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잃은 노조간부 인터뷰
[인터뷰] ‘부인 자살’ 쌍용차 조합원 이아무개씨
[%%TAGSTORY1%%] 아내는 쾌활하고 밝은 성격이었다. 털털한 성품이라 동네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런 아내가 두 아이를 남겨두고 목숨을 끊기까지를 생각하던 남편 이아무개(34)씨는 끝내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점거 파업 중인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강제집행을 통한 공권력 투입 시도가 이뤄진 20일 낮, 쌍용차 노조 간부 이씨의 아내 박아무개(29)씨는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 “60여일 간 투쟁 속에서도 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믿고 따라 주던 아내였습니다. 회사 쪽에서 소환장이며 손해배상 청구 관련 서류 같은 게 날아와서 걱정도 하곤 했지만 ‘안전하게만 돌아와라’고 절 격려했습니다. 그런데 4일 전쯤 어린이집에 4살, 8개월 된 아들들을 데려다주고 하면서 회사쪽 동료 가족을 만나 ‘그런 식으로 하면 남편 감옥간다’는 얘기를 듣고는 울면서 전화를 했어요.” 20일 오후 4시께 영안실에서 망연자실해 있던 이씨는 <한겨레>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아내는 ‘우리 집도 다 빼앗기고, 오빠(남편)는 감옥에 가고, 회사도 다시는 다닐 수 없게 된다는데 정말이냐’고 울먹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1994년부터 쌍용차에서 일해 온 이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노조 간부로 선임됐다. 쌍용차를 인수했던 상하이자본이 철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돌 때였다. 1월부터 월급은 체불됐다. 5월에는 정리해고자 명단이 나왔다. ‘산자’와 ‘죽은자’를 갈랐다. 쌍용차 직원들은 정리해고 대상자를 ‘죽은자’라고 부른다. 이씨는 ‘산자’였다. 그러나 노조 간부로서, 옳지 않은 일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투쟁에 합류했고, 60여일의 점거 투쟁 동안 일주일에 두 번 겨우 집에 들어갈까 말까 하는 나날을 보냈다.
2월에는 아내의 친정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급작스레 숨졌고, 4월에는 폐암으로 이씨 아버지가 숨졌다. 아내는 충격을 받았지만, 4월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 호전된 상태였다.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전화를 걸어 남편의 건강을 챙겼고, 11일 아내가 몸이 아프다고 해 집으로 갔을 땐 처남이 준 표로 아이들과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며 밝은 표정이었다고 이씨는 기억했다. 20일 수영장에 놀러 가자던 약속에 들떠 있던 네살배기 큰아이와 돌도 못 치른 둘째아들을 떠올린 이씨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은 아직 엄마의 죽음을 모른 채 어린이집에 있다. “다른 (정리해고되지 않은) 직원들을 만나면 좋은 소리 못 듣고, 애들 어린이집 데려다주거나 놀이터 같은데서 오고 가며 마주치니까. 그래서 서로 얘기하지 말고 그러라고 했는데, 며칠 전엔 집도 다 뺏기고 감옥 간다는 말에 많이 놀랐는지 처음으로 거기서 나오라는 소리를 했습니다. 그 뒤로는 계속 침울한 목소리였고, 오늘 아침엔 9시께 전화를 걸었는데 안 받더라고요.” 유난히 알뜰했던 아내였다. 연애하던 때부터 살뜰히 돈을 모으더니 결혼 3년 만에 대출금을 안고 작은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결혼 전 건설회사 경리로 일했던 덕분인지 “영수증 한번 허투루 버리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둘째아이 백일 때 제가 케익이라도 사자고 했는데, 아내가 월급도 안 나오는데 대출이자도 못 낼 형편이니 안 된다고 한사코 말렸어요. 그래서 둘째는 백일도 못 치렀습니다. 심지어 백일날 가족 사진조차 못 찍고….” 이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박씨가 숨진 모습을 처음 발견했던 친정 어머니 조아무개(53)씨는 “딸은 월급 체불 뒤로 살뜰하게 살림을 챙겼고, 19일에도 마트에 가서 애들이 먹을 1200원짜리 세 묶음들이 과자 딱 하나만 사고는 돌아왔을 정도였다”며 안타까워했다. 딸과 가까이에 살던 조씨는 이날도 손자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감기 기운이 있어 병원에 들를 생각으로 11시에 딸을 혼자 두고 집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엔 마트에 들러 딸이 좋아하는 초코파이를 한 상자 사 올 생각이었다고 했다. “감옥 운운하는 이야기를 듣고 주말 내내 풀이 죽어 있어요. 애들 과자만 사고, 내가 사 주겠다는 것도 한사코 마다 하길래 들어가는 길에 딸이 좋아하던 과자를 사가려고 했어요.” 조씨는 끝에 목을 놓고 말았다. 평택/정유경 허재현 기자 edge@hani.co.kr
