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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소득 0원 되거나 매일 전쟁… 가족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등록 2020-04-18 09:39수정 2020-04-18 13:50

[토요판] 커버스토리
코로나19 시대의 가족

소득 0원 고려인 가족
많지 않던 소득마저 끊기고 세살배기 딸 “아빠, 나가”에도
갈 곳 없는 고려인 아버지

9년차 맞벌이 부부네
학교·유치원 못 간 두 아이
“친정엄마가 모든 짐 떠맡아
엄마 없었으면 회사 관뒀을 것”

여섯 아동 키우는 그룹홈
하루 식기세척기 6번 돌아가
4~17살 여섯명 세끼 챙기는
공동생활가정 “매일매일 전쟁”

공포 두배 발달장애인 가족
“갇힌 삶은 지금껏 일상이었죠”
발달장애인 어머니의 뼈아픈 말
혹시 입원할까 미리 메모 챙겨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4살부터 17살까지 여섯명의 아이를 기르는 그룹홈, 재활 프로그램이 중지된 뒤 수많은 고민거리를 안게 된 발달장애인 아들과 그의 어머니, 소득 0원이 되어버린 고려인 5인 가족의 아버지와 아들, 친정어머니가 모든 돌봄의 짐을 떠안은 9년차 맞벌이 부부네 거실 풍경.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및 각 가정 제공,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4살부터 17살까지 여섯명의 아이를 기르는 그룹홈, 재활 프로그램이 중지된 뒤 수많은 고민거리를 안게 된 발달장애인 아들과 그의 어머니, 소득 0원이 되어버린 고려인 5인 가족의 아버지와 아들, 친정어머니가 모든 돌봄의 짐을 떠안은 9년차 맞벌이 부부네 거실 풍경.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및 각 가정 제공,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 바이러스 탓에 바깥에 마음 편히 나갈 수 없었던 두달간, 집 안에선 많은 일이 벌어졌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 공간에서 종일 붙어 지내야 했다. 돌아서면 삼시 세끼 밥때가 돌아오고 세탁기는 하루도 쉬지 않고 돌아갔다. 여기에 소득 0원이 되거나 배달음식조차 주문할 수 없었던 사람들도 있다. 사회적 돌봄이 정지된 시기 우리와 이웃의 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했다. 글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날이 밝으면 제각각 어디론가 외출해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되어서야 얼굴을 보는 사람들, 무척 친밀하지만 모든 일상을 함께하기엔 조금 버거운 관계, 힘들 때 가장 의지하지만 때론 짐이 되기도 하는 타인. 오늘날 가족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표현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집어삼킨 지 어느새 두달, 사회적 거리두기로 각자의 집에 갇힌 우리는 가족과 거리는 몹시 좁혀진 채 한 공간에서 매일 붙어 있게 됐다.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여기, 네 가족이 있다. 소득이 0원이 된 채 한달째 다섯명이 집에서 지내는 외국인 가족, 대구에서 배달음식도 시켜 먹지 못한 채 홀로 있는 60대의 아픈 남편을 두고 서울의 딸과 손주를 돌보는 어머니가 있다. 감염병 공포 속에 발달장애인 아들과 종일 붙어 지낸 어머니를 만났고, 하루에 식기세척기를 대여섯번 돌리며 여섯명(4~17살)의 아이에게 삼시 세끼를 해 먹이는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의 이야기도 들었다. 이들은 모두 코로나19 시기에 가족에게 부담이 떠넘겨진 ‘돌봄 재난’을 겪고 있었다. 아침마다 각자 일터로, 학교로, 유치원으로 흩어지던 ‘평화로운’ 일상이 깨진 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다. 하루하루 담담하게 살아내는 이들은 ‘재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답답해했다.

소득 0원 되어버린 외국인 5인 가정

“아빠, 나가 나가.”

이제 갓 말을 배운 세살배기 딸은 아침이 되면 아빠를 향해 이렇게 재잘댄다. 하지만 정작 아빠는 나갈 곳이 없다. 그동안 영어 과외를 통해 생활비를 벌었지만 코로나19 감염증이 퍼지면서 최근에 일을 그만두게 됐다. 봉제 공장과 휴대폰 판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온 아내 역시 한달 전부터 일감이 바닥나 나가지 못하는 상태다.

