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원스〉를 보며 여자들의 ‘만족’을 생각했다.
[매거진 Esc] 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뜻밖에도 나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 예컨대 <브리짓 존스의 일기> 같은 영화에서 집에 따라 들어오려는 남자를 문밖에 세워놓고 혼자 들어와서는 여자가 만세를 부르는 장면 같은 건 언제 봐도 흥미롭다.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잠깐 방이 좀 지저분해서 …”라고 말하고 집 안으로 먼저 들어가는 여자들은 항상 그렇게 만세를 부르는 것일까? 낸들 알겠는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원스>를 보라고 권하는 통에 얼떨결에 영화를 봤다. 사람들의 주장인즉슨 내가 보면 정말 좋아할 영화라는 것이었다. 가서 봤더니 정말 그랬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영어 공부를 한참 했다. 요즘 영어권 젊은이들은 ‘좋아(sure)’라고 대답해야 할 경우에 대개 ‘시원해(cool)’라고 말한다는 점,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 ‘같이 자자’라고 말해야 할 경우에는 ‘밤을 머물자(stay the night)’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점을 새로 배웠다. 활용하자면, “밤을 머물자”, “시원해”, 대략 이런 식으로 역사가 이뤄진다는 소리다.
그렇게 한참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장면이 나왔다. 여자의 집에 찾아가서 이민자 가정의 북적대는 모습을 지켜본 남자가 집에 가기 전에 여자에게 한잔 더 하러 가자고 말한다. 그러자 여자는 일이 많다며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래 놓고서는 밤새 뭘 하느냐면 남자가 준 시디 플레이어에 담긴 노래에 가사를 만들고 있다. 역시 그런 것일까? 일이 많다며 일찍 집에 들어간 여자들은 밤새 그런 일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그러고 있을 바에야 차라리 그 남자와 한잔 더 하는 게 생산적이지 않을까는 생각이 들 즈음, 여자는 시디 플레이어의 배터리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여자는 한참이나, 그러니까 노래 한 곡이 다 끝날 때까지 걸어가야만 닿을 수 있는 상점까지 걸어간다. 할 일이 많아서 한잔 더 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던 그 여자가. 그 여자가 시디 플레이어에 새 배터리를 넣고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제목은 ‘당신이 나를 원한다면’. 또 나는 열심히 ‘리스닝 컴프리헨션’을 했다. ‘If you want me, satisfy me’. 당신이 나를 원한다면, 나를 만족시켜주세요. 어두운 거리를 걸어가면서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감동했다. 영어 가사가 귀에 쏙 들어와서? 아니다. 아, 여자란 바로 저런 존재구나는 감탄이 들어서였다. 집이 지저분하니 좀 치우겠다며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서, 할 일이 많다고 집에 일찍 들어가서, 여자들은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그들에게 사랑이란 자신을 만족시키는 어떤 일을 뜻하는구나.
하지만 남자들은 좀 멍청하니까 여자들이 “당신이 나를 원한다면, 나를 만족시켜주세요”라고 말하면 또 그 느끼한 목소리로 “밤을 머물자”라고 말한다. 그러면 여자들이 “시원해”라고 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빨리 집에 가봐야 한다거나, 말을 돌린다. 그럼 여자들이 말하는 만족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런 심각한 의문에 사로잡혀 있는데, 갑자기 카메라는 남편을 만난 여자의 일상에서 빠져나와, 여자의 시선을 따라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향한다. 여자의 시선을 따라가면 어쩔 수 없이 영화의 제목이 떠오른다.
원스. 언젠가, 혹은 한 번. “당신은 지금 여기에 있나요, 아니면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 여자는 그렇게 노래를 시작했다. 지금 여기에서 사랑하는 모든 여자들은 결코 만족을 모른다. 이어지는 가사처럼 여자들은 “그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하지도 못해요.” 그래서 여자들은 만족을 요구하고 또 요구한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면 어떻게 해도 만족할 수 없었던 언젠가 그때의 마음이 바로 만족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도 생산적으로 하려고 드는 남자들에게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이해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연수 / 소설가

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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