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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돌봄의 사회화, 그 이상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등록 2020-04-18 09:39수정 2020-04-18 13:30

[토요판] 커버스토리
돌봄 재난 해법은?

코로나19로 가정에 떠넘겨져
돌봄의 분배와 균형 고민할 때

가족주의에 기대온 사회안전망
가족의 해체, 개인화 시대 도래
가구 중심 재난 대응 적절할까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학교와 유치원이 문을 닫은 기간 맞벌이부부 김지희(가명·36)씨네 8살, 6살 두 딸은 집에서 학습하거나 티브이를 본다. 김지희씨 제공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학교와 유치원이 문을 닫은 기간 맞벌이부부 김지희(가명·36)씨네 8살, 6살 두 딸은 집에서 학습하거나 티브이를 본다. 김지희씨 제공

지난 3월17일 제주도에서 열여덟살 발달장애인 아들을 키우던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삶 자체가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 담겼다. 코로나19로 특수학교가 문을 닫자 감염병 공포와 돌봄노동에 대한 부담이 겹쳐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란 추정이 시민사회에서 제기됐다. 같은 달 20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코로나19로 발달장애인은 삶의 균형이 무너졌고 가족들의 보육 부담은 더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올라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아동, 고령자, 장애인, 외국인 등 평소 돌봄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이 다시 위기에 처했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되도록 집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이를 계기로 학교·유치원·어린이집 등 외부 돌봄기관이 문을 닫자 가정은 감염병으로 인한 재난과 함께 돌봄 부담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다.

가정으로 되돌아온 돌봄노동

지난달 말 육아정책연구소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영유아 돌봄 양식의 변화와 일하는 부모의 대응을 설문조사 해보니, 학교·유치원의 휴원 이전과 이후 영유아 돌봄에서 가족의 부담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발표된 ‘육아정책브리프 81호’(최윤경 연구위원)를 보면, 2월 말 시작된 유치원·어린이집의 휴원과 3월 초등학교의 개학 연기로 자녀를 부모가 직접 돌본다는 응답이 대폭 늘었다. 지난달 25일부터 3일간 초등학교 3학년 이하(만 8살 이하) 자녀를 둔 전국 부모 5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다. 3~5살 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의 경우 ‘부모가 직접 돌본다’ 항목이 유치원·어린이집 휴원 이전 13%에서 휴원 이후 47.3%로 3배 이상 높아졌다. ‘조부모나 친인척이 돌본다’ 항목도 휴원 이전 5.9%에서 휴원 이후 23.7%로 4배가량 뛰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6~8살)의 육아 실태도 같은 양상을 보였다. ‘부모가 직접 돌본다’ 항목이 휴교 이전 26.5%에서 휴교 이후 45%로, ‘조부모나 친인척이 돌본다’ 항목도 휴교 이전 15.6%에서 휴교 이후 21.3%로 높아졌다. 자녀 혼자 있는 경우도 6.2%에서 12.8%로 2배 높아졌다. 돌봄 공백의 대안을 찾지 못해 자녀만 집에 두는 가정이 는 것이다.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외부 돌봄기관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은 가족이 전적으로 돌봄 책임을 떠맡았던 ‘돌봄의 사회화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놨다. 처음 도입된 가족돌봄휴가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많이 사용했다. 지난달 27부터 4일간 진행된 육아정책연구소의 또 다른 설문조사(응답자 97명)에서 가족돌봄휴가 활용 여부를 물으니 응답자 중 여성은 27%가 활용했다고 답했고 남성은 14.2%가 활용했다고 답했다. 가정 내 돌봄 부담을 주로 여성이 맡는 경향이 재난 때도 여전했다.

사회적 돌봄을 제공하는 기관이 두달간 대부분 운영 정지된 초유의 ‘돌봄 재난’ 상황에서 돌봄 정책에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에 이어오던 돌봄 담론을 뛰어넘는 여러 상상력을 발휘해 정책을 짤 때”라며 “그동안 돌봄의 사회화가 이뤄지면 모든 돌봄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해왔는데 공적 돌봄기관이 ‘올스톱’된 상황은 그 누구도 대비하지 못했다. 돌봄의 사회화 그 이상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간 집중해온 돌봄기관의 양적 확장만으로는 코로나19 같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감당해낼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돌봄노동을 외부 기관에 맡기는 시간을 확대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며 기관과 가정이 함께 돌봄을 맡아 균형을 이루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난주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돌봄의 사회적 역량이 전체적으로 높아져야 한다. 모든 이가 돌봄 역량을 갖춰 남녀 간 분배든 가정과 기관 간 분배든 돌봄 책임을 균형있게 나누고, 개인의 생활시간에서도 노동과 돌봄 간에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돌봄노동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코로나19 감염증에 따른 ‘돌봄 재난’처럼 반드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족주의에 기대온 사회안전망

더욱이, 국가가 정의하는 ‘정상가족’ 안에선 돌봄이 가중되고, ‘정상가족’ 밖에 있는 이들에겐 각종 사회안전망이 닿지 않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 가족주의에 기반한 사회안전망이 다양한 가족 구성을 포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31일 가족구성권연구소는 논평을 내어 재난지원금 등 재난 때 이뤄지는 긴급복지는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4인 가구 중심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코로나19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번 대책은 복지는 가족에게 1차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며 재난 상황에서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경제적 고통을 받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집단을 더욱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에선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입은 중위소득 100% 이하 가정에 가구원 수별로 30만~50만원의 재난긴급생활비를 지원한다. 하지만 거주지가 서울인 등록 외국인 중 한국 국적자와 혼인하거나 가족관계에 있는 외국인에 한해 지급한다고 해 이주공동행동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상태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이주민이 사는 경기도도 재난기본소득 지급 대상에서 외국인을 제외했다. 이주공동행동은 “경제활동을 하며 다양한 종류의 세금을 내고 있는 외국인을 재난기본소득 대상에서 배제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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