지난 9일 서울 관악구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 국적 하산(가명·46)씨와 그의 아들 만수르(가명·14). 이들은 고려인 아내 예카테리나 박(가명·38)씨와 그의 어머니(76), 세살 난 딸까지 다섯명이 한집에 살고 있다. 가족은 6년 전 한국에 재외동포비자 등을 받아 입국했다.​ 그동안 부부가 아르바이트로 월소득 180만~200만원을 벌어 살아왔다. 월세 63만원에 통신비 등 필수 지출로 100만원가량을 쓰고 나면 100만원도 안 되는 생활비가 남았다. 다섯명이 살기에 넉넉하진 않았지만 생활은 가능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이 가족의 지난 3월 소득은 0원이 됐다.

“소득 없어 힘들긴 하지만 지인들이 도와주고 그동안 저축한 약간의 돈으로 버티고 있어요. 아직은 괜찮은데 이 시기가 길어지면 어려움이 클 것 같아요.” 낙천적인 하산이었지만 생활고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더 힘들어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갈 곳이 없어 심리적 압박이 크다”고 하산은 말했다.

6년 전 한국 초등학교로 전학한 아들 만수르는 중학년 2학년이 되었지만 새 학기 학교는 한달 반 동안 열리지 않았다. 최근에야 온라인 개학을 했지만 아직 어색하다. 지난 한달간 집에서 종일 컴퓨터 게임만 했다. 만수르는 세살 난 어린 동생과 팔순에 가까운 외할머니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며칠 전엔 반가운 친구가 찾아왔다. 5년간 알고 지낸 동네 아주머니가 작은 선물을 들고 하산네 집을 방문했다. 선물엔 손편지와 함께 현금 20만원이 들어 있었다. “뭐 이런 걸 다 주세요.” 하산은 손사래를 쳤지만 고마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도움을 주는 이는 이웃만이 아니다. 하산은 “매일 안부를 물어주는 17명의 단톡방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하산과 만수르는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요즘 온 가족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을 그들은 “소소한 행복”이라고 했다. 소득이 적어 살림살이가 어렵지 않냐고 물으니 하산은 “다행히 이 동네 식료품 물가가 저렴하다”며 “외식 안 하고 시장에서 산 재료들로 요리를 해 먹으면 된다. 3만원짜리 소고기 안 먹고 1만원짜리 고기 먹으면 된다”며 밝게 웃었다. 그는 “우린 부자가 꿈이 아니다. 일상이 건강하고 즐거우면 그만”이라고 했다. 하지만 소득이 사라진 지금 고정비용으로 매달 수십만원씩 나가는 월세를 가족이 앞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들이 거주하는 서울시에선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입은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 가구원 수별로 30만~50만원의 재난긴급생활비를 지원한다. 하지만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 등록자 중 한국 국적자와 혼인하거나 가족관계에 있는 외국인에 한해 지급한다고 해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하산 가족은 대상이 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가 아니라도 우린 늘 갇혀 있어요”

감염병 공포가 한창 집집마다 번져가던 지난달, 박지숙(가명·49)씨는 조용히 메모지와 펜을 들었다. 자신과 아들 중 한명이 갑자기 코로나19 확진자가 되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아들만 걸리면 아들 혼자 입원해야 하니 걱정이고, 자신이 걸리면 집에 혼자 남을 아들은 누가 돌보나 걱정이었다. 혹여 둘 다 걸리면 같은 병실로 입원이 가능할까. 머릿속에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박씨는 아들의 생활에 관한 필수 정보들을 하나둘 메모지에 적었다. 아들에게 음식을 줄 때 유의점, 약에 대한 정보, 수면 패턴 같은 내용이었다. 본인이 아닌 누군가가 아들을 돌봐야 할 상황에 대한 대비였다. 평일 3~4시간 아들의 이동을 도와주는 활동지원사가 있지만 어머니만큼 세밀한 일상을 알고 있진 못해서다.

지난 14일 서울 강동구 자택에서 만난 박씨의 아들 정재현(가명·23)씨는 발달장애인이다. 특수학교를 졸업한 뒤 지금은 성인기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평생교육센터에 다닌다. 하지만 센터는 2월 말께 코로나19 감염증 예방을 위해 운영을 중단했다. 지금껏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센터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요즘엔 집에서 종일 휴대폰, 티브이, 컴퓨터로 좋아하는 동영상을 보는 게 일상이다. 생활리듬이 끊어져 기상시간도 뒤죽박죽, 식사시간도 불규칙해졌다.

