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기차탈래 부인!
[매거진 Esc] 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인기 칼럼인지 댓글이 붙었다. 달랑 한 개. “옛날에 H대 앞의 튀김 포장마차에서 팔던 튀김의 별명이 말튀김이었다는….” 어렵게 칼럼 쓰지 말라는 경고성 댓글로 보인다. “말탈래 부인, 차탈래 부인. 이젠 또 뭘탈래 부인입니까?”라는 질문도 들었다. 이번에는 기차탈래 부인, 안나 카레니나다. 안나의 아들인 세료쟈는 요즘 뭘 하면서 노느냐는 물음에 기차놀이를 한다고 대답한다. 세료쟈의 말에 따르면 그건 굉장히 용기가 필요하고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엄마를 닮아 천진난만한 눈을 지닌 아이의 대답이다.
모스크바의 역에서 안나를 처음 만났을 때, 브론스키는 그 잿빛 눈에 대해서 생각한다. 마치 그를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바라보던 그 눈동자. 목하 이 두 사람은 기차놀이를 할 셈인 모양이다. 그리고 며칠 뒤, 페테르부르크의 플랫폼에 내렸을 때 그 눈동자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좋아! 어째서 저이의 귀는 저렇게 생겼을까?” 심봉사 눈 뜨듯이 기차만 탔을 뿐인데도 모든 게 바뀌었다. 그날 저녁 모스크바에 있을 동안, 그 눈에서 솟아나던 생기는 사라진다. 살고 싶다면 다시 기차를 타는 수밖에.
브론스키는 이른바 ‘선수’다. 이런 대사는 선수의 대사다. “만일 나 때문에 당신이 괴롭다면, 다시는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위하는 척, 사실은 협박이다. 이 선수가 경마시합에 나가서 그만 낙마하고 만다. 끔찍한 장면이다. 부인 시리즈에서 선수가 말에서 떨어지다니! 그러니 그 장면을 보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린 안나가 남편에게 “난 당신의 말을 들으면서 줄곧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난 그 사람을 사랑해요. 난 그 사람 애인이에요”라고 고백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고백한 순간부터 기차놀이는 이혼을 둘러싼 지리한 법률적 공방과 브론스키에 대한 안나의 의심으로 바뀐다. 잘하지 않았으니 기차놀이는 실패다. 그렇다면 다시 기차를 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시골로 가자고 한다. 이런 말은 원래 선수가 먼저 해야만 하는데, 일찍이 말에서 떨어진 이 선수에게는 그만한 애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안나는 브론스키와 함께 기차에 오르지 못하고, 혼자서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었으므로 잘하지 못한 기차놀이는 파국에 이른다.
안나가 자살한 뒤,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인 레빈은 꾸중을 듣는 아이들을 본다. “너희들이 망쳐 놓고 있는 물건을 만드는 데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는지 아느냐?” 하지만 아이들은 재미있는 놀이를 못해서 기가 죽어 있을 뿐, 그 어머니의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있었다. 그걸 보고 톨스토이의 분신인 레빈은 아이들에게 이 세상을 맡겨 두면 아이들은 장난하느라 틀림없이 굶어 죽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쯤에 이르면 안나의 다음과 같은 말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불행하다구요? 나는요, 마치 먹을 것이 주어진 굶주린 사람 같아요. 그야 그 사람은 추울지도 모르죠. 옷도 찢어졌을 테고, 또 부끄럽겠죠. 그러나 불행하지는 않아요. 내가 불행하다고요? 아녜요, 이게 바로 제 행복이에요.” 노는 부인들을 애처럼 여기고 그들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남자들의 계략인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브론스키! 명색이 부인 시리즈인데, 말을 제대로 탔더라면.
김연수 소설가
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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