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 플레밍거 감독. 데보라 카 주연의 영화 <슬픔이여 안녕>(1958).
[매거진 Esc] 김연수의 여자여자여자
바야흐로 바캉스 시즌이다. 바캉스라면 나는 불장난을 떠올린다. 어릴 때 질 낮은 주간지와 “라일락 향기는 바람에 휘날리고” 따위의 야릇한 제목을 단 사랑의 체험 수기 시리즈를 탐독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퀴즈. 왜 첫사랑은 불장난에 비유되는 것일까? ① 확 저질러야 하는 것이니까 ② 뜨거우니까 ③ 생각보다 일이 커지니까 ④ 그러다 보면 병원에서 깨어나는 걸로 끝나는 수도 있으니까.
바캉스. 불장난. 그리고 여기 그 모든 바캉스 불장난의 원조격인, 그 이름도 지극히 바캉스적인 작가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열일곱 입시생 세실은 지중해 연안의 휴가지에서 만난 시릴르와 불장난을 저지른 뒤 진짜 불장난을 한다. 그런 그녀 앞에서 아버지와 결혼할 예정인 안나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성냥을 그었는데, 벌써 세 개째 얼굴에 갖다 대자마자 성냥개비의 불이 꺼졌다.
불은 왜 꺼지는가? 손이 떨려서다. 그렇다면 손은 왜 떨리는가? 그건 첫 번째 불장난을 저지른 뒤에 세실의 얼굴이 변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얼굴이 언제 처음으로 변했는지 여자들은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예컨대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기 직전에 세실의 걱정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내 얼굴에서 눈자위의 그늘이나 입의 모습, 떨림 속에 명확한 사랑의 행위를 나눈 흔적이 발견되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 세실의 얼굴에 남은 흔적을 안나(여기서는 세실의 엄마가 없으므로)만은 알아볼 수 있으리라는 걱정 때문에 성냥개비의 불이 자꾸만 꺼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변신한 소녀들을 알아보는 방법은 바로 그 흔적들일 텐데, 세실은 그걸 ‘상처’라고 이르길 좋아한다. 시릴르가 자기 입술에 키스하는 동안, 가끔 안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아침마다 사랑을 나눈 흔적처럼 부드럽게 상처 입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라고 말한다. 안나도 불장난이 임박한 세실을 두고 “세실이 만약 상처라도 받게 되면 그야말로 큰일이죠”라고 말한다. 상처를 입고 나면 소녀는 여자가 된다. 입으로는 “오오, 나의 아망(정부)”, “몽 셰리(나의 애인), 시릴르!”라고 하면서 머리로는 ‘내가 그에게 품은 감정이 과연 사랑이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첫사랑이 불장난에 비유되는 이유는 아무리 어두워도 눈에 확 띄기 때문이다. 소녀들이 제 아무리 어두운 구석에서 몰래 사랑을 한다고 해도, 그들이 제 아무리 짐짓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굴어도 그들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환하게 드러난다. 이 너무나 환한 속성 때문에 불장난은 불장난에 그치고, 그 불장난의
흔적은 상처로 남는다. 안나에게서 아버지를 다시 빼앗으려던 세실의 의도가 지나쳐 안나가 자동차 사고로 죽은 뒤, 세실은 시릴르와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가 나에게 준 쾌락만을 사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나는 그가 필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프랑스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를 앞둔 세실이 읽던 베르그송의 문구를 들여다볼 수 있다. “사실과 원인 사이에 어느 정도의 이질성을 인간이 찾아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또한 행동의 규칙에서 사물의 본질을 인정하기까지엔 많은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인류를 사랑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항상 인류의 발생적 원리에 직접 접촉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다.” 골 아픈가? 그래도 도움이 되니까 이번 바캉스에는 이 문장을 여행 가방에 꼭 챙겨서 가자. 앞에서 말한 퀴즈에 대한 베르그송의 대답, “삑, 둘 다 아무 이유 없이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딩동댕. 이유 없는 그 일이 인류의 발생적 원리란다. 밑줄 쫙. 그러니 이번 바캉스에도 다들 불장난 조심하자.
소설가

김연수의 여자여자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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