원이 채 안된다. 박군은 수능 시험을 포기하고 새벽 피시방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하지만 일당 2만원도 안되는 아르바이트로 지성이를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박군은 깨닫고 있다. 도움을 받을까 싶어 동사무소를 찾았지만,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한달 5만원을 육아비로 지원하는 게 전부였다. 애초 지성이의 입양을 알아보던 대한사회복지회가 박군의 결심을 전해듣고 한달에 분유 6통과 기저귀 열흘 분량씩 보태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박군의 올해 소원은 직장을 갖는 것이다. 제대로 기술을 배워 직장을 잡아야 지성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학원에 다닐 동안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점이다. 대한사회복지회 기윤영 사회복지사는 “아이를 직접 키우겠다는 미혼 아빠·엄마가 늘고 있다”며 “이들이 가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육아 도우미나 직장 알선 등 정부 차원의 현실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가족지원팀 김기창 사무관은 “미혼모에 대한 지원도 별도 예산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미혼부’를 특성화할 계획은 없다”며 “미혼부는 실태 파악도 전혀 안된 상태”라고 말했다. 글·사진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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