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위가 없으면 학생을 가르칠 수 없단 말을 듣고 이래서 학력위조가 생기는구나 깨달았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본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매거진 Esc]최범석의 시선 ⑪
어느 대학에 특강을 몇 번 나간 적이 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강연 청탁을 받을 때 대학에서 배우기 힘든 현장감이라든가 내가 일할 때 쏟는 에너지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고 해서 응했다.
겸임교수 제안, 겁이 덜컹 났지만…
그렇게 그 대학과 인연이 돼서 간간이 특강을 나가다가 몇 달 전에 올 2학기부터 겸임교수를 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순간 겁이 덜컹 났다. 학교에서 디자인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내가 정식 선생이 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대학에서 뭘 가르치는지도 모르니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 전화를 건 교수는 말했다. “그냥 범석씨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열정만 쏟아 주면 돼요. 우리 교수들이 아이들에게 알려 주는 건 이론이지만 범석씨는 현장감이 아주 좋잖아요. 현장에서 아주 잘하고 있는 디자이너가 옆에만 있어도 학생들에게는 힘이 생기고 수업도 에너제틱해질 거예요.”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너무 바빠서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내 시간에 맞춰서 천천히 한번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또 한 번의 특강 기회가 있었다. 전에 할 때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이 왔다. 강의실도 전보다 커지는 바람에 마이크를 잡아야 해서 긴장이 됐다. 일 특성상 사람들 앞에 설 일이 적지 않은 편인데도 항상 자리가 바뀌면 떨리는 건 없어지지 않는다. 그날은 학생들 앞이라 좀더 점잖고 당당하게 보이고 싶었는데 또 떨렸다. 마이크 잡은 손이 떨리는 게 보일까 걱정이 됐다. “마이크 잡고 이야기하니까 분위기가 딱딱하고 어색한 것 같아요. 그냥 크게 이야기할게요” 마이크를 내려놓고 전보다 더 씩씩하게 강의를 했다.
준비해 온 것을 너무 빨리 이야기해 버려서 조금 당황했지만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다 보니 강의보다 더 흥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학생들은 나에게 어떻게 서울 컬렉션에 빨리 진입할 수 있었는지, 디자인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는지 같은, 일과 관련된 질문뿐 아니라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나라를 좋아하고 자주 가는지 등 내 개인적인 관심사나 감정에 대한 질문도 많이 했다. 또 여자친구는 있는지 게이는 아닌지 등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질문도 하면서 금방 시간이 지나갔다. 우리는 함께 아쉬워하면서 다음 학기에 겸임교수로 돌아와 다시 만나기로 했다.
혁신과 파격은 이미 학교에서 짓밟힌다 사실 겸임교수 제안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나 역시 젊은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고 나한테도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특강을 마친 다음 오케이를 했다. 그러고 나서 일을 마친 다음 날마다 늦은 저녁 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을 하고 혼자 상상을 했다. 졸업 뒤 사회에 나와서 이 업계에 적응하고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 실전처럼 모의면접도 보고, 원단을 주면서 실습도 시켜 보고…. 한 달 뒤인가 전화가 왔다. “잘 지내시죠? 그런데 있잖아요…” 목소리가 밝지 않았다. ‘그런데’라는 말 뒤에는 뭔가 안 좋은 말이 나오기 십상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 학교 방침이 대학을 안 나온 사람에게는 겸임교수 자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내가 부탁한 게 거절당한 건 아니니 뭐 내가 잘못됐다고 할 건 없었지만 기분이 안 좋은 건 사실이었다. 내가 교수 자리를 부탁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쨌든 다음 기회에 또 부탁할 일 있으면 연락달라고 인사를 하자 상대방이 다시 말했다. “이야기해서 앞으로 학교의 그런 방침을 고쳐 보도록 할게요.” 안 해도 될 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꼭 이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꼭 그렇게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디자인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그렇게 생각이 갇혀 있어서 되겠습니까.” 전화를 끊고 나서 난 요즘 학력을 속이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조금 이해가 됐다. 실력만으로 대접을 못 받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가진 것을 포장하려는 건 당연해 보인다. 내가 겪은 건 그 학교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혁신이나 파격 같은 문화적으로, 또는 디자인적으로 중요한 단어들이 그것을 키워야 하는 학교에서 이미 싹을 밟히는 것이 아닌가 착잡하다. 최범석 패션 디자이너· 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 윤석화씨 “이화여대 다니지 않았다”
▶ 윤석화 “실망 안겨드려서 죄송” 홍콩 출국
▶ [유레카] 자기기만 / 신기섭
혁신과 파격은 이미 학교에서 짓밟힌다 사실 겸임교수 제안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나 역시 젊은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고 나한테도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특강을 마친 다음 오케이를 했다. 그러고 나서 일을 마친 다음 날마다 늦은 저녁 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을 하고 혼자 상상을 했다. 졸업 뒤 사회에 나와서 이 업계에 적응하고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 실전처럼 모의면접도 보고, 원단을 주면서 실습도 시켜 보고…. 한 달 뒤인가 전화가 왔다. “잘 지내시죠? 그런데 있잖아요…” 목소리가 밝지 않았다. ‘그런데’라는 말 뒤에는 뭔가 안 좋은 말이 나오기 십상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 학교 방침이 대학을 안 나온 사람에게는 겸임교수 자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내가 부탁한 게 거절당한 건 아니니 뭐 내가 잘못됐다고 할 건 없었지만 기분이 안 좋은 건 사실이었다. 내가 교수 자리를 부탁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쨌든 다음 기회에 또 부탁할 일 있으면 연락달라고 인사를 하자 상대방이 다시 말했다. “이야기해서 앞으로 학교의 그런 방침을 고쳐 보도록 할게요.” 안 해도 될 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꼭 이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꼭 그렇게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디자인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그렇게 생각이 갇혀 있어서 되겠습니까.” 전화를 끊고 나서 난 요즘 학력을 속이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조금 이해가 됐다. 실력만으로 대접을 못 받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가진 것을 포장하려는 건 당연해 보인다. 내가 겪은 건 그 학교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혁신이나 파격 같은 문화적으로, 또는 디자인적으로 중요한 단어들이 그것을 키워야 하는 학교에서 이미 싹을 밟히는 것이 아닌가 착잡하다. 최범석 패션 디자이너· 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 윤석화씨 “이화여대 다니지 않았다”
▶ 윤석화 “실망 안겨드려서 죄송” 홍콩 출국
▶ [유레카] 자기기만 / 신기섭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