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사무이의 부티크 호텔인 ‘라이브러리’에서. 도서관을 콘셉트로 잡을 소규모 고급호텔이다. 제너럴 아이디어 제공
[매거진 Esc] 최범석의 시선 29
올해 내 생일을 어디서 보낼까 한달 동안 궁리를 하다가 타이 코사무이로 결정했다. 생일을 외국에서 보내는 게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느껴져 지난해부터 생일에 맞춰 휴가를 내서 외국여행을 떠난다. 게다가 외국에 자주 나가도 대부분 출장이라 푹 쉬기가 어렵다. 그래서 생일 여행은 나에게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기도 하다.
한국인 신혼부부들 판별법
이번에 코사무이를 가기로 한 건 코사무이의 유명한 풀문파티나 아름다운 해변을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지난해 그곳에 세워졌다는 부티크 호텔(대규모 체인에 속하지 않은 독자적인 콘셉트의 소규모 호텔)을 경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여행지를 결정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메신저로 상의하다가 타이에 있는 지인이 보내준 호텔 사이트를 보고 마음에 들어 그 호텔이 있는 코사무이로 결정한 것이다. 호텔의 이름은 도서관이라는 뜻의 ‘더 라이브러리 호텔’. 인터넷으로 바로 예약을 했다.
코사무이에 가기 전 필수 코수는 방콕에서의 쇼핑! 타이에 가면 나는 항상 현지 브랜드를 유심히 살펴보고 쇼핑을 하는데 한국보다 좀더 화려하고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는데다 저렴한 가격에 질도 괜찮은 제품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현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을 뿐 아니라 한국 관광객에게도 잘 알려진 그레이하운드에서 잔뜩 쇼핑을 하고 코사무이로 떠났다.
코사무이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한국인 신혼부부들. 예전에는 푸껫 같은 곳이 인기 신혼여행지였다면 이제는 코사무이가 새로운 여행지로 뜬 것 같았다. 그럼 그들이 일본이나 다른 아시아 여행자가 아니라 한국인, 그것도 신혼부부인 줄 어떻게 구분하는가. 커플이 똑같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는다. 그리고 이런 캐주얼 복장과 어울리지 않게 신부의 헤어스타일은 꼴 수 있는데까지 꽈서 틀어올린 결혼식장 풍이다. 이 모습들을 재밌게 지켜보다가 차를 렌트해서 호텔로 향했다. 택시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차를 빌렸는데 그동안 한국에서 내비게이션에 너무 익숙해졌는지, 아님 그곳의 교통 표지판이 엉망이어서였는지 어렵게 어렵게 호텔에 도착했다.
코사무이에서도 바다색과 전경이 좋기로 유명한 차웽 비치 중간쯤에 자리잡은 라이브러리 호텔은 입구부터 호텔 같지 않았다. 조그만 글씨로 ‘라이브러리’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작은 골목을 들어가니 호젓하게 자리잡은 호텔이 눈에 띄었다. 호텔은 기대 이상이었다. 일단 방의 호수를 책처럼 ‘페이지’로 기입한 것부터 인상적이었다. 내가 묵었던 방은 ‘페이지 18’이었는데, 흰색을 주조로 해서 꾸민 방에는 하얀 매킨토시가 놓여 있었다. 다른 모습들도 너무 궁금해 로비로 나오니 곳곳에 책을 보는 흰색 마네킹이 앉아 있기도 하고 누워서 책을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궁금했던 수영장! 독자 여러분은 푸른색 배경이 아닌 수영장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사이에 놓여 있는 그곳의 수영장은 한마디로 붉은 장미꽃 같았다. 빨간 타일을 중심으로 곳곳에 오렌지와 노랑 타일이 섞여 있는 그곳은 장미꽃잎이 물을 덮은 듯한 느낌을 줬다. 그리고 수영장 옆에는 정말 라이브러리, 즉 오픈된 도서관이 있었는데 인테리어와 건축, 가구 디자인 등 디자인 서적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이 책은 호텔 주인이 소장한 것들로 주인의 취향을 엿보는 듯한 즐거움도 느껴졌다.
붉은 장미꽃 같았던 수영장
이 호텔에서의 경험은 단지 휴양이 아니라 나에게는 큰 교육 경험이었다. 난 소비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렇게 배운 것을 기록해 놓고 내가 호텔이나 레스토랑, 또는 와인바를 한다는 상상을 하면서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본다.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도 그 호텔처럼 사이트 하나만 보면 바로 예약을 하고 싶어지는 곳이 많았으면 좋겠다. 비행기가 아니라 차를 타고 가서 그런 곳에서 맘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상상만 해도 즐겁다.
최범석 패션디자이너/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최범석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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