“아들이 바이러스란 개념에 대해 잘 모르지만 손을 깨끗이 씻는 훈련은 잘하고 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센터가 문 닫은 걸 인지하기보다 방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박씨는 말했다.

학교에 안 가게 된 아들은 무척 신난 표정이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조금 염려된다. 발달장애인에게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규칙적인 식사를 하는 일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어렵게 얻은 능력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눈이 충혈되도록 동영상 보기에 매달리는 것도 걱정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기분이랄까요. 규칙적으로 밥을 먹고 가족이 아닌 사람과 만나는 사소한 일상도 발달장애인에겐 힘들게 얻은 결과예요. 한번 무너진 일상이 다시 회복될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각 가정의 돌봄 부담이 무거워지고 있다. 세 자녀를 둔 박지숙(가명)씨가 발달장애가 있는 둘째 정재현(가명)씨와 함께 오랜만에 서울 강동구 집 앞 놀이터에 나와 바깥바람을 쐬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각 가정의 돌봄 부담이 무거워지고 있다. 세 자녀를 둔 박지숙(가명)씨가 발달장애가 있는 둘째 정재현(가명)씨와 함께 오랜만에 서울 강동구 집 앞 놀이터에 나와 바깥바람을 쐬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아이나 어른이나 집에 있으면 제일 많이 열어보는 게 냉장고다. 대학생이며 비장애인인 재현씨의 누나와 여동생은 요즘 집에서 노트북으로 온라인 강의를 듣는다. 각자 학교와 센터에 나가던 삼남매와 이렇게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는 박씨는 자녀들과 함께 밥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첫째 딸과 셋째 딸은 가끔 파스타 같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엄마와 재현씨에게 먹어보라고 권한다. 며칠 전엔 요즘 유행하는 달고나 커피를 만들어 같이 마셨다. 평소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던 두 딸이 집에서 엄마 일을 거든다. 박씨는 ‘아, 애들이 집안일을 안 하는 거지 못하는 건 아니구나’ 생각한다.

여느 가정에서 알기 힘든 고충도 있다. 올해 대학생이 된 셋째가 집에서 사이버 강의를 듣는데 오빠인 재현씨가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며 돌발행동을 했다. 언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힘든 재현씨는 집에서 종종 괴성을 지르는 일이 있다. 가족들은 이해하지만 이 소리가 노트북 스피커를 통해 실시간 온라인 강의실에 모인 수강생들에게 전달되자 수업 중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부랴부랴 스피커를 껐지만 셋째는 이 상황이 민망했다.

재현씨는 4월20일에 태어났다. 이날은 장애인의 날이기도 하다. 곧 아들의 생일이 다가오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다. 엄마인 자신도 의식주 넘어 아들이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살게 할 방법을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더라도 재현씨 곁엔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 아파트 이웃들 중 엘리베이터에 탄 재현씨를 보고 같이 타는 걸 주저할 때가 있다. “‘우리 애는 안 물어요’라고 할 수도 없고 참 속이 상하죠.” 화를 낼 수도 없는 엄마는 그때마다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아파트 놀이터에 갈 때 한낮 또는 해가 진 저녁에 주로 가요. 발달장애인이 옆에 오는 것을 안 좋아하는 이웃들이 있어서 사람 없을 때 나가는 거죠.” 아들이 혹여 돌발 행동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힐까 박씨는 아들의 손톱을 수시로 잘라주는 일을 잊지 않는다.

어쩌면 발달장애인 가족은 오래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요당해왔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이중의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씨의 꿈은 아들이 지역사회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가족은 코로나19로 인해 단기적으로 갇힌 삶보다 장애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갇혀 살게 되는 것이 두렵다.

“코로나는 곧 지나가겠지만 그 후에도 우리 아들은 밖에 제대로 못 나가는 삶을 살지도 몰라요. 원하는 곳, 사람 많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없게 될까 그게 더 마음 아파요. 코로나가 아니라도 우리 가족은 늘 갇혀 있는 셈이에요.” 박씨는 발달장애인을 둔 가정들이 요즘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맞벌이 가족 3대가 겪은 위기

30대 직장인 김지희(가명·36)씨네는 지난 2월부터 줄곧 비상이다. 친정어머니 ㄱ(63)씨는 맞벌이 부부인 딸의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고향 대구에서 서울을 오간다. 주중엔 서울, 주말엔 대구 자택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몇년째 계속하고 있다.

