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가 부처 개편안 마련을 위해 진행한 간담회의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는 여가부 안이 어떤 방향으로 마련되든 국민이 해당 간담회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기록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여가부 폐지’ 등을 포함해 부처 개편안을 내놓기 위해 전략추진단을 만들었다. 6월17일 출범한 전략추진단은 여성·청소년·가족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 5차례 간담회를 열었다. 내부 직원 간담회는 2차례 진행했다.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략추진단 간담회 자료를 제출하라고 여가부에 요청했지만, 여가부는 관련 회의록을 제출하지 않았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26일 <한국방송>(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해당 간담회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따른 법령에 회의록 의무 작성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공공기록물법(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18조는 공공기관에서 △주요 정책의 심의 또는 의견조정을 목적으로 차관급 이상의 주요 직위자를 구성원으로 하여 운영하는 회의 △그 밖에 회의록의 작성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주요 회의 등을 개최할 경우 회의록을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장관은 전략추진단 회의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셈이다.
김 장관은 “저희가 각 간담회에 핵심적인 내용은 간단하게나마 다 적시해서 국회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가부가 유정주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5차례 간담회 요약본은 192글자다. 간담회마다 한두 줄씩 요약한 것이 전부다. ‘현 여성가족부 개편은 필요하며, 젠더갈등 해소 등 남녀가 상호 배려․존중할 수 있도록 정책지원 필요’‘분절적인 아동․청소년 정책을 통합하여 추진할 필요’ 등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견이 나왔는지 파악할 수 없는 수준이다.
‘밀실 회의’라는 지적이 나오자, 김 장관은 간담회 참석자 보호를 이유로 내세웠다. 정작 일부 참석자들은 “당연히 기록할 줄 알았다”고 했다. 김 장관은 “여가부 폐지에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들의 간담회에서 본인들의 의견을 이야기하시는 건데 그게 그대로 나간다고 하면 오히려 그분들의 어떤 말씀에 자유로움을 제한하고 그분들에게 어떤 부담을 드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밀실’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밝혔다. 여가부가 유정주 의원실에 낸 자료에는 간담회마다 관련 전문가 6~7명이 참석한 것으로 나오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서’라며 그 명단도 비공개했다.
여성가족부가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전략추진단 간담회 회의 내용.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일부 참석자들은 여가부가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은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ㄱ씨는 <한겨레>에 “간담회 참가자들이 발언 내용을 기록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 같은 건 한 적 없다”고 했다. 참석자 ㄴ씨는 “발언 내용이 기록되는지 아닌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참석자 ㄷ씨는 “당연히 여가부에서 기록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여가부에서 먼저 간담회 내용이 외부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관련 자료도 미리 받지 못하고 현장에서 받았고, 본 것도 그 자리에 모두 두고 나왔다”고 했다.
참석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하고, 발언 내용을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회의록처럼 발언자를 익명으로 보호하고 발언 내용만 남기는 식이다. 그러나 여가부 관계자는 “간담회에 대한 어떤 회의록도 작성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참석자 ㄹ씨는 “발표자가 발표하고, 나머지 참석자들이 어떤 방향으로 정책이 나갔으면 좋겠다고 다양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분위기였다”며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회의가 기록되지 않았다니 안타깝다”고 했다.
전문가는 여가부의 ‘법으로 정한 회의록 의무 작성 대상이 아니다’는 해명은 문제가 있다고 봤다. 정진임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은 “공공기록물법은 업무와 관련한 것은 기록으로 남기는 게 대전제고, 그중에 중요성을 띄는 사안에 대해서는 회의록과 연구검토서 등을 특별히 더 기록으로 남기라는 취지”라고 지적했다.
“여가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기록 책임 회피해”
정 소장은 “법이 ‘이 회의는 꼭 기록으로 남기라’고 특정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회의록 남기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라며 “여가부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기록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여가부라는 기관의 존폐를 결정하고, 직접 이해당사자가 있는 이번 일에는 설명 책임성과 투명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기록으로 남기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시민이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유정주 의원은 “‘여가부 폐지’라는 최대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기록한 문서가 없다는 것이 상식적인가. 관련 내용을 폐쇄적이고 선택적으로 공개하고 있지 않은지 여부는 여가부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