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후배 디자이너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화가 났다. 사진은 뉴욕의 거리 풍경.
[매거진 Esc] 최범석의 시선 ⑩
얼마 전에 돌아온 뉴욕 출장에서도 좋은 친구를 만났다. 젊은 건축가와 아티스트 모임에 갔다가 ‘디비 킴’이라는 삼십대 중반의 한국인을 만나게 됐다. 그는 전세계 W호텔의 건축가였는데 그 자리는 마침 그의 집에서 준비한 하우스파티였다.
처음에 그를 봤을 때는 한국말을 못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디비가 미국에서 태어났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고등학교 때 왔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한국말로 계속 말을 시켜서 나중에는 한국말로 오랫동안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멋진 디비와 친구가 된 것도 뿌듯했지만 한국 사람이 큰일을 한다는 데 자부심도 느꼈다.
한국인 인턴들의 ‘비자’ 스트레스
그렇게 뉴욕의 10일 일정을 채우고 돌아오기 전날 뉴욕에서 디자인 일을 하는 후배들에게 저녁을 사주기로 했다. 자주 가던 아시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후배 넷을 만났다. 그들은 파슨스 스쿨에서 공부했는데, 그 중 셋은 회사에 들어가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고, 한 사람은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인턴 일은 정규직보다 불안하고 고단하지만 그래도 바로 현장에 들어가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니까 잘했다고 격려를 해줬다. 저녁을 먹으면서 한참 사는 이야기, 일하면서 힘든 이야기들을 하다가 소호의 칵테일바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이어진 이야기는 비자 문제에까지 이르렀다. B1이니, B2니하는 나도 잘 모르는 비자의 여러 종류 이야기가 나오다가 한 친구가 자기는 취업비자가 없어서 6개월에 한번씩 외국에 나갔다 온다고 했다. 그런데 이민국에서 다시 비자를 발급할 때 6개월이 아니라 3개월짜리 비자를 주면 또 그 기간 안에 나갔다가 와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서글픈 일이었다. 다른 두 친구는 회사에서 잘봐줘서 취업비자를 받았다고 한다. “넌 그래도 운이 좋다, 잘됐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 중 한 명의 이야기를 듣고 화가 치밀었다. 그가 말하기를 취업비자를 내는 데도 돈이 드는데, 1년짜리는 300만원, 3년짜리는 1천만원 가까이 든다고 한다. 많은 돈을 들여서 학교를 나와도 취업하는 데 또 돈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나 그들의 신세나 별 다를 게 없는 것이다. 후배들 이야기를 듣다가 비자문제로 추방당하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생각이 났다. 또 이런 이야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인턴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인턴 중의 상당수가 돈을 안 받고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만족한다고 한다면서 그들이 인턴으로 일하면서 당했던 이런저런 부당한 일들 이야기를 들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 또 후배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이 자리잡을 날을 꿈꾸며 물론 뉴욕에서 만난 한국인들 가운데는 디비처럼 성공한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고생하는 친구들은 자주 보고 이야기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났던 거 같다. 그들이 거기서 경력과 경험을 쌓는 건 좋지만 많은 기업이나 명망있는 디자이너들이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을 갈취하는 것 같았다. 너네 없어도 돈 안 받고 일하려는 인턴들을 줄을 섰다구~!!!
술취한 나는 속이 상해서 왜 그런 대접을 받고 일하냐, 차라리 한국에 들어와서 일해라, 내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고맙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꿈이 있어요. 그 꿈을 여기 미국에서 이뤄보고 싶어요. 지금은 고생스럽지만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 말을 들으니 그들이 자랑스러워졌다. 몇 해가 지난 뒤에 그들이 성공해서 더 좋은 자리를 만들고, 그러고 그 후배들에게 미국에서도 일하기 더 좋은 환경을 만들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런 그들이 있기에 미국도 세계도 얼마 지난 후에는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확고히 자리를 잡을 수 있을거라 믿는다.
패션디자이너·제너럴아이디어 대표
그렇게 뉴욕의 10일 일정을 채우고 돌아오기 전날 뉴욕에서 디자인 일을 하는 후배들에게 저녁을 사주기로 했다. 자주 가던 아시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후배 넷을 만났다. 그들은 파슨스 스쿨에서 공부했는데, 그 중 셋은 회사에 들어가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고, 한 사람은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인턴 일은 정규직보다 불안하고 고단하지만 그래도 바로 현장에 들어가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니까 잘했다고 격려를 해줬다. 저녁을 먹으면서 한참 사는 이야기, 일하면서 힘든 이야기들을 하다가 소호의 칵테일바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이어진 이야기는 비자 문제에까지 이르렀다. B1이니, B2니하는 나도 잘 모르는 비자의 여러 종류 이야기가 나오다가 한 친구가 자기는 취업비자가 없어서 6개월에 한번씩 외국에 나갔다 온다고 했다. 그런데 이민국에서 다시 비자를 발급할 때 6개월이 아니라 3개월짜리 비자를 주면 또 그 기간 안에 나갔다가 와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서글픈 일이었다. 다른 두 친구는 회사에서 잘봐줘서 취업비자를 받았다고 한다. “넌 그래도 운이 좋다, 잘됐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 중 한 명의 이야기를 듣고 화가 치밀었다. 그가 말하기를 취업비자를 내는 데도 돈이 드는데, 1년짜리는 300만원, 3년짜리는 1천만원 가까이 든다고 한다. 많은 돈을 들여서 학교를 나와도 취업하는 데 또 돈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나 그들의 신세나 별 다를 게 없는 것이다. 후배들 이야기를 듣다가 비자문제로 추방당하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생각이 났다. 또 이런 이야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인턴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인턴 중의 상당수가 돈을 안 받고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만족한다고 한다면서 그들이 인턴으로 일하면서 당했던 이런저런 부당한 일들 이야기를 들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 또 후배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이 자리잡을 날을 꿈꾸며 물론 뉴욕에서 만난 한국인들 가운데는 디비처럼 성공한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고생하는 친구들은 자주 보고 이야기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났던 거 같다. 그들이 거기서 경력과 경험을 쌓는 건 좋지만 많은 기업이나 명망있는 디자이너들이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을 갈취하는 것 같았다. 너네 없어도 돈 안 받고 일하려는 인턴들을 줄을 섰다구~!!!

최범석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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