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 <춘향전>은 로맨스인가, 공포담인다. 사진은 영화 <춘향뎐>
[매거진 Esc] 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더워 죽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납량특집이다. 이름하여 <춘향전 소녀 X 버전> 시리즈. 제1화 요조숙녀 힘자랑. 방자가 처음 찾아갔을 때, 춘향은 깜짝 놀라며 “애고, 망측해라. 제미× 개×으로 열두 다섯 번 나온 녀석(…), 소리는 생고자 새끼 같이 몹시 질러 하마터면 애 떨어질 뻔하였지”라고 힐난한다. 그래놓고서는 방자랑 “처녀가 무슨 낙태냐?”, “내가 언제 낙태라 그랬느냐, 낙상이랬지” 따위의 시답잖은 소리를 주고받다가 보자는 사람이 사또 자제라니까 금방 “네 말은 좋다마는 남녀가 유별한데 남의 집 규중 처자를 부르기도 실례요”라고 말을 바꾸며 요조숙녀로 변신한다. 백년가약을 맺은 다음날 아침, 이 요조숙녀가 하는 말은 이렇다. “일어나오, 무슨 일을 힘써 했다고 이다지 곤하시오.”
제2화 되로 주고 말로 받고. 서울로 떠나면서 이몽룡은 “사또 올라가실 적에 너를 데려가쟀더니”라고 말했다가 박살이 난다. 춘향, 섬섬옥수 번듯 들어 궤상을 탕탕 치며 “데려가쟀더니라니, ‘더니’란 말이 웬 말이오? 여보, ‘더니’란 말 출처를 일러주오”라고 말하곤 입고 있던 치맛자락을 짝짝 찢어 내던지며 “오늘에야 사생결단 하나보다. 뒷날 기약 웬 말인가, ‘더니’란 웬 소린가?”며 너 죽고 나 죽자며 난리다. 그러고선 변 사또에게는 어찌 감히 유부녀를 희롱하냐고 호통치다가 치도곤을 당하면서 한 대에 일편단심, 두 대에 이부불경, 수절가를 부르는데 둘러선 아전들이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제3화 죽으면 헛수고. 옥에 갇힌 춘향은 꿈에 ‘만고정렬황릉지묘’라고 씌어진 누각을 찾아간다. 이른바 수절 명예의 전당이다. 중국 순임금의 두 아내인 아황과 여영이 춘향을 맞이하고 여러 수절 선배들이 찾아온다. 뜻은 좋은데, 암만 봐도 죽을 꿈인 것 같아 춘향은 걱정이다. 그래서 그 와중에 점까지 보는데, 봉사 말로는 살아서 쌍가마 타는 꿈이란다. 하지만 이어지는 제4화는 ‘뚜껑 열리다’다. 이렇게 시난고난 버텨오던 춘향이 마침내 폭발한 건 곤장 때문도, 변 사또의 회유 때문도 아니다. 옥문으로 찾아온 이몽룡의 꼴 때문이다.
“심은 나무가 꺾어지고 공든 탑이 무너졌네. 가련하다 이내 신세, 하릴없이 되었구나.”
공든 탑이라. 착잡하다. 춘향이는 그간 뭘 그렇게 공들여서 쌓은 것일까? 정렬부인인가 부다. 그러니까 꿈까지 꾸지.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면, 이건 양반들에게 부담이 된다. 무모하게 신분상승을 꿈꿨던 한 소녀의 처절한 운명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바가 크다. 그래서 제5화 ‘꿈은 이루어진다’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갑자
기 비현실적으로 사건이 진행되면 그 이야기를 현실로 생각하지 않는다. 공포담 <춘향전>이 권선징악의, 체제순응적인 사랑이야기가 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오락가락하는 춘향의 성격은 여러 판본의 결합으로 설명된다. <춘향전>은 현실을 반영한 게 아니라 여러 이야기를 짜깁기한 허구에 불과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런 식이라면 나도, 당신도 여러 판본이 결합된 존재다. 춘향이의 모습에서 현대 여성을 발견할 수 있는 까닭도 그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도 춘향이만 여러 판본이 결합된 존재로 여기는 건 어떤 음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제3화와 제5화 사이에 숨어 있다.
제3화까지 춘향은 우리가 아는 소녀 X였다. 하지만 제5화가 시작되면서 그는 정렬부인이 된다.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건 판본 짜깁기 때문이 아니라 옥중의 꿈에서 귀신이 된 수절 선배를 만날 때 발랄하던 소녀 X 춘향은 실제로 죽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춘향전>을 읽을 때, 자세히들 보시라. 양반 자제들의 죄의식 없는 성생활을 위해 옥에서 죽은 춘향이 정렬부인이 되는 과정을. 이런 러브스토리, 간담이 서늘할 걸.
소설가

김연수의 여자여자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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