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대안을 찾자 (하)
7년전 ‘종합대책’ 마련에도
정부, 시행규칙 조차 없어
학교별 자치위도 ‘개점휴업’
교육청, 심의건수 감소 요구
“평가에 악영향 우려 쉬쉬”
법 적용 표준화해 책임 묻고
일선 전문상담교사 늘려야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왕따·학교폭력 문제가 또다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각 부처는 앞다퉈 학교폭력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학교폭력 예방부터 가해자 처벌까지 종합적인 대책을 담은 ‘학교폭력예방법’은 7년째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돼 있다. 학교폭력을 뿌리뽑자며 만들어놓은 법이 정부와 지역교육청의 무관심으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004년 국회에서 학교폭력예방법(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만 4년 뒤인 2008년에야 겨우 시행령을 마련했다. 하지만 곧 뒤따라 만들었어야 할 시행규칙은 아직 만들 계획조차 없다. 당시 법 제정을 이끌었던 김대유 경기대 겸임교수(교직학과)는 “그때 정부가 ‘학교폭력’ 대신 ‘청소년폭력’이라는 말을 고집해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는데, 교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한 관리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며 “성폭력,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전자우편, 인터넷 댓글을 통한 협박·욕설 행위도 학교폭력 범주에 넣자고 요구했지만, 관계 부처의 반대로 미뤄지다 2007년 개정 때에야 비로소 포함됐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 법도 ‘종이호랑이’나 다름없다. 각 학교는 이 법에 따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를 두고 있지만, 이 위원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자치위 심의가 많으면 학교폭력이 많은 학교로 비친다는 염려 때문이다. 초·중·고 교육정보 공시사이트인 ‘학교알리미’를 보면, 지난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의 평균 심의 건수는 고등학교 1.32건, 중학교 2.26건, 초등학교 0.06건에 불과했다. 왕따·학교폭력이 만연한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지역교육청에서도 자치위 심의 건수가 많으면 낮추라고 요구하고, 일선 학교에서는 학교 평가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자치위를 열지 않아 학교와 교육청이 폭력을 은폐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형법을 보완해 가해 학생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학교폭력예방법에도 출석정지·전학·사회봉사·퇴학 처분 등 처벌조항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강제규정이 아니다 보니 정부는 지역교육청에, 지역교육청은 다시 일선 학교에 책임을 떠넘긴다. 학교는 가해 학부모가 처벌에 반대하면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황준원 강남을지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어려서 형사처벌이 면제된다고 사회적 책임까지 면제시켜서는 안 된다”며 “학교폭력예방법 절차를 잘 지켜, 가해 학생들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범법행위라는 것을 각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현재로선 학교마다 학교폭력예방법을 적용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교육과학기술부가 나서서 표준화된 세부 규칙을 정해 일관된 법 적용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을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교사도 턱없이 부족하다. 학교폭력예방법에는 학교마다 전문 상담교사를 배치하도록 돼 있지만, 교과부에 따르면 28일 현재 전국 1만1300여개 초·중·고등학교에 배치된 전문 상담교사 수는 고작 883명에 불과하다. 교과부 관계자는 “공무원총량제 때문에 충원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와 별도로 교과부 자체적으로 전국 126개 지역교육청에 학교생활 전반을 상담하는 ‘위 센터’를 설치해 심리상담사 773명을 배치했으며 내년까지 317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편, 대구 사건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28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에는 가해 학생이 전학을 가면 피해 학생이 있는 학교로 되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피해 학생 치료비를 가해 학생의 보호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김대유 교수는 “가해자 쪽이 치료비를 내지 않을 경우 지방교육청이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가해자 쪽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강제조처가 뒤따라야 한다”며 “피해배상이나 강제전학 등의 제재를 단위학교에만 맡기면 학교폭력을 더 은폐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미 진명선 기자 kmlee@hani.co.kr
대법 “집단 괴롭힘은 가해학생·부모·학교 공동책임”
지적장애 피해자 일부 승소판결…‘3자’에 “5700만원 배상하라” 학교 안 집단 괴롭힘으로 피해를 본 학생에 대해 가해 학생과 그 부모, 학교가 배상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적장애 2급인 김아무개(22)씨는 2006년 3월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친구들은 김씨를 바보라고 놀리고 손으로 때리는가 하면, 가을 소풍 때는 김씨를 물에 빠뜨릴 것처럼 장난을 쳤다. 겨울에는 난로에 데워진 뜨거운 동전을 줍게 해 손가락에 화상을 입게 하는 등 김씨를 계속 괴롭혔다. 김씨의 어머니가 학교를 찾아가 담임 교사와 학생들에게 ‘잘 봐달라’고 당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씨는 이듬해 말 불안·환청·독백·망상 등으로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장기간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받았다. 김씨는 급기야 치료를 위해 서울로 이사까지 했다. 김씨 등은 집단 괴롭힘으로 정신분열증이 생겼다며 가해 학생과 그 부모, 학교를 상대로 7억여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가해 학생들은 김씨를 만만하게 보고 지속적으로 놀리고 때리는 등 장난을 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런 행위들을 당하는 처지에서 보면 단순한 장난의 정도를 넘어서는 일종의 집단 따돌림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자녀에 대한 보호·감독 의무를 게을리한 가해 학생의 부모와 가해 행위를 알고도 조처를 취하지 않은 담임 교사, 교사에 대한 지휘·감독 의무를 위반한 학교의 손해배상 책임을 모두 인정하며 “공동으로 57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대법원 2부는 원고와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해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정부, 시행규칙 조차 없어
