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유발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관계자들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병원 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서 제외되는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하며 백신 휴가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부정적 사고방식을 못 버려서, 암이 재발한 것 같아요.”
아픈 몸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사고방식과 질병을 연결 짓는 경우가 상당하다. 물론 이는 몸이 아픈 당사자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흔한 정서다. 일전에 한 공공기관에서 진행한 암 환자 캠프에 강의를 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한 참여자가 질병을 한탄하는 이야기를 길게 발표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담당 공무원은 혼잣말로 “저렇게 부정적이라, 암에 걸렸네”라며, 혀를 찼다.
인터넷에 흔한 다양한 질병 환우회 카페에 들어가 보면, ‘긍정적 사고’가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며 ‘매사 긍정하기’나 ‘감사의 마음 갖기’를 주제로 한 다양한 글이 올라와 있다. 심지어 강하게 믿으면 현실이 된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주장하는 <시크릿> 같은 유의 책 소감문들도 많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신봉하는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암을 원했기 때문에 암에 걸린 것’이라며, ‘암이 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면 암이 낫게 된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간다.
책으로 출간된 질병 수기들을 펼쳐보면 질병은 ‘선물’이라거나, 질병을 통해 부정적 태도를 버리고, 긍정의 마음을 배우게 됐다는 내용이 넘친다. 가족의 애틋함, 일상의 찬란함,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만사 긍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종교가 있는 일부 사람들은 ‘신이 암과 같은 고난을 통해 긍정하는 마음을 배우게 인도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종교가 없더라도 ‘부정적인 생각이 끼어들 틈 없이 늘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반드시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더니 질병이 실제 나았다’는 이야기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이같이 ‘과잉된, 긍정적 사고에 대한 긍정’은 질병 영역에만 포진해 있지 않다. 여러 기업에서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강의를 경쟁적으로 유치한다. 심지어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에 분노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라고 말한다. 즉, 위기를 기회로 여기고 빨리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또 다른 기회를 다른 사람보다 얼른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무서운 이데올로기다.
물론 긍정적 사유 자체가 언제나 전면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안토니오 그람시도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과잉된 긍정성 강조가 낳는 폐해다. 이를테면 부정적 사고방식이 암이나 중증 질병의 원인이라는 식으로 지목하는 태도들이다. 이는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 어려움이나 불행을 자신의 긍정성 부족 때문으로 여기게 만들고, 더 긍정적으로 사고하지 못한 자신에게 책임을 지우고 다그치게 만든다. 이런 문화는 곤경을 불러온 현실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지워버리고, 자책감에 빠지게 한다.
이런 문화가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유방암을 경험했던 미국의 정치활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암 환자에게 매사 긍정적 마음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문화에 분노한다. 그의 책 <긍정의 배신>을 보면, 애초 긍정주의는 가혹하리만치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청교도적 칼뱅주의에 반발하는 신사회운동으로 태동했지만, 20세기 들어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탈바꿈했음을 지적한다. 그는 이런 긍정주의가 비판의식과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 억제와 최면을 불러온다고 강조한다.
적극적으로 동의되는 말이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본 ‘긍정 인문학’ 강의가 떠오른다. 강사가 화가 나거나 고민되는 문제를 꺼내보라고 말했다. 한 참여자가 대학의 과도하게 높은 등록금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빚더미를 안게 되는 현실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다. 강사는 부정적으로 사고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면 되는 일이라고 답했다. 이어서 암 환자였다가 치료 5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자기소개를 한 이가 치료 과정에서 부당하게 느꼈던 의료적 관행이나 건강보험제도에 대해 비판하면서, 암이 재발하면 암세포 때문이 아니라 재정 파산으로 죽게 될 것 같아서 두렵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그렇게 부정적 사고를 하면 재발한다며, 세상을 만사 긍정적으로 사고해서 다시 암에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갔다. 청중석에서는 감탄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보는 내내 무슨 종교 활동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관리와 경영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이런 식의 ‘긍정교’(肯定敎)가 갖는 힘이 더 강력해졌다. 많은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문제적 현실에 대해 저항하기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봉합하고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만든다. 즉, 신자유주의 시대에 긍정교는 개인의 현실 비판의식과 저항의식을 안온하게 허물어뜨리는 첨예한 ‘무기’가 된 셈이다.
