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제도 개편에 관한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재정 부담을 줄이려면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의 공무원연금 개편은 피할 수 없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는다. 반면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공무원노조) 등 공무원 단체는 정부가 이해당사자인 공무원의 의견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연금제도 개편을 몰아붙인다며 반발한다.
<한겨레>는 공무원연금 개편의 바람직한 공론화를 위해 윤석명(54)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과 이충재(45) 공무원노조 위원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윤 위원은 공무원연금의 재정 문제를 해소하려면 큰 폭으로 손봐야 한다고 적극 주장해온 연금 분야 전문가다. 이 위원장은 공무원연금 개편이 ‘공적연금 죽이기’에 이은 사적연금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다며 정부를 거세게 비판해왔다.
14일 <한겨레> 6층 회의실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윤 위원은 “한정된 복지 재원을 좀더 형편이 어려운 이들한테 써야 한다는 차원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연금제도 개혁을 논의한다면 공무원연금만이 아니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 엉성한 보장체계를 갖고 있는 모든 공적연금에 관한 논의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맞섰다. 다만 두 사람은 제도 개편의 고통이 하위직 공무원한테 상대적으로 더 많이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데 입을 모았다.
공무원연금 제도 개편, 꼭 해야 하나
사회 공무원연금 제도 개편의 방향이나 내용을 두고도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제도 개편의 필요성에 대한 두 분의 판단도 다를 것 같다.
윤석명(윤) 우리가 노후소득 보장 방식의 하나로 연금제도를 도입한 시점과 비교하면, 우선 사회적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그건 공무원연금만이 아니라 모든 연금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조건이다. 무엇보다 인구구조가 바뀌었다. 1960년대 공무원연금을 처음 도입할 때 52살이던 평균 수명이 지금 81살까지 늘었다. 공무원연금 수급자가 많아지고, 수급기간도 길어져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크게 떨어졌는데도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저부담 고급여’ 구조를 오래 유지한 것도 문제다. 개편이 필요하다.
이충재(이) 2009년 공무원연금 제도를 한번 손볼 때 당시 행정안전부에서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라는 논의 기구를 꾸린 적이 있다. 김용하 전 한국연금학회장이나 배준호 한신대 대학원장, 윤 위원과 나까지 모두 거기서 만난 사이다. 우리가 개혁안을 만들 때 어느 정도 적자폭을 예상하면서도, ‘정부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이 정도의 개혁이면 앞으로 10년간은 다시 손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합의를 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도 지금 또다시 공무원연금 개편을 밀어붙이는 건 결국 사적연금 활성화를 위한 밑돌깔기다. 지나치게 많은 연금을 받는 일부 고액 수급자에 대한 문제의식은 우리도 갖고 있다. 다만 사회적 논의를 시작한다면 공무원연금 하나만 문제삼을 게 아니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 엉성한 보장체계를 갖고 있는 모든 공적연금을 어떻게 정상화할지, 이런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밀실 개편 논란, 문제없나
사회 공무원연금 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정부의 태도와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새누리당이 대기업 소속 금융·보험사의 산하 연구단체 격인 한국연금학회에 제도 개편안을 마련해달라고 맡긴 것부터 논란이 일었다.
이 정부와 여당, 청와대가 공무원연금 제도의 밀실 개편을 시도한 건 ‘팩트’(사실)라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모범적인 연금 개혁을 이룬 나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꼽았는데, 두 나라는 오랜 기간의 노사 협의로 연금 개혁을 완성했다. 밀실에서 연금 개혁을 꾀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특히 연금학회는 늘 사적연금 활성화를 주장해온 단체다. 이런 단체한테 개편안을 마련하라고 맡겼다는 건 정부의 연금 개혁이 ‘공적연금 죽이기’를 목표로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윤 연금학회를 통해 공무원연금 개편안을 제시한 게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다만 개편안이 나온 과정과 형식이 매끄럽지 않다고 그 의도나 배경을 사적연금 활성화로 연결짓는 건 너무 나간 것 같다. 공무원 표심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정부나 여당이 연금제도 개편의 총대를 메기에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는 거다.
