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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더 많이 기댈 수 있어야 덜 아픈 사회가 된다

등록 2021-05-22 10:49수정 2021-05-22 11:05

[토요판] 조한진희의 잘 아플 권리
⑩의존가능 사회

아픈 몸이 다니기 힘든 공간에서
고립과 위축의 악순환 형성 흔해
‘어떤 조건’은 손상을 장애로 확대
무능력한 몸이 살아낼 수 있을까?
복잡한 지하철역 같은 곳에서 누군가는 표지판에 의존해서 갈 곳을 찾아내지만, 어떤 사람들은 표지판보다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게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복잡한 지하철역 같은 곳에서 누군가는 표지판에 의존해서 갈 곳을 찾아내지만, 어떤 사람들은 표지판보다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게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몸이 아프게 되면 사회적 활동이 줄어든다. 이는 피부 아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피부 바깥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질병으로 인한 개인의 체력 저하가 움직임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아픈 몸들도 돌아다닐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몸이 아프게 되면 사회적 고립과 위축의 악순환이 형성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먼저 ‘길치’의 헤맴에 대한 이야기를 좀 길게 해야겠다. 얼마 전 회의 참석을 위해 경춘선 아이티엑스(ITX)-청춘 기차를 예매했다. 워낙에 공간 감각이 떨어지는 ‘길치’인데다가 특히 서울 청량리역처럼 복잡하고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공간 지각력이 더욱 떨어진다. 게다가 여러해 동안 사회적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살면서 주로 집 근처 텃밭이나 도서관 같은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번다한 도심에 갈 때는 다소 긴장하게 된다.

‘어떤 조건’이 장애를 만든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기차 시간보다 40분 먼저 역에 도착했다. 헤매는 것을 염두에 둔 시간이었다. 청량리역은 여러 노선이 지나는 곳인 만큼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주는 위압감과 번잡함을 품고 있었다. 표지판을 보고 경춘선 방향을 따라갔지만 교통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지하철용 개찰구만 보일 뿐 기차용 개찰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 여섯명에게나 물었지만 잘 모른다는 답변이었고, 오히려 서너명의 이주노동자로 보이는 분들이 나에게 와서 경춘선 타는 게이트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 넓은 청량리역을 헤매는 동안 안내데스크를 볼 수 없었고(나중에 확인해 보니 3층에만 있다고 한다), 지나가는 승무원도 단 한명을 볼 수 없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불현듯 기차표를 예매할 때, ‘승차권의 큐아르(QR)코드를 이용’하라던 메시지가 기억났다. 혹시나 해서 지하철 개찰구로 다시 가보니, 지하철 카드를 찍는 곳 아래 아주 작게 큐아르코드를 찍는 곳이 보였다. 그 개찰구에서 스마트폰의 코레일 앱을 열고 큐아르코드를 찍고 드디어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승강장을 찾을 수 없었다. 청량리역은 수많은 노선이 지나는 만큼 승강장이 많았고 경춘선을 어디서 타는 것인지 다시 헤매는 시간이 이어졌다. 앱의 승차권에는 승강장 번호가 공란이었기 때문에, 경춘선 타는 승강장을 찾았던 것인데 나중에 포털창에 검색을 해서 찾아보니 ‘탑승시간 15분 전’부터 앱 화면에 승강장 번호가 표기되는 시스템이었다. 너무 낯선 시스템이라 긴장하다 보니 휴대폰 앱 승차권에 작게 안내되어 있는 글씨를 놓쳤던 것이다.

마침내 길고 긴 헤맴 끝에 드디어 승강장을 찾아내서 달려갔는데, 이미 기차는 저만큼 출발하고 있었다. 허탈함과 함께 어디를 향하는지 모를 분노가 일었고, 곧 무력감이 밀려왔다. 어떤 이들은 청량리역 같은 공간에서 표지판만으로 제 길을 찾는 게 식은 죽 먹기겠지만, 나처럼 도심의 시스템으로부터 다소 멀어진 사람이나 노년층에게는 그렇지 않다. 밖에서 보기에 번쩍번쩍한 청량리역 내부는 누군가에게 이런 미로 같은 지옥이다. 그리고 무력함과 소외감을 느끼는 장소이기도 하다. 결국 뒤늦게 회의에 도착했는데, 이 상황을 설명할 의지도 자신도 없었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이 ‘무능력한 몸’으로 얼마나 더 살아낼 수 있을까? 도대체 이 도시는 어떤 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인가?

이런 자괴감은 청량리역처럼 거대한 공간에서만 느끼는 게 아니다. 거리를 걷다가 이따금 현기증이 다소 심하게 일렁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잠시 앉아서 호흡을 고르려고 해도 벤치 하나를 찾기가 어렵다. 결국 카페를 찾아 들어가면, ‘셀프서비스’인 상황이다. 그런 날은 카운터에서 음료를 들고 테이블까지 오는 게 고역이다. 몇천원을 더 내고서라도 테이블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서빙해주는 카페를 가고 싶지만, 도심에서 그런 카페는 드물어졌다. 나처럼 ‘셀프서비스’를 싫어하는 이가 또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인 중 한명인데, 그는 종종 ‘셀프서비스’ 앞에서 자신이 작아진다고 말한다. 오랜만에 수다를 떨기 위해 카페에서 만나면, 지인은 아픈 사람을 매번 부려먹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셀프서비스가 손상을 장애로 만든다”고 답하며 웃곤 한다.