[%%TAGSTORY1%%] 아내는 쾌활하고 밝은 성격이었다. 털털한 성품이라 동네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런 아내가 두 아이를 남겨두고 목숨을 끊기까지를 생각하던 남편 이아무개(34)씨는 끝내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점거 파업 중인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강제집행을 통한 공권력 투입 시도가 이뤄진 20일 낮, 쌍용차 노조 간부 이씨의 아내 박아무개(29)씨는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 “60여일 간 투쟁 속에서도 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믿고 따라 주던 아내였습니다. 회사 쪽에서 소환장이며 손해배상 청구 관련 서류 같은 게 날아와서 걱정도 하곤 했지만 ‘안전하게만 돌아와라’고 절 격려했습니다. 그런데 4일 전쯤 어린이집에 4살, 8개월 된 아들들을 데려다주고 하면서 회사쪽 동료 가족을 만나 ‘그런 식으로 하면 남편 감옥간다’는 얘기를 듣고는 울면서 전화를 했어요.” 20일 오후 4시께 영안실에서 망연자실해 있던 이씨는 <한겨레>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아내는 ‘우리 집도 다 빼앗기고, 오빠(남편)는 감옥에 가고, 회사도 다시는 다닐 수 없게 된다는데 정말이냐’고 울먹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1994년부터 쌍용차에서 일해 온 이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노조 간부로 선임됐다. 쌍용차를 인수했던 상하이자본이 철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돌 때였다. 1월부터 월급은 체불됐다. 5월에는 정리해고자 명단이 나왔다. ‘산자’와 ‘죽은자’를 갈랐다. 쌍용차 직원들은 정리해고 대상자를 ‘죽은자’라고 부른다. 이씨는 ‘산자’였다. 그러나 노조 간부로서, 옳지 않은 일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투쟁에 합류했고, 60여일의 점거 투쟁 동안 일주일에 두 번 겨우 집에 들어갈까 말까 하는 나날을 보냈다.
2월에는 아내의 친정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급작스레 숨졌고, 4월에는 폐암으로 이씨 아버지가 숨졌다. 아내는 충격을 받았지만, 4월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 호전된 상태였다.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전화를 걸어 남편의 건강을 챙겼고, 11일 아내가 몸이 아프다고 해 집으로 갔을 땐 처남이 준 표로 아이들과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며 밝은 표정이었다고 이씨는 기억했다. 20일 수영장에 놀러 가자던 약속에 들떠 있던 네살배기 큰아이와 돌도 못 치른 둘째아들을 떠올린 이씨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은 아직 엄마의 죽음을 모른 채 어린이집에 있다. “다른 (정리해고되지 않은) 직원들을 만나면 좋은 소리 못 듣고, 애들 어린이집 데려다주거나 놀이터 같은데서 오고 가며 마주치니까. 그래서 서로 얘기하지 말고 그러라고 했는데, 며칠 전엔 집도 다 뺏기고 감옥 간다는 말에 많이 놀랐는지 처음으로 거기서 나오라는 소리를 했습니다. 그 뒤로는 계속 침울한 목소리였고, 오늘 아침엔 9시께 전화를 걸었는데 안 받더라고요.” 유난히 알뜰했던 아내였다. 연애하던 때부터 살뜰히 돈을 모으더니 결혼 3년 만에 대출금을 안고 작은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결혼 전 건설회사 경리로 일했던 덕분인지 “영수증 한번 허투루 버리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둘째아이 백일 때 제가 케익이라도 사자고 했는데, 아내가 월급도 안 나오는데 대출이자도 못 낼 형편이니 안 된다고 한사코 말렸어요. 그래서 둘째는 백일도 못 치렀습니다. 심지어 백일날 가족 사진조차 못 찍고….” 이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박씨가 숨진 모습을 처음 발견했던 친정 어머니 조아무개(53)씨는 “딸은 월급 체불 뒤로 살뜰하게 살림을 챙겼고, 19일에도 마트에 가서 애들이 먹을 1200원짜리 세 묶음들이 과자 딱 하나만 사고는 돌아왔을 정도였다”며 안타까워했다. 딸과 가까이에 살던 조씨는 이날도 손자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감기 기운이 있어 병원에 들를 생각으로 11시에 딸을 혼자 두고 집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엔 마트에 들러 딸이 좋아하는 초코파이를 한 상자 사 올 생각이었다고 했다. “감옥 운운하는 이야기를 듣고 주말 내내 풀이 죽어 있어요. 애들 과자만 사고, 내가 사 주겠다는 것도 한사코 마다 하길래 들어가는 길에 딸이 좋아하던 과자를 사가려고 했어요.” 조씨는 끝에 목을 놓고 말았다. 평택/정유경 허재현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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