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클럽에서 만난 친구들. 이렇게 조금만 나눠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매거진 Esc] 최범석의 시선
2001년에 런던에 잠깐 유학을 간 적이 있다. 아니 도망을 간 적이 있다. 여자가 싫어서 사랑이 슬퍼서 그냥 간 곳이 런던이었다. 그녀를 잊으려고 충동적으로 하루 만에 짐을 싸고 런던행 비행기 티켓을 사서 아는 형의 집으로 향했다.
그때가 나의 첫 영국 여행이었다. 파리 같은 유럽의 도시들은 여러 번 갔지만 영국은 처음 간 것인데, 그다지 설레진 않았다. 어떤 것에도 들뜨거나 설렐 수 없었던 그때의 내 기분 탓이었으리라.
런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기억
히스로 공항에 내려서 혼자 그 선배 집을 찾아가야 했다. 어렵게 찾아간 형의 집은 에인절 역 근처의 런던 북쪽 동네였다. 2층에 있는 그 집은 비좁았고 너무 더러웠고 그때 날씨조차도 너무 더러웠다. 한마디로 모든 게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달랐고 내가 생각했던 런던이 아니었다.
그 좁은 집에 룸메이트까지 둘이나 있었는데 한명은 일본 친구였고 또 한명은 부산 아가씨였다. 그들은 날 처음 만났을 때, 이방인처럼 낯설게 대하고 심지어 나에게 적대감까지 보였다. 부산 아가씨조차 외국 사람 대하듯 인사를 하고 태도는 차가웠다. 일본 친구와 부산 아가씨는 서로 사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곳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그런 건지 말이다. 그런데 도착한 날 저녁 식사에서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각자 자기들 반찬을 따로 해서 자기 앞에만 놓고 먹으며 다른 사람의 음식은 건드리지도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조차도 말이다. 영국에서의 첫 끼니를 이렇게 때우는 순간 나는 완전히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밥을 먹는 게 친한 형한테조차 눈치가 보였다. 그렇게 첫날 밤을 보내고는 문득 그들의 배를 채워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어쩐지 초라하고 안쓰러운 그들의 마음도 풀릴 것 같았다. 그들이 학교에 간 사이 재료를 사고 음식을 하면서 형과 룸메이트들의 귀가를 기다렸다. 어머니가 음식 맛 좋은 전라도 출신이라 난 그저 어머니가 해 주시는 음식의 맛을 떠올리며 음식을 만들었다. 물론 어머니가 해 주신 것처럼 맛있지는 않았지만 전날 먹은 음식보다는 훨씬 좋았다. 그렇게 사흘 동안 가정주부처럼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이니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족처럼 즐거운 식사를 하게 됐다. 또 그 전에는 칸칸이 소유자가 나눠져 있던 냉장고의 음식들도 공유하게 됐다. 그곳에서 두달을 보내며 우리는 서로를 챙겨 주고 걱정해 주는 친구 사이가 됐다. 최근 촬영 작업이 있어 런던에 갔다. 그곳에서 의상 공부하는 후배를 만났다. 나는 후배에게 물어봤다. “여기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어?” “한명도 없어요. 한국 사람 네명이 함께 사는데 그냥 우리끼리 지내요.” “왜 그래? 로컬 친구를 만나야 영국 문화도 금방 익숙해지지 않겠어?” 난 이해가 안 됐다. 3년이나 여기서 살았는데 왜 친구가 없지? 그리고 런던에 처음 왔을 때 내가 묵었던 2층 집이 생각났다. 그때 그들도 런던의 다른 친구들이 없었다. 왜 유학생들은 친구가 별로 없을까. 왜 이렇게 외롭게 살까.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친구가 없지 난 “오늘 친구나 만들러 가자”고 후배를 잡아 끌어서 클럽에 갔다. 비싸지 않은 샴페인 한잔을 시켜 바에 앉았다. 술이 조금 오르자 춤을 추면서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내가 마시는 술을 한잔씩 권했다. 서로 이름을 물으면서 그들도 자신의 술을 나에게 권했고 그렇게 함께 웃고 놀면서 친구가 됐다. 난 세계 곳곳에 친구가 조금은 있다. 그 모든 친구들이 누구 하나 나에게 먼저 다가오진 않았던 거 같다. 전부 내가 스스럼없이 다가가서 만든 친구들이다. 먼저 주지 않으면 받을 수도 없는 법이다. 후배에게 말했다. “이렇게 먼저 다가가지 않아서 친구를 못 만든 거야.” 