이 말은 “손상은 손상일 뿐인데, 특정한 조건이 손상을 장애로 만든다”는 장애운동의 오래된 구호를 적용한 것이다. 즉, 서빙을 해주는 카페라면 그가 음료를 주문하고 마시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그러나 셀프서비스인 카페에 가면 그가 두 다리로 보행하지 못한다는 손상 혹은 휠체어 이용자라는 특성이 장애가 된다. 우선 카운터 옆 음료가 제공되는 공간이 높아서 아예 접근이 안 될 때가 수두룩하다(음료를 내주고 받는 곳은 기본적으로 서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설정된 높이다). 설령 운 좋게 높이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음료를 받아서 테이블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카페의 테이블 사이 거리는 좁고 그 사이를 ‘베스트 드라이버’ 실력으로 운전해도 의자나 테이블들에 부딪히게 되고, 결국 덜컹이는 통에 음료가 흐르기 일쑤다. 그의 몸에 맞는 편의 제공이 되지 않아, 그는 무기력함이나 ‘무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청량리역 같은 거대공간서 길 잃고
셀프서비스가 힘든 ‘손상된’ 이들도
다양한 방식의 의존이 가능해야
질병에 종속되지 않는 삶도 가능

더 많은 것에 ‘의존’할 수 있어야

조금 더 부연하면, 손상을 장애로 만드는 가장 흔한 예는 청각장애와 한글자막 같은 것이다. 청각장애인들이 한국 영화를 보기 어려운 것은 들리지 않음이라는 특성 때문이 아니라 한글자막이나 수어통역이 없는 환경이다. 자막이나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음이 그들의 특질 혹은 손상을 장애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는 자꾸 원인을 뒤바꿔치기해서, 청각장애가 있기 때문에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우긴다.

우리 모두 무언가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나 같은 청인들은 음성언어에 의존하고 청각장애인들은 문자나 수어에 의존한다. 젊은이들을 비롯한 상당수의 사람들은 기차표를 예매할 때 스마트폰 앱에 의존하고, 노인들은 대개 역의 창구에 의존한다. 청량리역 같은 곳에서 누군가는 표지판에 의존해서 갈 곳을 찾아내지만, 노인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표지판보다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특정한 의존 행위 혹은 의존하지 못하는 행위는 문제가 된다. 즉, 나 같은 청인이 음성언어에 의존하는 것은 ‘정상’이라서 드라마가 소리 없이 방송되는 것은 ‘사고’지만 문자나 수어에 의존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자막이나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의존이 문제이므로.

스마트폰을 비롯한 다양한 기계와 애플리케이션에, 그리고 다량의 정보에 ‘의존하는 것’을 강조하는 시대가 됐다. 그런 것에 능숙하게 ‘의존’하는 것은 효율성, 적절함, 세련됨의 상징이 됐고, 그런 것에 잘 의존하지 못하는 사람은 구식인 것을 넘어서 일상생활에 상당한 불편이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테면 스마트폰에 익숙한 이들이 시각을 다퉈 기차표를 예매해버리고 노인들은 연휴 때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서 서서 가게 되고, 작년 마스크 대란 때처럼 마스크가 있는 약국을 알려주는 앱 정보를 볼 수 없던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고도 앞에서 매진되는 바람에 일회용 마스크를 빨아 쓰며 버텼던 것처럼 말이다.

의존과 자립에 관해 일본의 경제학자 나카무라 히사시는 “많은 사람에게 의존해야 자립할 수 있으며, 다양한 의존이 가능해야 종속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이를 좀 변주해서 여러 의존이 가능해야, 질병에 종속되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의존은 여행, 사회생활, 복지제도 등 다양하다. 무엇보다 도시가 사람들이 다양한 것에 의존하며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이겠다. 좋은 사회는 다양한 의존이 제공되고, 그 안에서 의존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다. 노인들은 정보를 얻을 때 스마트폰보다 사람에게 의존하는 게 편하지만, 최근 청년층에서 증가하고 있는 소위 ‘은둔형 외톨이’들에게는 사람보다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게 안전한 감각을 준다. 자신에게 맞는 의존의 선택지가 적을수록 사람들은 사회생활에 제한을 겪고 ‘약자화’된다. 공간을 얼마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가는 삶의 물리적 범위를 의미하며, 물리적 범위가 삶의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 범위이기도 하다.

오늘 서울시에 청량리역 이용 개선 민원을 제출했다. 청량리역은 도대체 어떤 몸을 가진 이를 시민으로 상정한 공간인가요? 공공장소는 다양한 시민에게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곳곳에 안내데스크를 설치하고 안내 인원을 배치하기 바랍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기기와 정보 이용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을 ‘약자화’하고 배제하지 말아주십시오.

▶ 조한진희 여성·평화·장애 관련 운동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탈식민페미니스트. 국제 현장 연대 활동에서 건강이 손상된 뒤 투병 경험을 정치사회적으로 접근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썼다. 공저로 <라피끄: 팔레스타인과 나> <비거닝> <포스트 코로나 사회>가 있다. 사회단체 ‘다른몸들’에서 활동 중이다. 아픈 몸을 둘러싼 사회·경제·정치적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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