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박근혜 전 대통령 기록물의 ‘지정기록물’ 지정 및 이관을 결국 강행했다.
17일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을 이날 오전부터 대통령기록관으로 옮긴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최장 30년까지 보호기간을 정해 비공개할 수 있는 ‘지정기록물’ 지정 작업도 마무리 수순을 밟아간다는 뜻이다. 정부는 대통령 파면이라는 초유의 사태 직후 법제처 유권해석도 받지 않고 황 권한대행에게 지정기록물 지정 권한을 부여해 기록물 이관을 준비해왔다. 기록 전문가들은 황 권한대행에게 기록물을 ‘지정’하는 대신 ‘동결’하라고 요구해왔다.
■ 황교안 지정 권한 논란…법제처 유권해석도 안 맡겨 논란의 핵심은 황 권한대행이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지정할 권한이 있는지 여부다. 국가안보, 국민경제 안정 등을 저해하거나 정치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기록물에 대해 대통령은 15년 이내(사생활 관련은 30년)의 보호기간을 지정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은 “대통령기록물법에 별도 규정이 없다. 권한대행의 직무범위에도 제한 규정이 없다. 따라서 (권한대행은) 18대 대통령기록물에 대해 지정기록물을 지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록 전문가들은 대통령기록물법이 탄핵 등 대통령 궐위를 예상하지 못한 ‘입법 미비’ 상태라며 기록물을 ‘지정’하는 대신 ‘동결’하라고 요구해왔다. ‘박근혜 게이트’가 보도된 직후부터 지난 2월께까지 청와대가 문서세단기를 구입한 사실이 확인돼 수사 증거로 쓰일 수 있는 기록물이 파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법률 해석에 이견이 있는 경우 행정기관은 통상 법제처에 법령 해석을 요청한다. 하지만 행정자치부는 자문변호사 3명의 자문만 받고 ‘황 권한대행에게 지정권한이 있다’고 결론냈다. 법제처 관계자는 1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통령기록물 지정 권한이 논란이 됐기에 법령해석 요청이 들어올 것으로 생각해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청은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논란이 되는 법령에 대해 법제처 심사도 받지 않고, 부처 자문변호사의 자문만으로 일을 진행했다. 이후 법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록원 관계자는 “당시 본격적인 법적 다툼이나 공식적인 문제제기가 없던 상황에서 자구가 명확하다고 봤기 때문에 법제처 유권해석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4일 녹색당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황 권한대행이 박 전 대통령의 기록물 보호기간을 지정하는 것과, 박근혜 정부에 부역한 청와대 인사들이 대통령기록 이관을 담당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김유승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현재 국회에 관련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며 “그 법안이 정리된 이후에 이관과 지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 경찰 호위 속 무진동 탑차로 기록물 이송 대통령기록관은 이날 오전 9시30분께부터 박 전 대통령기록물을 차에 실어 옮기기 시작했다.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비전자 기록물 가운데 청와대 내부 집기나 선물부터 옮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록물은 크게 전자 기록물과 비전자 기록물로 나뉜다. 전자 기록물은 외장하드에 저장해 봉인하고, 비전자기록물은 편철하거나 상자에 담는다. 이 기록물을 경찰이 호위하는 무진동 탑차에 실어 세종시에 있는 대통령기록관까지 이송한다. 규정상 차량 제한속도는 시속 60㎞를 넘지 못한다. 대통령기록관은 기록물을 받는대로 인수 목록을 작성하고 실물 대조에 들어간다. 대조가 끝나면 검수 결과를 청와대 쪽에 통보하면서 공식적인 이관 작업이 마무리된다. 이후 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기록물관리시스템(PAMS)에 등록돼 보존·관리된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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