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주 화요는 옹기항아리에서 6개월 이상 숙성된다.
[매거진 Esc] 허시명의 알코올트래블
새로운 맛의 경지, 100% 쌀로 빚은 증류식 쌀소주 ‘화요’의 뚝심
새로운 맛의 경지, 100% 쌀로 빚은 증류식 쌀소주 ‘화요’의 뚝심
새로운 술을 맛보는 것은 새로운 문화를 맛보는 것이다. 알코올 트래블의 명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무엇인가? 물으면, 직답할 사람은 드물다. 프랑스 와인, 독일 맥주, 영국 위스키, 일본 사케, 중국 마오타이처럼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술이 우리에겐 없다. 막걸리? 소주? 정도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도 딱히 어떤 제품을 제시하지 못한다.
왜 위스키나 와인만 대접하나?
이럴 땐 외국으로 나가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이 가장 많이 수출하는 술은 소주다. 진로는 5년 연속 세계 증류주 시장 판매량 1위를 차지했고, 참이슬은 상품 출시 7년7개월 만에 100억병을 팔았다. 기겁할 숫자다. 영국인이 위스키 한두 잔 마실 때, 우리는 소주 한두 병을 거든히 해치운다. 소주에 살고 소주에 죽는 나라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김치와 된장찌개 맛을 알았대야 기본에 지나지 않고, 소주에 삼겹살을 즐길 때라야 비로소 한국을 알았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다. 1천원짜리 소주가 한국을 대표할 수 있을까? 외국인 초대해 놓고 자, 1천원짜리 소주를 맛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누구라도 망설여질 것이다. 그냥 외국인이 마셔본 위스키나 와인 대접하고 말지, 값싼 소주를 내놓기 꺼려질 것이다. 경영자들이 직원들하고 소주 마시면서도 바이어들과는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시이오들도 한국 소주를 내놓으면서 해외수주를 성사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만들어진 소주가 있다. 증류식 소주 화요(火堯)다. 국내 3대 도자기 회사에 드는 광주요 회장 조태권씨가 뚝심으로 만들었다. 진로에서 술을 빚던 기술자들을 데려다가, 진로에서도 신경 쓰지 않던 증류식 소주 시장에 투자했다.
희석식 소주는 1년에 2조4천억원(2005년 통계) 시장이지만, 증류식 소주는 시장이 거의 없다. 문배주, 안동소주, 이강주, 진도홍주를 합해서 1년 매출 200억원이 못 되는데, 주로 명절 선물용 판매다. 문화재나 전통의 이름없이 증류주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헬멧도 구명복도 없이 급류에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위험천만한 시장에 화요가 뛰어들어, 약진하고 있다.
화요 양조장은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에 있다. 술은 100% 쌀로 빚는 쌀소주다. 낱병으로 구매할 수 있는 술은 두 종류다. 500㎖ 유리병에 담긴 화요 25도짜리가 마트에서 1만1천원이고, 41도짜리가 2만2천원이다. 이제는 호텔과 고급 음식점에도 상당히 보급되어 있다. 그런데 소비자 반응이 “소주가 왜 이렇게 비싸요?”다. 1천원짜리 소주의 열 배, 스무 배니 비싸다고 할 수밖에. 하지만 값은 수평 비교가 가능해도, 가치는 수평 비교를 할 수가 없다. 증류식 소주는 위스키와 코냑에 견주어야 한다. 만약 위스키 1만원짜리가 있다면, 싸다고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1만원, 2만원 하는 증류식 소주는 비싼 가격이 아니다.
은근한 배꽃향, 입안에 머금는 기쁨
문제는 소주가 투명하기 때문에 속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술꾼들은 마셔보고 숙취가 있나 없나를 보고 술을 평가하려 든다. 몸을 담보로 한 저급한 평가법이다. 그럼 소주의 평가 기준을 제시해 보자. 우선 재료다. 증류식 소주는 재료가 분명하다. 화요는 쌀누룩과 쌀고두밥이다. 안동소주는 밀누룩과 쌀고두밥이다. 희석식 소주는 아열대지방에서 나는 타비오카를 주로 쓰는데, 요즘은 현지에서 거칠게 증류한 조주정을 수입해 온다. 가장 저렴한 전분 원료를 그때그때 구입해서 빚는 게 희석식 소주-‘참이슬’이나 ‘처음처럼’ 같은 대형 소주회사에서 만든 제품-다. 사실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것은 부당하다. 정장 입은 신사와 작업복 입은 노동자의 차림새를 비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소주라는 같은 이름을 쓰고 있으니. 희석식 소주는 무색무취를 지향한다. 증류식 소주는 곡물이 증류될 때의 향을 머금고 있다. 화요에서는 은근한 배꽃향이 난다. 소주잔을 코끝에 잔질하다가 한 모금 마셔 입안에 머금는 기쁨이 있다. 희석식 소주는 인공감미료와 조미료로 맛을 낸다. 증류식 소주인 화요는 맛을 더하지 않고 곡물의 순수한 맛을 추구한다. 세계에서 이름을 얻은 명주는 결코 감미하지 않는다. 사람의 손길이 가되, 재료의 순수한 맛을 추구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증류식 소주야말로 진정한 소주다. 소주가 한국의 소주라면, 증류식 소주로 겨뤄야 함이 마땅하다.
여행작가·술품평가
화요 홈페이지(www.hwayosoju.com, 02-3442-2730)에 구입처 등 자세한 정보가 있다. 화요 전문식당은 가온(서울 신사동 02-3446-8411), 낙낙(서울 청담동 02-512-4828, 성남 분당 서현동 031-708-4828), 녹녹(서울 압구정 갤러리아 02-3449-4081) 등이 있다.
광주요에서는 도자기로 된 화요의 술병을 직접 만든다. / 증류하게 될 발효주.
화요 양조장은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에 있다. 술은 100% 쌀로 빚는 쌀소주다. 낱병으로 구매할 수 있는 술은 두 종류다. 500㎖ 유리병에 담긴 화요 25도짜리가 마트에서 1만1천원이고, 41도짜리가 2만2천원이다. 이제는 호텔과 고급 음식점에도 상당히 보급되어 있다. 그런데 소비자 반응이 “소주가 왜 이렇게 비싸요?”다. 1천원짜리 소주의 열 배, 스무 배니 비싸다고 할 수밖에. 하지만 값은 수평 비교가 가능해도, 가치는 수평 비교를 할 수가 없다. 증류식 소주는 위스키와 코냑에 견주어야 한다. 만약 위스키 1만원짜리가 있다면, 싸다고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1만원, 2만원 하는 증류식 소주는 비싼 가격이 아니다.

소주를 만드는 감압식 증류기.

화요주점 낙낙. 화요에 어울리는 안주와 음식을 낸다.

유리로 된 화요 술병.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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