지난 2월 대구가 코로나19 위기의 진앙지가 되면서 대구와 서울을 오가던 친정어머니의 발이 서울에 묶였다. 친정아버지 ㄴ(66)씨는 대구에서 배우자 없이 지내던 차에 면역력이 악화돼 대상포진에 걸렸다. 아픈 몸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병마와 싸워야 했다. 감염병으로 홍역을 앓는 대구에선 대부분의 식당이 한달 가까이 문을 닫아 배달음식도 이용할 수 없었다. 이렇게 가족 중 누구를 먼저 돌볼지, 돌봄을 선택해야 하는 가족도 있다.

ㄱ씨는 남편이 걱정됐지만 거의 두달간 대구에 갈 수 없었다. 감염병 걱정뿐만 아니라 서울 딸 집엔 돌봐야 할 두명의 어린 손주가 있기 때문이었다. 개학이 늦어져 학교에 가지 않는 여덟살 첫째, 유치원이 문을 닫은 여섯살 둘째, 최근 직장을 옮겨 신입사원 같은 적응기를 겪고 있는 딸 지희씨, 매일 격무에 시달리는 사위까지, ㄱ씨가 보살펴야 할 4인 가구다. 손주들의 삼시 세끼와 재택근무를 하는 딸과 사위의 식사까지 준비해야 한다. 딸은 출근시간이 되면 작은방에 들어가 컴퓨터와 씨름하다 점심시간이 되면 거실로 나와 겨우 식사를 하고 저녁 퇴근시간이 되어서야 방에서 나온다. “어머니께 너무 죄송하고 마음이 무거워요. 친정엄마가 지금 모든 (돌봄 부담) 짐을 다 끌어안고 있는데, 이 고통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막막해요.” 김지희씨의 속이 검게 타고 있었다.

9년차 맞벌이 부부 김지희(가명·36)씨의 친정어머니는 대구에 홀로 있는 남편과 자신의 손길이 간절한 서울의 손주들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사진 김지희씨 제공
9년차 맞벌이 부부 김지희(가명·36)씨의 친정어머니는 대구에 홀로 있는 남편과 자신의 손길이 간절한 서울의 손주들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사진 김지희씨 제공

김씨는 친정어머니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둘째를 낮 시간 동안이라도 잠시 유치원 긴급돌봄서비스에 보낼까 고민했지만, 이용자가 많은데 이 시기에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사람이 많다는데 제대로 돌봐줄까 고민하다 보내기를 포기했다. 오는 20일 시작될 첫째 아이의 온라인 개학도 김씨네 가족에겐 부담이다. 학교에 처음 입학한 즐거움을 교실에서 누리지 못하는 첫째가 안쓰러운 것은 둘째 치고, 아이를 위해 불편한 전자기기를 다뤄야 하는 친정어머니가 마음이 쓰인다. 알림장도 예전처럼 종이가 아닌 모바일 시스템에 접속해야 알 수 있다. 할머니가 아이를 돌보며 온통 컴퓨터, 휴대폰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태산 같다.

김씨는 “친정엄마 덕분에 이 난국에 제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다니고 있다. 엄마 없었으면 아마 못 버텼을 것 같다”며 마음 아파했다. 특히 편찮으신 친정아버지를 혼자 계시게 했다는 죄책감까지 김씨를 괴롭힌다. 친정어머니 ㄱ씨는 대구에서 병마와 싸우는 남편과 자신의 손길이 간절한 손주들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휴대폰 차지하려고 매일 전쟁”

9년 전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을 꾸린 김상숙(가명·64)씨는 요즘처럼 분주한 때는 ‘홈’을 시작하고 처음이라고 했다. 그룹홈은 가정이 해체돼 사회의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보육원 같은 시설이 아닌 일반 가정 같은 환경에서 키우고자 하는 생활공동체다. 40평(130㎡) 규모의 2층짜리 단독주택에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네살부터 올해 고3인 열일곱살까지 여섯명의 아이들이 함께 산다.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떼지 못한 도윤(가명·4), 경증의 장애를 가진 경진(가명·6), 초1 희찬(가명·7), 초3 민현(가명·9), 고1 태우(가명·15), 고3 진희(가명·17)가 그룹홈의 가족이다.

