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것이 잘 익은 것이다.
[매거진 Esc] 허시명의 알코올트래블
■ 횡성 농장에서 직접 복분자를 따 손으로 주물러 으깨 술을 빚기까지
복분자의 계절이다. 고창이나 순창 복분자는 수확이 끝났지만, 강원도에서는 복분자 수확이 한창이다. 토종 복분자는 더 늦어 8월이 수확기다. 이번 여행은 와인만들기 원정대의 뒤를 따랐다. 와인 하면 카베르네 소비뇽, 쏘떼른 하며 혀부터 굴리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와인 원정대처럼 토종 과일로 와인을 빚어 대는 부류도 있다. 원정대는 인터넷 다음 카페 와인만들기 동호인들인데, 지난 6월에는 전라도 장성으로 오디 와인 빚기, 고창으로 복분자 와인 빚기 체험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횡성 복분자다.
요 근래에 횡성에는 규모 있는 양조장이 두 개나 생겼다. 경기도 화성에 있던 국순당 백세주 제조장이 이사왔고, 복분자 와인 제조장 디오니캐슬 와인이 생겼다. 이날 원정대가 찾은 곳은, 농약 안 치고 화학비료 안 주고 친환경 농법으로 복분자를 길러 와인을 빚는 천금기씨의 둔내복분자농장이었다.
‘친환경 재배’ 복분자가 1kg에 1만원
복분자주의 인기는 웰빙 바람에 우선 그 공을 돌려야 될 것 같다. <동의보감>을 보면 복분자는 “신정(腎精)을 보태 주고 소변이 새는 것을 멎게 하여, 요강을 엎을 정도가 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아시겠지만, 복분자(覆盆子)는 엎을 복자에 요강 분자를 쓴다, 즉 이것 먹으면 요강 엎을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건강식품의 바람은 어제오늘 불었던 게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약식동의(藥食同意)라 하여, 음식을 약의 동의어로 파악했다.
원정대원들은 오전에 복분자밭에서 복분자를 직접 땄다. 복분자는 산딸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익으면 검은빛을 띠는 게 다르다. 술을 담그려면 검게 익은 복분자만 따야 한다. 복분자 하나를 따서 당도계로 재 보니, 11브릭스가 나온다. 포도의 당도가 14브릭스이니 당도가 만만치 않다.
복분자는 물에 씻지 않고, 바로 발효통에 담아야 한다. 이때 발효통은 알코올이나 뜨거운 물로 잘 소독된 상태라야 한다. 가족들도 있어서 한 팀당 복분자 8~12㎏씩을 샀다. 친환경 농법으로 빚은 복분자는 1㎏에 1만원, 일반 재배는 8천원을 냈다. 참여한 원정대원은 80명쯤 되는데, 사들인 복분자 양이 400㎏ 정도 되었다. 와인 빚는 법은 까다롭지 않다. 복분자 10㎏을 발효통에 넣고 손으로 주물러 으깬다. 올해 초에 와인동호회에 가입해 동생과 함께 원정대에 처음 참여한 아이디 ‘수리’는 복분자를 손으로 으깨는 느낌이 미끄덩하고 묘하지만, 직접 술을 빚게 되어서 즐겁다고 했다.
충분히 으깬 뒤에 깨끗한 물 10리터를 부었다. 복분자만으로 술을 빚으면 너무 텁텁하고 걸쭉하기 때문에, 복분자와 물을 1:1로 섞으면 술맛이 좋다고 원정대장 정재민 씨가 설명한다. 당을 더하기 위해서 설탕 4㎏을 넣고 잘 저어 녹였다. 그 다음에 잡균을 없애고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피로아황산칼륨을 한 티스푼이 못 되게 넣었다. 그리고 양념 치듯 효모 영양제 한 티스푼을 넣고, 오크 향이 스미라고 오크칩(참나무 조각)도 몇 조각 넣었다. 이제 남은 것은 네 시간 뒤에 효모 한 봉지(5g)를 넣으면 된다. 이날 공개된 술 빚기 최고의 비법은 “먹기도 아까운 걸로 술을 담가라!”였다.
언제든 양조장 개방하는 디오니캐슬
점심은 이웃동네 부녀회에다가 맞춘 곤드레나물밥이었다. 회원 중에 바비큐 전문가가 있어 통삼겹살을 구워 냈다. 아이디 ‘베짱이’는 그늘에 앉아 기타 치며 요들송을 불렀고, 아이디 ‘낙원’은 손수 담근 약초술을 내놓았고, 반주로 지난달에 담근 고창 복분자 와인이 가세했다. 술은 익어갈 테고 배는 부르고, 세상 낙원이 따로 없었다.
횡성 복분자 맛을 보았으니 디오니캐슬을 거쳐 가지 않을 수 없다. 횡성군 공근면 초원리의 계곡에 자리잡은 디오니캐슬은, 펜션과 레스토랑 시음장을 함께 갖춘 멋진 양조장이다. 외국 와이너리(와인 양조장)를 돌아본 사람들이,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냐며 감탄하고 간다며 기획실장 김홍철씨는 자랑한다. 지하 1280m에서 끌어올린 물로 지하 숙성실의 온도를 조절하고, 병입할 때는 질소를 함께 넣는 공법을 사용한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복분자 와인, 다래 와인, 배 와인이다.
찾아온 손님에게는 언제든지 양조장을 개방한다고 하니, 와인 좋아하는 사람들은 디오니캐슬의 펜션에서 하룻밤 묵으며 와인 보따리를 풀어 놓아도 좋을 듯하다.
디오니캐슬와인의 제조장과 시음장(왼쪽 사진) / 디오니캐슬 발효실(오른쪽 사진).

디오니캐슬 시음장.

복분자를 으깨고 있는 자매.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둔내복분자농장 033-345-1387, 디오니캐슬와인 033-344-7788, 와인만들기 동호회 http://cafe.daum.net/winemania
허시명 여행작가·술품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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