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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야당 생떼에 ‘볼모 잡힌’ 사법부

등록 2017-09-12 22:12수정 2017-09-12 22:23

헌재소장 인준안 부결 후폭풍
소수의견 냈단 이유로 자질 트집
정치적 셈법에 ‘사법 공백’ 외면
헌법소원 쌓여 국민들만 피해
대법원장 청문회서도 ‘정치 공세’
법조계 “국회가 권한 남용” 질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일 오후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린 국회 본회의가 끝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여야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키로 합의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일 오후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린 국회 본회의가 끝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여야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키로 합의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김이수(64·사법연수원 9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국회 임명동의안 부결을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다. 헌정 사상 초유의 헌재소장 부결 사태를 두고 ‘당리당략의 먹잇감으로 주요 헌법기관을 이용한 나쁜 선례로 남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이어 법률가로서의 자질에 문제가 없는 인사를 과도한 ‘낙인찍기’나 ‘트집잡기’로 잇따라 낙마시키는 국회의 행태가 민의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그로 인한 ‘사법 공백’이 결국 국민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부결 사태 다음날인 12일 법조계와 학계 등에서는 야당이 대정부 투쟁 수단의 하나로 사법부를 ‘볼모’로 삼는 행태는 대의민주주의 원리를 왜곡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국회의 권한을 남용한 것이자, 헌법기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에 사법 수장들의 임명동의권을 준 것은 선출직 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정확히 반영하라는 것”이라며 “김 후보자 동의안 부결은 이를 남용한 사례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이날 성명을 내어 “헌재소장 임명이 정부를 흔들고 각 당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고려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참으로 비극적”이라며 “적폐의 상징인 대통령은 탄핵되었지만, 국회는 여전히 과거 적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김 후보자에게 ‘좌파 딱지’를 붙여 부결시킨 야당의 구시대적 색깔론 행태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야3당이 김 후보자가 낸 일련의 소수의견에 대해 정치적 편향성을 이야기했지만,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황도수 건국대 교수(헌법학)도 “지금껏 보수적인 헌재소장만 있었는데,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소장의 자격이 없다는 게 야당의 판단 근거였다. 이게 국민의 판단 기준과 같았느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도덕성이나 자질 검증이 아닌 ‘코드인사’와 ‘색깔론’, ‘동성애 견해’ 등을 부각해, 정작 헌재 구성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민심을 왜곡했다는 지적인 셈이다.

헌정질서 수호와 기본권 보장의 최일선에 있는 헌재의 수장을 8개월 이상 빈자리로 방치한 책임을 정부와 국회에 동시에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종익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국가권력을 국민들에게 위임받은 이들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책무가 바로 정상적인 국가시스템을 유지하는 일”이라며 “이번 사태의 핵심은 정부 출범 뒤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헌법기관을 제대로 구성조차 못하는 정부와 의회의 무책임과 무능에 있다”고 짚었다. 김 후보자를 물고 늘어진 보수 야당뿐 아니라 헌법기관 수장의 임명동의안 처리에 안이하게 대응한 청와대와 여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단이다.

더구나 이날 김용헌(62·사법연수원 10기)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장관급)이 최근 이어진 헌재 공백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힌 점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헌재 공백에 책임있는 이들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사이 엉뚱한 사람이 책임을 떠안고 나선 모양새다.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부결을 주도한 야3당은 이날도 김 후보자의 부결 이유를 ‘문재인 정부의 코드 인사’ 등에 떠넘기기 바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부결을 통해 정권의 독선과 독주에 맞서 야3당이 강력히 견제할 기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전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국민의당이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라며 ‘캐스팅보트 정당’의 위력을 과시했다는 듯한 발언을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야3당의 이런 태도는 이날 진행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되풀이됐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김 후보자의 ‘좌편향’ 문제를 제기하며 “피의 대숙청이 일어날 것”(이채익), “사법부를 탈취하려는 듯한 모습”(주광덕) 등의 표현을 썼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김 후보자를 향해 “사법부 코드화를 초래하는 명백한 부적격자”라는 표현으로 ‘비토’ 의사를 밝혔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도 “청와대와 민주당의 태도는 (김명수 후보자의 국회 통과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회가 헌재 등 사법 영역을 ‘볼모’로 주도권 싸움을 벌이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는 올해 들어 7월까지 접수된 1600건이 넘는 헌법소원을 처리해야 한다. 최근 5년간 같은 기간 평균 1060여건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로, 탄핵 이후 헌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소원 신청 건수가 역대 최대 규모로 증가한 것이다. 이 중에는 6년째 헌재가 결론 내지 못한 최장기 심리사건인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등 소수·약자들의 기본권과 관련한 문제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 헌재는 ‘소장 없는 8인 체제’(법적 구성원 9인)이고, 동의안이 부결된 김 후보자가 자리마저 내놓겠다고 하면 당장 ‘7인 체제’를 걱정해야 한다. 헌재 안팎에서는 중요 사건을 처리하려면 ‘9인 체제’가 필수적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새 소장 후보자를 찾아 국회를 통과하려면 올해가 다 가버릴 수도 있고, 그사이 헌재 공백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수·약자인 국민들이 받을 수밖에 없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국가 최고 사법기관인 헌재가 완벽하게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점 자체도 불행한 일이지만, 결국 일반 국민들이 헌법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는 상태가 계속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홍석재 김민경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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