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팀 의견 관철 못하고 ‘순치’돼
최태원 회장 ‘봐주기 구형’ 이어져
MB 집권기 중앙지검장은 고려대몫
한상대 ‘6개월 지검장’ 거쳐 총장행
정권과 밀착 안좋은 선례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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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8일 최교일(51) 서울중앙지검장이 출입기자들과 서초동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 일가의 서울 내곡동 사저 터 헐값 매입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이었다. 최 지검장과 기자들의 대화는 당연히 내곡동 사저 사건으로 모아졌다.
최 지검장은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유를 법리적으로 설명했다. 그러고는 “형식적으로 보면 배임으로 볼 수도 있어. 그러면 김태환(청와대 경호처 직원)을 기소해야 하는데, 기소를 하면 배임에 따른 이익 귀속자가 누구냐면 대통령 일가가 되거든. 이걸 그렇게 하기가…”라고 말끝을 흐렸다. 최 지검장의 발언이 나오자 ‘그러면 대통령 일가를 배임에 따른 이익의 귀속자로 규정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기소를 안 한 걸로 보면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최 지검장은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대통령 일가가 부담스러워 기소를 안 했다는 게 사실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인정한 것이었다.
최 지검장의 발언이 보도되자 검찰은 발칵 뒤집혔다. 한상대(54) 검찰총장이 있는 대검찰청이 더 그랬다. 이날 대검 청사는 밤늦게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한 총장은 대검 간부들에게 최 지검장 발언의 배경을 파악하라고 지시했고, 대검 간부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대검 관계자는 “최 지검장 발언은 의도된, 계산된 발언이 아닌가. 특검에 가면 배임죄가 성립이 된다는 쪽으로 결론이 달리 나올 테니 사전에 발빼기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총장의 뜻을 받들어 내곡동 사저 사건 봐주기에 한배를 탔던 최 지검장이 특검 수사를 앞두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고도의 전략적인 발언을 한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그러나 최 지검장의 발언은 ‘실언’이었다. 검찰 입장에서 볼 때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진실’을 말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최 지검장의 발언이 보도된 뒤 검찰 내부 반응은 엇갈렸다. ‘최 지검장의 설화로 정치검찰임을 자인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기자들이 식사 자리에서 나온 발언을 잘못 보도했다’며 최 지검장을 감싸는 분위기도 있었다. 동정적인 여론은 최 지검장의 ‘인품’ 덕이기도 했다. 최 지검장은 보고를 받을 때도 최대한 경청한다는 게 휘하 검사들의 얘기다. 짜증을 내거나 윽박지르지 않는다. 권위적이지 않고 부드럽다. “착하다”를 넘어 “천진난만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선 이런 성정이 ‘독’으로 작용했다. 서울중앙지검엔 온갖 중요한 사건이 몰려든다.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과 소신이 있어야 하지만, 최 지검장에겐 그게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고려대 2년 선배인 한상대 총장 앞에서 최 지검장은 한없이 작아졌다. 한 총장은 자신과 생각이 맞지 않으면 서슴없이 막말을 하고 면박을 줬다고 한다. 최 지검장은 매주 화요일 한 총장에게 주례보고를 하러 갔지만, 이 자리에서 수사 현장의 의견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순치돼서 돌아온다”는 얘기가 많았다. 한 총장은 ‘만만한’ 최 지검장을 통로로 민간인 사찰 재수사나 내곡동 사건 수사를 맘대로 지휘했다. 한 총장 사퇴의 계기가 됐던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 ‘봐주기 구형’도 한 총장의 독선과 최 지검장의 무소신이 어우러진 ‘참사’였다. 검찰 관계자는 “한 총장은 자신이 직전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는 이유로, 사실상 지검장 역할까지 다 하려고 했다. 최 지검장은 한 총장이 없는 상황에서는 지검장 일을 아주 잘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 때 서울중앙지검장은 대대로 고려대 몫이었다. 집권 2년차부터 노환균(경북 상주)-한상대(서울)-최교일(경북 영주) 검사장이 고려대 출신으로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티케이(TK·대구경북)나 고려대 출신 등 연줄에 치우친 서울중앙지검장 인사는 그때마다 오점을 남겼다. 2010년 민간인 사찰 사건 1차 수사의 책임자였던 노환균 지검장은 김준규 검찰총장보다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과 중요 사안을 긴밀히 협의한다는 뒷말이 나왔다. 한상대 지검장은 서울고검장에서 6개월짜리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옮긴 ‘역진 인사’를 거쳐, 한상률 전 국세청장 관련 사건을 무난하게 처리한 뒤 검찰총장으로 직행하는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몰려들고 이를 지휘해야 하는 서울중앙지검장이 바로 검찰총장 후보가 되면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총장을 노리는 서울중앙지검장이 정권과 밀착하면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기획연재] 정치검사의 민낯 들춰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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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정치검사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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