모두들 어려운 유학 생활을 하며 경제적으로도 힘들겠지만 마음이 더 외로운 것 같았다. 서로 조금만 나누면 마음이 따뜻해질 텐데. 그럼 공부나 경제적 어려움도 이겨내기 더 쉬울 텐데. 내가 보기에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너무 굶주려 있다. 돈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에, 사랑에 말이다. 패션 디자이너·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그 좁은 집에 룸메이트까지 둘이나 있었는데 한명은 일본 친구였고 또 한명은 부산 아가씨였다. 그들은 날 처음 만났을 때, 이방인처럼 낯설게 대하고 심지어 나에게 적대감까지 보였다. 부산 아가씨조차 외국 사람 대하듯 인사를 하고 태도는 차가웠다. 일본 친구와 부산 아가씨는 서로 사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곳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그런 건지 말이다. 그런데 도착한 날 저녁 식사에서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각자 자기들 반찬을 따로 해서 자기 앞에만 놓고 먹으며 다른 사람의 음식은 건드리지도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조차도 말이다. 영국에서의 첫 끼니를 이렇게 때우는 순간 나는 완전히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밥을 먹는 게 친한 형한테조차 눈치가 보였다. 그렇게 첫날 밤을 보내고는 문득 그들의 배를 채워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어쩐지 초라하고 안쓰러운 그들의 마음도 풀릴 것 같았다. 그들이 학교에 간 사이 재료를 사고 음식을 하면서 형과 룸메이트들의 귀가를 기다렸다. 어머니가 음식 맛 좋은 전라도 출신이라 난 그저 어머니가 해 주시는 음식의 맛을 떠올리며 음식을 만들었다. 물론 어머니가 해 주신 것처럼 맛있지는 않았지만 전날 먹은 음식보다는 훨씬 좋았다. 그렇게 사흘 동안 가정주부처럼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이니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족처럼 즐거운 식사를 하게 됐다. 또 그 전에는 칸칸이 소유자가 나눠져 있던 냉장고의 음식들도 공유하게 됐다. 그곳에서 두달을 보내며 우리는 서로를 챙겨 주고 걱정해 주는 친구 사이가 됐다. 최근 촬영 작업이 있어 런던에 갔다. 그곳에서 의상 공부하는 후배를 만났다. 나는 후배에게 물어봤다. “여기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어?” “한명도 없어요. 한국 사람 네명이 함께 사는데 그냥 우리끼리 지내요.” “왜 그래? 로컬 친구를 만나야 영국 문화도 금방 익숙해지지 않겠어?” 난 이해가 안 됐다. 3년이나 여기서 살았는데 왜 친구가 없지? 그리고 런던에 처음 왔을 때 내가 묵었던 2층 집이 생각났다. 그때 그들도 런던의 다른 친구들이 없었다. 왜 유학생들은 친구가 별로 없을까. 왜 이렇게 외롭게 살까.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친구가 없지 난 “오늘 친구나 만들러 가자”고 후배를 잡아 끌어서 클럽에 갔다. 비싸지 않은 샴페인 한잔을 시켜 바에 앉았다. 술이 조금 오르자 춤을 추면서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내가 마시는 술을 한잔씩 권했다. 서로 이름을 물으면서 그들도 자신의 술을 나에게 권했고 그렇게 함께 웃고 놀면서 친구가 됐다. 난 세계 곳곳에 친구가 조금은 있다. 그 모든 친구들이 누구 하나 나에게 먼저 다가오진 않았던 거 같다. 전부 내가 스스럼없이 다가가서 만든 친구들이다. 먼저 주지 않으면 받을 수도 없는 법이다. 후배에게 말했다. “이렇게 먼저 다가가지 않아서 친구를 못 만든 거야.” 모두들 어려운 유학 생활을 하며 경제적으로도 힘들겠지만 마음이 더 외로운 것 같았다. 서로 조금만 나누면 마음이 따뜻해질 텐데. 그럼 공부나 경제적 어려움도 이겨내기 더 쉬울 텐데. 내가 보기에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너무 굶주려 있다. 돈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에, 사랑에 말이다. 패션 디자이너·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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