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의 거리에서 열린 98 S/S뉴욕 컬렉션의 오프쇼. 제너럴아이디어제공
[매거진 Esc] 최범석의 시선 (16)
9월5일부터 시작한 뉴욕 컬렉션에 갔다. 4일 밤늦게 뉴욕에 도착했지만 뉴욕 컬렉션은 처음인지라 설레는 마음에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라테와 샌드위치를 사 들고 브라이언트 파크로 가서 쇼 무대가 세워진 텐트 옆에 앉았다. 리허설을 하는지 음악 소리가 들렸고 스태프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과 지각한 모델들이 헐레벌떡 뛰는 모습, 취재진이 서성이는 풍경이 서울 컬렉션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나는 컬렉션의 주인공이었는데 이렇게 남의 무대를 보러 오니 기분이 묘했다.
뉴욕에서 만난 아기네스 딘과 한혜진
그런데 한국의 컬렉션과는 조금 다른 게 있다. 뉴욕 컬렉션은 텐트 안에서 하는 온 쇼(on show)와 밖에서 하는 오프 쇼(off show)로 나뉜다. 가끔은 텐트 밖에서 하는 온 쇼도 있기는 하지만. 온 쇼에는 우리가 다 아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참여한다. 켈빈 클라인, 노티카, 라코스테, 토미 힐 피거 등 큰 브랜드와 베라 왕, 안나 수이, 마크 제이콥스, 랄프 로렌 등 큰 디자이너들이 참가하고 오프 쇼에는 신인들이 주로 속해 있다. 예를 들어 요즘 뜨는 디자이너인 필림 림이나 데릭 램, 한국인 두리 정 같은 젊은이들이 오프 쇼를 한다. 나에게는 젊고 다른 느낌을 주는 오프 쇼가 더 볼만했다.
뉴욕 컬렉션은 워낙 대형 브랜드가 많아서 쇼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연출은 어떨지, 어떤 모델들이 빅 쇼에 서는지 모든 게 다 궁금했다. 캘빈 클라인이나 마크 제이콥스 같은 빅 쇼에 선 모델들은 뉴욕 다음으로 이어지는 밀라노나 파리 컬렉션 캐스팅이 좀더 쉬워지기 때문에 많은 모델들이 주목받는 뉴욕의 쇼에 서고 싶어한다.
이번 쇼에서 단연 눈에 들어오는 모델은 영국 출신인 아기네스 딘이었다. 딘이 오프닝으로 나오는데 정말이지 너무 멋있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여성적인 이미지와 남성적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그녀는 워킹도 남자 모델처럼 한다. 그래서 찬반이 뚜렷이 갈리는 모델이기도 하지만 그녀만의 스타일이 있어서 더 좋아 보였다. 또 데뷔 1년 만에 정상에 올라서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핀잔도 듣지만, 이번 안나 수이 컬렉션에서도 마지막 워킹 때 피로와 짜증이 묻어나오기는 했지만 오히려 솔직해 보여 맘에 들었다. 그리고 한국 모델인 한혜진과 혜박이 얼마나 많이 서나도 관심이었는데 여러 빅 쇼에 선 그녀들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특히 뉴욕에서도 가장 하기 힘들다는 마크 제이콥스 쇼에서 한혜진은 더욱 빛이 났다. 뉴욕이나 유럽 컬렉션 진출을 준비하는 처지에서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서울 컬렉션 9일, 너무 길다
뉴욕에서 돌아와 서울 컬렉션 담당자를 만나게 되었다. 일정과 세부적인 문제들을 이야기하다가 전체 일정이 9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9일이라니…. 어느 나라 바이어나 패션 에디터들도 쇼를 보기 위해 9일을 머무는 건 무리다. 차라리 일정을 줄이고 뉴욕처럼 온-오프 쇼로 나눠서 하는 건 어떨까 제안을 했다. 어떤 결정이 날 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의 패션 전문가들을 불러와서 강한 인상을 주려면 짧은 시간에 시선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원단 전시회나 브랜드 트레이드 쇼 등을 해서 디자이너만 소개하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패션 경향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서울 컬렉션이나 한국의 패션 산업을 키우려면 디자이너 자체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온-오프 쇼처럼 뉴욕 컬렉션 같은 대형 컬렉션의 효율적인 운영 방식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하나의 아이디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최범석 패션 디자이너·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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