학교나 유치원이 문을 닫으니 그룹홈의 육아 부담은 부쩍 커졌다. 가까이 공원이 있어도 나가지 못하니 아이들은 칭얼대며 답답해한다. 온종일 집에 머물며 생활리듬이 깨진 아이들은 저마다 불편한 일이 생길 때마다 조르고 짜증내는 일들이 많아졌다. 늦게까지 잠을 안 자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오전 내내 늦잠을 자기도 한다. 무엇보다 김상숙씨는 아이들 식사를 챙겨주는 일이 고되다. 시시때때로 먹을 것을 찾는 아이들로 주방은 쉴 틈이 없다. 식기세척기가 하루에 5~6회씩 돌아간다. 며칠에 한번꼴로 갔던 시장을 요새 매일 가서 장을 봐야 한다. 아이들이 자주 간식거리를 찾아서 김씨는 냉장고 맨 아래 칸에 언제나 꺼내 먹을 수 있는 간식을 놔둔다. 제때 밥을 먹지 않는 아이들이 있어 김씨는 온종일 아이들과 씨름을 한다.

집에 있는 아이들은 주로 학습지를 풀거나 티브이를 본다. 겨우 오전 9시에 눈을 떠 <교육방송>(EBS)이 나오는 티브이 앞에 앉은 아이들은 곧 졸기 시작한다. 가장 골칫거리는 전자기기다. 집에서 컴퓨터와 휴대폰 쟁탈전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서로 쓰겠다고 다툼이 일어난다. 어른들의 휴대폰은 아이들이 게임하는 데 전부 동원된다. 김씨와 그의 딸, 선생님들의 휴대폰을 모두 아이들이 빼앗아 종일 게임을 한다.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 하니 학교에 다니는 네 아이는 저마다 한대씩 컴퓨터가 필요하다. 다행히 지난해 고3 학생에게 후원 온 노트북이 있어 진희는 이 위기를 넘겼고, 최근 고1 태우도 학교에서 대여를 받았다. 그룹홈엔 사무용 컴퓨터 한대가 있을 뿐이라 초등학생 둘은 여전히 노트북이 부족해 온라인 개학이 막막한 상황이다.

김씨는 매일같이 소독약이 든 방역장비를 짊어지고 6개의 방, 3개의 화장실마다 뿌리고 있다. 그룹홈 협의회에서 마스크를 보내와 다행히 아이들의 마스크는 큰 어려움 없이 챙겨주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티브이를 보고 코로나19가 무서운 바이러스라는 것을 알고 있다. “코로나균은 안 좋은 균”이라며 세면대에 가 스스로 손을 씻는 아이들을 보면 김씨의 입가엔 엷은 미소가 번진다.

아직까진 견디지만 언제까지 지속가능할지는 의문이다. 평소보다 돌봄 부담이 몇배 커진 탓에 김씨는 입가에 포진이 생겨 며칠 전 병원에 가 수액주사를 맞았다. 몸은 피곤하지만 여섯명의 아이들과 매일 한집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이 한편으론 김씨에게 즐거운 일상이기도 하다. 하루는 밤에 잠을 자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일어났는데, 각자 제 방에서 잠들었던 아이들이 전부 자신의 옆에서 딱 붙어 잠을 자고 있었다.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김씨는 웃으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병원에 갈 정도로 버거워진 돌봄의 무게를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재난 상황이 발생하자 정부는 학교나 유치원의 문을 닫고 돌봄 대상자를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집이라고 해서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질병의 공포와 스트레스는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전파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선 돌봄 공백을 넘어 방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증 시대는 사회적 책임을 가족이 더 많이 떠맡도록 몰아붙이고, 위기를 껴안은 가족일수록 재난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돌봄에도 ‘뉴노멀’이 필요한 때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가족사회학)는 “여러 경제활동은 지속하면서 오로지 돌봄시설만 문을 닫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돌봄은 가족이 하면 된다’는 후진적 발상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돌봄이 얼마나 후순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신 교수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국민 안전에는 방역과 경제 위기 대응뿐만 아니라 일상이 무탈하게 유지되는 모든 것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는 방역에서 우수한 모델이었지만 그 밖의 영역에서는 전혀 선진적인 모델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에 대해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한국 사회에 낸 숙제의 맨 앞에 가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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