사회 이해당사자인 공무원 단체들은 자신들이 논의 과정에서 배제된 것도 문제라며 반발한다.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개편을 두고는 특히 하위직 공무원의 반감이 크다. 공무원 사회의 반발이 ‘밥그릇 지키기’라는 지적도 있는데.
윤 공무원연금 개혁은 1995년과 2000년, 2009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공무원 단체가 참여한) 과거 연금 개혁에 대한 평가는 어땠나? ‘셀프 개혁이다’, ‘무늬만 개혁이다’,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등의 비판이 많았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일단 하나의 안을 만드는 단계에서는 전문가의 손을 거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전문가가 누구인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나 등의 문제는 있다. 처음부터 공무원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밀실 개편’이라고 비판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이 대학을 졸업한 뒤 9급으로 임용되면 156만원을 월급으로 받는다. 30년 넘게 일해도 월급은 400만원대 초반을 넘지 못한다. 노동자 100인 이상 민간기업의 77% 수준에 그치는 보수를 받으며 묵묵히 참고 견디는 데에는 연금에 대한 기대가 있다. 연금학회안을 보면 2016년에 9급으로 입직하는 신규 임용자는 30년간 일한 뒤 매달 76만원의 연금을 받게 되는데, 이건 연금이 아니다. 퇴직금도 민간기업의 최대 39% 수준인데다 산재보험·고용보험 등 기본적인 사회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공무원으로서 다른 불리한 노동조건은 그대로 둔 채 연금제도만 불리한 쪽으로 손질하겠다는데 반발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나.
지속가능한 공무원연금 개편은 가능한가
사회 공무원연금 제도 개편의 필요성은 흔히 재정안정화 논리에서 비롯한다. 먼저 공무원연금 재정건전성 악화에 따른 책임을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이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며 정부의 재정이 연금에 많이 투입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공적연금은 적금이 아니다. 일정한 노후소득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연금제도를 유지하려면, 노동자가 재직 중 일정한 납입액을 내는 것처럼 정부도 사용자로서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 앞서 공무원 보수 문제를 짚었는데, 민간기업 77% 수준의 보수를 100%로 맞추려면 공무원 인건비로 한해 10조원이 더 든다. 정부가 말하는 공무원연금 ‘적자’를 해결하고도 남는다. 또 정부가 그동안 공무원연금 기금에서 곶감 빼먹듯 빼낸 돈이 현재 가치로 30조원에 이른다. 부당하게 사용한 기금이 20조원, 잘못된 투자 등으로 인한 기회비용 손실이 10조원에 가깝다. 재정 문제를 말하기 시작하면 공무원도 할 말이 많다.
윤 공무원연금의 재정건전성 악화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도 일부 인정하는 것 같다. 공무원연금 재정 문제의 20% 정도는 과거 국가가 제구실을 다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고, 나머지 80%는 제도상의 문제라고 진단했는데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정작 문제는 정부가 그 30조원을 공무원연금 재정에 쏟아부어도 이 연금제도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지금 개혁을 논의하는 것은 1~2년 뒤가 아니라 20~30년 뒤에 찾아올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차원이다.
윤석명 보건사회연 연구위원
지금 수준의
지급률을 유지하려면
14%(본인+정부)의 납입액이
8%가 돼도 어렵다
30% 수준이 되더라도
지속가능할지 모르겠다”
사회 지난해 정부는 2조4000억원의 재정을 공무원연금 보전금으로 지출했다. 공무원연금 ‘적자’는 어떻게 봐야 하나?
이 연금제도를 꾸려가는 데 적자가 생기면 안 된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그런 논리로 접근하면 한해 10조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기초연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2040년이 되면 기초연금 적자가 한해 100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연금도 기금이 바닥을 드러내면 적자로 돌아설 것이다. 지금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20만원 주는 기초연금 깎고, 국민연금도 안 줄 것인가.