학교별 자치위도 ‘개점휴업’
교육청, 심의건수 감소 요구
“평가에 악영향 우려 쉬쉬”
법 적용 표준화해 책임 묻고
일선 전문상담교사 늘려야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왕따·학교폭력 문제가 또다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각 부처는 앞다퉈 학교폭력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학교폭력 예방부터 가해자 처벌까지 종합적인 대책을 담은 ‘학교폭력예방법’은 7년째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돼 있다. 학교폭력을 뿌리뽑자며 만들어놓은 법이 정부와 지역교육청의 무관심으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004년 국회에서 학교폭력예방법(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만 4년 뒤인 2008년에야 겨우 시행령을 마련했다. 하지만 곧 뒤따라 만들었어야 할 시행규칙은 아직 만들 계획조차 없다. 당시 법 제정을 이끌었던 김대유 경기대 겸임교수(교직학과)는 “그때 정부가 ‘학교폭력’ 대신 ‘청소년폭력’이라는 말을 고집해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는데, 교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한 관리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며 “성폭력,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전자우편, 인터넷 댓글을 통한 협박·욕설 행위도 학교폭력 범주에 넣자고 요구했지만, 관계 부처의 반대로 미뤄지다 2007년 개정 때에야 비로소 포함됐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 법도 ‘종이호랑이’나 다름없다. 각 학교는 이 법에 따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를 두고 있지만, 이 위원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자치위 심의가 많으면 학교폭력이 많은 학교로 비친다는 염려 때문이다. 초·중·고 교육정보 공시사이트인 ‘학교알리미’를 보면, 지난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의 평균 심의 건수는 고등학교 1.32건, 중학교 2.26건, 초등학교 0.06건에 불과했다. 왕따·학교폭력이 만연한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지역교육청에서도 자치위 심의 건수가 많으면 낮추라고 요구하고, 일선 학교에서는 학교 평가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자치위를 열지 않아 학교와 교육청이 폭력을 은폐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형법을 보완해 가해 학생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학교폭력예방법에도 출석정지·전학·사회봉사·퇴학 처분 등 처벌조항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강제규정이 아니다 보니 정부는 지역교육청에, 지역교육청은 다시 일선 학교에 책임을 떠넘긴다. 학교는 가해 학부모가 처벌에 반대하면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황준원 강남을지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어려서 형사처벌이 면제된다고 사회적 책임까지 면제시켜서는 안 된다”며 “학교폭력예방법 절차를 잘 지켜, 가해 학생들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범법행위라는 것을 각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현재로선 학교마다 학교폭력예방법을 적용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교육과학기술부가 나서서 표준화된 세부 규칙을 정해 일관된 법 적용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을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교사도 턱없이 부족하다. 학교폭력예방법에는 학교마다 전문 상담교사를 배치하도록 돼 있지만, 교과부에 따르면 28일 현재 전국 1만1300여개 초·중·고등학교에 배치된 전문 상담교사 수는 고작 883명에 불과하다. 교과부 관계자는 “공무원총량제 때문에 충원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와 별도로 교과부 자체적으로 전국 126개 지역교육청에 학교생활 전반을 상담하는 ‘위 센터’를 설치해 심리상담사 773명을 배치했으며 내년까지 317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편, 대구 사건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28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에는 가해 학생이 전학을 가면 피해 학생이 있는 학교로 되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피해 학생 치료비를 가해 학생의 보호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김대유 교수는 “가해자 쪽이 치료비를 내지 않을 경우 지방교육청이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가해자 쪽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강제조처가 뒤따라야 한다”며 “피해배상이나 강제전학 등의 제재를 단위학교에만 맡기면 학교폭력을 더 은폐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미 진명선 기자 kmlee@hani.co.kr
대법 “집단 괴롭힘은 가해학생·부모·학교 공동책임”
지적장애 피해자 일부 승소판결…‘3자’에 “5700만원 배상하라” 학교 안 집단 괴롭힘으로 피해를 본 학생에 대해 가해 학생과 그 부모, 학교가 배상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적장애 2급인 김아무개(22)씨는 2006년 3월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친구들은 김씨를 바보라고 놀리고 손으로 때리는가 하면, 가을 소풍 때는 김씨를 물에 빠뜨릴 것처럼 장난을 쳤다. 겨울에는 난로에 데워진 뜨거운 동전을 줍게 해 손가락에 화상을 입게 하는 등 김씨를 계속 괴롭혔다. 김씨의 어머니가 학교를 찾아가 담임 교사와 학생들에게 ‘잘 봐달라’고 당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씨는 이듬해 말 불안·환청·독백·망상 등으로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장기간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받았다. 김씨는 급기야 치료를 위해 서울로 이사까지 했다. 김씨 등은 집단 괴롭힘으로 정신분열증이 생겼다며 가해 학생과 그 부모, 학교를 상대로 7억여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가해 학생들은 김씨를 만만하게 보고 지속적으로 놀리고 때리는 등 장난을 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런 행위들을 당하는 처지에서 보면 단순한 장난의 정도를 넘어서는 일종의 집단 따돌림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자녀에 대한 보호·감독 의무를 게을리한 가해 학생의 부모와 가해 행위를 알고도 조처를 취하지 않은 담임 교사, 교사에 대한 지휘·감독 의무를 위반한 학교의 손해배상 책임을 모두 인정하며 “공동으로 57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대법원 2부는 원고와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해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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