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최범석의 시선14
뉴욕 컬렉션을 보러 뉴욕에 다시 간다. 신문이 나올 때쯤 비행기를 타고 있겠다. 얼마 전까지 파리 컬렉션 참가를 준비하고 있던 터라 왜 갑자기 뉴욕 컬렉션을 보러 가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람들은 파리면 어떻고 뉴욕이면 어떤가, 쇼 장소가 뭐 그리 중요한가라는 이야기도 하는데 나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 곳에서 한번 하고 다른 곳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반응이 생길 때까지 꾸준히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왜 런던이나 밀라노가 아닌 뉴욕인가
파리 패션계 사람들은 한국 디자이너들이 너무 단발적인 컬렉션을 한다고 말들을 한다. 파리에서 쇼를 했다는 이력을 위해서 컬렉션을 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한두 번 쇼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냐, 5년도 걸리고 10년도 걸릴 수 있는데 너무 빨리 그만두는 것 아니냐 말들이 많다.
밀라노와 런던도 있는데 왜 내가 뉴욕과 파리를 두고 저울질하는가 하면 우선 밀라노는 너무 큰 디자이너 브랜드가 포진해 있어서 개인 디자이너들이 밀고 들어가기 힘들다. 또 디자인 수준이 파리에 비해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이탈리아 패브릭이라는 거대한 강점이 있기 때문에 한국처럼 원단에서 약한 디자이너들이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런던은 1990년대 말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는데 아직 이슈를 만들기에는 작은 컬렉션인데다 그곳 특유의 과감하고 독창적인 실험정신이 시장에까지 먹히고 있지는 않은 상태다.
그래서 파리 아니면 뉴욕 컬렉션이 나에게 맞지 않을까 싶은데 선택은 쉽지 않다. 파리 백화점들에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상태라 파리 컬렉션에 들어가기가 상대적으로 쉬울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역시 만만치는 않다. 파리 컬렉션이 더 앞서가고 더 전통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곳에서 아시아인이 뜬다는 건 아주 힘들기 때문이다. 며칠 전 파리에서 공부하고 온 디자이너 면접을 봤는데 그는 파리에서 자리를 잡으려다가 결국 포기했다고 했다. 어렵사리 취직한 회사에서 일본 디자이너에 대한 노골적인 편애로 지쳤다고 한다. 선배들이 왜 그렇게 금방 포기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일본 디자이너들은 일찌감치 파리에 자리를 잡은데다 일본 시장은 유럽 전체를 합한 것보다 큰 시장이니까 일본 디자이너를 선호하는 것이다. 파리에 비하면 전통이 약하지만 또 그런 이유로 전통보다 자본 중심으로 움직이는 뉴욕 컬렉션은 상대적으로 덜 보수적인 느낌이다. 사실 유럽에 비해 미국이 감각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더 커 보인다. 물론 자본이 중심이기 때문에 상품력이나 디자인력에 비해 마케팅의 힘이 유독 크고 여느 컬렉션보다 기업화가 잘 돼 있는 곳이 뉴욕 컬렉션이다. 열정으로 멀리 내다보면 희망이 있다
요새 뉴욕에는 중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뜨고 있다. 물론 일본 디자이너들도 많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은 수많은 인종들이 섞여서 경합을 벌이는 곳이기 때문에 열정을 가지고 멀리 내다본다면 한번 베팅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컬렉션을 보면서 시장 조사를 하고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도 알아보려고 한다. 아직 시작은 안 했지만, 힘들 거라는 걸 잘 알지만, 막연한 기대와 꿈을 가지고 도전해 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패션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깟 옷 가지고 꿈과 성공, 좌절을 이야기하는 게 하찮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패션은 한 시대의 표현이고, 이 꿈을 이루는 건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다.
최범석 패션 디자이너·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그래서 파리 아니면 뉴욕 컬렉션이 나에게 맞지 않을까 싶은데 선택은 쉽지 않다. 파리 백화점들에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상태라 파리 컬렉션에 들어가기가 상대적으로 쉬울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역시 만만치는 않다. 파리 컬렉션이 더 앞서가고 더 전통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곳에서 아시아인이 뜬다는 건 아주 힘들기 때문이다. 며칠 전 파리에서 공부하고 온 디자이너 면접을 봤는데 그는 파리에서 자리를 잡으려다가 결국 포기했다고 했다. 어렵사리 취직한 회사에서 일본 디자이너에 대한 노골적인 편애로 지쳤다고 한다. 선배들이 왜 그렇게 금방 포기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일본 디자이너들은 일찌감치 파리에 자리를 잡은데다 일본 시장은 유럽 전체를 합한 것보다 큰 시장이니까 일본 디자이너를 선호하는 것이다. 파리에 비하면 전통이 약하지만 또 그런 이유로 전통보다 자본 중심으로 움직이는 뉴욕 컬렉션은 상대적으로 덜 보수적인 느낌이다. 사실 유럽에 비해 미국이 감각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더 커 보인다. 물론 자본이 중심이기 때문에 상품력이나 디자인력에 비해 마케팅의 힘이 유독 크고 여느 컬렉션보다 기업화가 잘 돼 있는 곳이 뉴욕 컬렉션이다. 열정으로 멀리 내다보면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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