윤 지금 수준의 공무원연금 지급률을 유지하려면 현재 14%(본인+정부) 수준의 납입액을 2배인 28%로 올려도 어렵다. 30% 수준이 되더라도 지속가능할지 모르겠다. 이런 형편인데 국가만 책임지라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좀더 근본적 문제는 공무원연금도 일종의 사회보험이라고 할 때, 이게 모두 상대적으로 먹고살 만한 사람한테 간다는 것이다. 사회보험은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노출된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것인데 되레 위험에 덜 노출된 이들한테 복지 재정의 대부분이 쓰인다. 지금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서 적자폭을 줄이자는 건 공무원연금 제도 자체의 문제에서 비롯한 측면도 있지만 한정된 복지 재원을 좀더 어려운 이들한테 써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오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후상박 개편은 해법이 될 수 있나
사회 공무원연금 개편에 대한 공무원 사회의 반발이 거세지자 여당을 중심으로 ‘하후상박’ 방식의 개편을 검토하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적절한 방향이라고 보나?
윤 필요하다. 재정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개혁을 한다면 그에 따른 고통이 불가피하다. 300만원의 연금을 받는 퇴직자와 170만원을 받는 퇴직자의 연금을 하나의 잣대로 깎는다면 예상 연금액이 적은 퇴직자는 연금으로 기본적인 노후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위 직급에 대한 일정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 하후상박 개편에 앞서 좀더 근본적으로 보수 현실화가 맞다. 그게 연금과 연동되기 때문이다. 똑같은 시간외근무를 해도 민간은 시급의 1.5~2.5배를 받는데, 공무원은 8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당을 받는다. 하루 종일 목숨을 걸고 비상근무를 해도 시간외수당은 4시간까지만 인정해준다.
이충재 공무원노조 위원장
“적자는 안된단 발상 위험
민간기업 77% 수준 보수를
100%로 맞추면
한해 10조원이 더 든다
공무원연금 ‘적자’를
해결하고도 남아”
윤 보수 현실화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1인 도시가구 평균 소득이 200만원 수준인데, 9급 하위직 공무원은 여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는다. 정부가 공무원을 쓰며 이런 수준의 급여를 주는 건 문제다.
사회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편과 함께 사적연금 활성화도 강조한다. 이 두 정책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보나?
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물론 국제노동기구(ILO)도 다층노후소득 보장체계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공적연금 하나만으로는 노후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어려우니 보완재 성격의 사적연금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사적연금이 공적연금을 완전히 대체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 현실에 맞게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한국의 사적연금 시장 규모는 이미 세계적이다. 공적연금이 제구실을 못해서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사적연금을 활성화하겠다는 건 공적연금을 더 죽이겠다는 의도다. 그 결과가 뭔가? 개인연금 유지율은 절반밖에 안 된다. 퇴직연금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곳도 많다. 이런 방식의 사적연금을 그대로 방치하면 되레 국민의 노후를 위협하게 된다. 공적연금 강화가 해답이다.
사회 노후소득 보장체계에서 공적연금이 갖는 위상은 어떤 수준이라야 하나?
이 공적연금의 하향평준화는 막아야 한다. 국민연금을 흔히 ‘용돈연금’이라 하는데, 중향평준화든 상향평준화든 연금과 관련한 공무원과 국민 사이의 불평등을 해소하며 동시에 국민 모두를 노후빈곤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언제까지 ‘국민연금 깎았으니 공무원연금 깎자, 공무원연금 깎았으니 국민연금 깎자’는 식으로 연금 개악 경쟁으로 내몰 건가.
윤 주로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강조해왔는데, 오늘은 제도의 정치적 지속가능성 문제를 짚고 싶다. 국민연금만 봐도 사각지대의 문제가 얼마나 큰가? 공적연금이 노후소득 보장체제로서 중추 구실을 하려면 사각지대를 최대한 좁혀야 한다. 공무원연금을 ‘적정 부담, 적정 급여’ 구조로 손보자는 건 여기에 들어가는 세금을 아껴 거기에 좀 쓰자는 거다. 그런 기회를 놓친다면 ‘공적연금 이거 반쪽짜리 뭐하러 가입해? 못 믿겠으니 민간에 맡겨라’는 식의 사회적 압박이 더 커질 수 있다. <끝>
사회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정리 최성진 기자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