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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엄마가 ‘빠진’ 일상, 엄마한테 부치지 못한 편지만 쌓여간다

등록 2016-03-29 21:13수정 2016-03-30 10:06

[위기의 아이들, 수용자 자녀] (하) 몸과 마음 모두 장애

75%가 청력·심전도 이상 진단받아
친구관계 만족도 낮고 정서적 위축
부모가 붙잡혀 끌려가는 것 본뒤로
40%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앓아
분노 조절 안되는 등 정신적 고통도
#1. 강승훈(가명·16)군의 가장 친한 친구는 ‘컴퓨터’다. 유치원 시절부터 심하게 왕따를 당한 탓에, 친구와 노는 것보다는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게 더 즐겁다. 학교를 마치고 함께 노는 또래가 있지만 ‘진짜 친구’라는 생각은 안 한다.

강군은 5살 무렵,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할머니·아빠와 함께 살았다. 몇 년 전 아빠가 폭행죄로 수감된 뒤로는 치매를 앓는 할머니와 단둘이 남게 됐다. 고모들이 돌아가며 집에 들러 반찬도 챙겨주지만, 법적 보호자가 아닌 탓에 학교에 낼 서류 한 장 떼어 주기도 어렵다. 그런 고모들에게 강군은 “귀찮다”며 마음을 닫는다.

“제 또래 애들은 부모님이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좋죠.” 짐짓 쿨한 듯 “아빠가 없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고 말하지만, 정작 강군은 주말마다 교도소를 찾아 아빠의 면회 신청을 넣는다.

아빠가 교도소에 간 뒤, 강군의 건강도 나빠졌다. 초등학생 때부터 잘 들리지 않던 오른쪽 귀는 치료 시기를 아예 놓치면서 이제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지역아동센터를 통해 이따금 치료를 받았지만, 할머니와 고모들이 때를 놓치는 바람에 병원을 제대로 다니지 못해서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아프다. 아빠가 잠복경찰에게 붙잡혀 끌려나가는 장면을 본 뒤부터다. 강군은 지난해 11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청소년의 문제행동과 사회성 등을 수치로 보여주는 ‘청소년 행동평가척도’ 심리검사를 받았는데, 친구관계에서 느끼는 만족도가 낮고 정서적으로 위축돼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사교성 여부와 관련된 ‘사회적 미성숙’ 항목의 점수가 높아 정신과 진찰이 필요하다는 소견까지 나왔다.

#2. 이지영(가명·13)양도 엄마가 교도소로 간 뒤, 남은 가족들에게 마음을 굳게 닫고 지낸다. 엄마가 사기죄로 수감된 뒤 이양은 외할머니와 새아버지 그리고 재혼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과 함께 산다.

그러나 엄마가 ‘빠진’ 이후, 이양은 가족들과 대화를 잘 하지 않는다. 특히 새아버지와 대화하는 일이 불편해졌다. 이양은 매일 밤늦게까지 지역아동센터에서 보내다가 주말에는 친구들과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노래방에서 시간을 때운다. 이양이 마음을 털어놓는 유일한 ‘창구’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다. 속마음을 담은 편지를 자주 쓰지만 부치진 않는다. 교도소에 있는 엄마가 걱정하는 게 싫어서다.

이양은 “엄마가 교도소에 가게 됐다는 것을 알고 나니 너무 무서웠다. 엄마와 떨어지는 것도 무서운데 떨어지게 된 곳이 교도소라는 사실이 너무 싫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이양은 국립중앙의료원 심리검사에서 “과거에 부정적인 일을 많이 겪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나타났으니, 지속적인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부모의 수감은 많은 경우 아이들의 건강 이상으로 이어진다. 특히 ‘부모의 체포’를 직접 목격한 아이 등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기도 한다.

수용자 자녀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은 지난해 말 국립중앙의료원의 도움을 받아 수용자 자녀가 있는 가정 13가구(20명)를 대상으로, 자녀들의 심리·스트레스 검사는 물론 기본검진과 혈액·전문검사 등 건강검진을 진행했다. 그 결과, 검사 대상의 75%(15명)가 청력 이상과 혈뇨, 혈당·당뇨와 심전도 이상 등 신체적인 건강 이상으로 ‘재검’ 소견이 나왔다.

정신건강에 대한 검사에서도 ‘이상’으로 나타난 이들이 40%(8명)에 이르렀다. 특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검진에 참여한 의사들은 “(아이들이) 분노 조절이 안 된다” “어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내놓기도 했다. 안명옥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은 “수용자들의 자녀 상당수가 또래 사이에서 위축되거나 상대방의 눈을 잘 안 마주치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 아이들은 속상한 일을 부모 등 가족을 통해 풀어내는데 그 과정이 순조롭지 않아 정신의학적인 문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검 소견이 나온 수용자 자녀들의 가정 형태를 살펴보면, 모자가정(8명·53.3%)이 가장 많았으며 친인척(4명), 조부모(2명), 아버지(1명)와 산다는 순이었다.

세움의 이경림 상임이사는 “수용자 자녀들은 이미 결손·빈곤가정이라는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던 상황에서 부모의 수감이라는 외상적 스트레스 상황에 추가로 노출된 경우가 많다”며 “엄마나 아빠라는 ‘적절한 양육자’가 사라지면서 수용자 자녀들은 일상생활 관리를 잘 못하게 되고, 건강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도 한다. 경제관념이나 자기관리 방법, 도덕적·사회적인 관계에서 부모로부터 의례적으로 배워야 할 것들을 놓치게 되는 것도 안타까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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