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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기차탈래 부인!

등록 2007-06-13 16:51수정 2007-06-13 18:20

이번엔 기차탈래 부인!
이번엔 기차탈래 부인!
[매거진 Esc] 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인기 칼럼인지 댓글이 붙었다. 달랑 한 개. “옛날에 H대 앞의 튀김 포장마차에서 팔던 튀김의 별명이 말튀김이었다는….” 어렵게 칼럼 쓰지 말라는 경고성 댓글로 보인다. “말탈래 부인, 차탈래 부인. 이젠 또 뭘탈래 부인입니까?”라는 질문도 들었다. 이번에는 기차탈래 부인, 안나 카레니나다. 안나의 아들인 세료쟈는 요즘 뭘 하면서 노느냐는 물음에 기차놀이를 한다고 대답한다. 세료쟈의 말에 따르면 그건 굉장히 용기가 필요하고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엄마를 닮아 천진난만한 눈을 지닌 아이의 대답이다.

모스크바의 역에서 안나를 처음 만났을 때, 브론스키는 그 잿빛 눈에 대해서 생각한다. 마치 그를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바라보던 그 눈동자. 목하 이 두 사람은 기차놀이를 할 셈인 모양이다. 그리고 며칠 뒤, 페테르부르크의 플랫폼에 내렸을 때 그 눈동자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좋아! 어째서 저이의 귀는 저렇게 생겼을까?” 심봉사 눈 뜨듯이 기차만 탔을 뿐인데도 모든 게 바뀌었다. 그날 저녁 모스크바에 있을 동안, 그 눈에서 솟아나던 생기는 사라진다. 살고 싶다면 다시 기차를 타는 수밖에.

브론스키는 이른바 ‘선수’다. 이런 대사는 선수의 대사다. “만일 나 때문에 당신이 괴롭다면, 다시는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위하는 척, 사실은 협박이다. 이 선수가 경마시합에 나가서 그만 낙마하고 만다. 끔찍한 장면이다. 부인 시리즈에서 선수가 말에서 떨어지다니! 그러니 그 장면을 보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린 안나가 남편에게 “난 당신의 말을 들으면서 줄곧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난 그 사람을 사랑해요. 난 그 사람 애인이에요”라고 고백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고백한 순간부터 기차놀이는 이혼을 둘러싼 지리한 법률적 공방과 브론스키에 대한 안나의 의심으로 바뀐다. 잘하지 않았으니 기차놀이는 실패다. 그렇다면 다시 기차를 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시골로 가자고 한다. 이런 말은 원래 선수가 먼저 해야만 하는데, 일찍이 말에서 떨어진 이 선수에게는 그만한 애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안나는 브론스키와 함께 기차에 오르지 못하고, 혼자서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었으므로 잘하지 못한 기차놀이는 파국에 이른다.

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안나가 자살한 뒤,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인 레빈은 꾸중을 듣는 아이들을 본다. “너희들이 망쳐 놓고 있는 물건을 만드는 데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는지 아느냐?” 하지만 아이들은 재미있는 놀이를 못해서 기가 죽어 있을 뿐, 그 어머니의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있었다. 그걸 보고 톨스토이의 분신인 레빈은 아이들에게 이 세상을 맡겨 두면 아이들은 장난하느라 틀림없이 굶어 죽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쯤에 이르면 안나의 다음과 같은 말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불행하다구요? 나는요, 마치 먹을 것이 주어진 굶주린 사람 같아요. 그야 그 사람은 추울지도 모르죠. 옷도 찢어졌을 테고, 또 부끄럽겠죠. 그러나 불행하지는 않아요. 내가 불행하다고요? 아녜요, 이게 바로 제 행복이에요.” 노는 부인들을 애처럼 여기고 그들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남자들의 계략인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브론스키! 명색이 부인 시리즈인데, 말을 제대로 탔더라면.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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