다시 질병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앞서 봤듯 주류 질병서사는 질병이 선물이라며, ‘긍정과 감사’로 점철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질병을 곧바로 불행으로 만드는 사회인 만큼, 더욱이 질병을 선물, 긍정, 감사의 언어로 봉합하는 질병서사가 중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질병서사들은 질병을 발생시키는 구조나 문화를 휘발시키는 것을 넘어서, 그런 문제를 다루는 것 자체를 어렵게 한다. 그런 문제제기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는 부정적 태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질병서사를 바꿔내는 일이라고 본다. 자신의 질병 경험을 서사화하는 것은 아픈 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질병은 모든 생명체가 위협을 느끼는 사건이고, 사유하는 동물인 인간은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해석하고 삶 속에서 위치 짓고 싶어 한다. 자신의 질병 경험을 해석한다는 것은 의료적 치료와 별도로 질병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주류 질병서사를 바꿔내는 게, 질병을 둘러싼 우리 사회 철학과 관점을 바꾸는 유용한 방식이 될 것이다.
대안은 무엇일까. 나는 주류 질병서사의 대안적 개념으로 ‘저항적 질병서사’를 제안해왔다. 이는 질병을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해하면서, 질병 발생의 사회구조적 문화적 요소 안에서 자신의 질병을 해석하는 것이다. 동시에 질병을 낳는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를 긍정으로 봉합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분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을 중시한다. 나는 몇년 전부터 아픈 몸 동료들과 ‘저항적 질병서사’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작업을 오래 해온 사회단체 ‘다른몸들’의 질병 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건강불평등과 같은 건강과 질병의 사회적 맥락을 함께 공부하면서, 자신의 저항적 질병서사를 글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모임 구성원인 다리아(활동명)는 여느 아픈 몸들처럼, 좋은 음식을 챙겨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지 않아서 몸이 아프게 됐다고 자책해왔다. 그러나 저항적 질병서사 작업을 하면서, 이렇게 재해석했다. “일상적으로 야근을 하고 출퇴근에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집에 살기 때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요가를 다닐 여분의 에너지와 시간이 없었다. 내가 더 부지런하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니라, 일상적 과로와 서울의 높은 집값이 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는 잘못된 생활 습관과 게으름으로 인해 질병이 왔다며 질병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고, 아픈 몸을 자책감에 시달리게 하는 ‘질병의 개인화’를 벗어나는 과정이다. 동시에 질병의 사회구조적 맥락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항적 질병서사를 쓰는 일은 아픈 몸으로 살고 있다는 외침이다. 질병 경험을 사회적으로 해석하고 의미화하는 순간 그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행위 자체가 질병권 운동이다. 이 작고 느린 움직임에 함께할 수 있어 벅차다.” 질병을 일으키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긍정으로 봉합하는 게 아니라, 질병권 운동을 하는 힘으로 전환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질병 경험을 애써 긍정으로 봉합하지 않아도, 삶의 일부로 긍정할 수 있는 사회를 기다린다. 이는 다양한 저항적 질병서사가 더 많이 생산될 때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 여성·평화·장애 관련 운동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탈식민페미니스트. 국제 현장 연대 활동에서 건강이 손상된 뒤 투병 경험을 정치사회적으로 접근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썼다. 공저로 <라피끄: 팔레스타인과 나> <비거닝> <포스트 코로나 사회>가 있다. 사회단체 ‘다른몸들’에서 활동 중이다. 아픈 몸을 둘러싼 사회·경제·정치적 문제를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