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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을 멋진 전시회장으로

등록 2007-10-24 23:13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④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④
[매거진 Esc]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④
프로젝트 완수를 통해 거듭난 호텔 실습생, 대만행을 명 받다
1990년 미국 하얏트 호텔에서 처음 일을 배우던 ‘수습’시절, 조라는 이름의 동료가 기억에 남아요. 성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군요. 그는 판매·마케팅 관리 쪽 수습이었고, 전 기술관리 쪽 수습이었죠. 수습이었으므로 전공과 상관없는 여러 가지 기본훈련을 함께 받았어요. 시설관리와 프런트 근무, 벨 보이, 주방 근무, 룸 서비스, 연회 준비에 인사관리, 심지어 세탁까지 … 이 모든 일을 겪으며 우린 좋은 친구가 됐죠.

비닐타일 고무접착제에 몽~롱

우리 둘 다 무척 가난했고 처량하리만치 오래 된 구닥다리 차를 몰고 다녔죠. 전 영국에서 대학을 다녔기에 당연히 미국 문화에 익숙지 않았죠. 미국에서의 삶에 대해 어떤 선입견 같은 게 있었나 봐요. 그래서 다른 미국인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8기통짜리 커다란 구형 자동차를 몰고 다녔던 거예요. 그 차는 컸지만 고작 300달러였죠. 하얏트 호텔의 다른 미국인 동료들이 모두 저를 놀렸어요. 그들은 그때 이미 도요타를 몰고 다녔거든요. 제가 뭘 알았겠어요? 전 당연히 미국에서는 대형 미국차를 몰아야 하는 줄 알았죠.

차이점도 있었어요. 조는 미국인이어서 언제 괴롭힘을 당하게 될지 잘 알았죠. 그러나 전 외국인이었고 순진했어요. 사람들은 내가 우스꽝스럽게 말할 때마다 나를 상대로 장난치고 놀렸어요. 조는 아주 외향적이고 재미를 찾아다니는 친구였어요. 한번은 조가 절 파티에 초대한 적이 있었죠. 그런데 알고 보니 파티장소가 차로 11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더군요. 물론 당시 저는 그걸 몰랐죠. 나중에서야 파티가 바닷가에서 열리는 비치 파티란 걸 알았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조와 연락이 끊겼어요. 그를 찾으려고 노력해 봤지만 찾을 수가 없어요. 조를 만나 예전같이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닉 히스 총지배인은 실습생 시절 주방에서의 훈련을 가장 힘들어했다. 사진은 W호텔 주방 모습. w서울워커힐호텔제공
닉 히스 총지배인은 실습생 시절 주방에서의 훈련을 가장 힘들어했다. 사진은 W호텔 주방 모습. w서울워커힐호텔제공
첫 직장인 하얏트 호텔에서 교육받고 일했던 경험은 호텔리어로서의 경력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에요. 당시 전 23살의 펄펄 뛰는 나이였죠. 전 제가 젊고 새롭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되레 사람들은 제 말투가 웃긴다며 “우스꽝스러운 니콜라스”라고 불러댔죠. 실습생이 되고 나서 한 달 뒤 대규모 사업을 맡게 됐죠. 우리 팀 과제는 호텔 안에 있는 3천㎡(약907평)에 이르는 주차장을 전시회장으로 개조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일거리를 단 일주일 만에 끝냈어요. 저를 비롯해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동료들에게 칭찬이 쏟아졌습니다. 단 하나 문제가 있었죠. 전시회장 개조작업에 사용된 가로세로 30cm 길이의 비닐타일을 이어 붙이기 위해 고무접착제를 사용했는데, 이 냄새를 마시고 모두 기분이 몽롱해졌죠.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죠, 하하.

어쨌든 우리는 아주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존중받았어요. 이 사건이 제게는 새로운 돌파구 같은 것이었어요. 경영진은 열심히 일하는 저를 신뢰하고 존중해 주었지요. 그 프로젝트는 정말 대단한 팀워크로 이루어진 거예요.


하얏트 호텔에서의 초창기 경험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처음으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게 된 계기”라고 말할게요. 특히 한번도 일해 본 적 없던 호텔 일을 하려니 긴장되고 설렜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그곳이 바로 저의 첫 직장인 버지니아 앨링턴의 하얏트 호텔이에요. 그때 전 23살이었고 모험으로 가득한 호텔 일을 시작하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온 셈이죠.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의 새 출발

보조 기술자로 일하며 수습 프로그램을 교육받던 당시 전 미혼이었어요. 1년이 지나 호텔 일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나니 호텔 인사팀에서 어느 날 저를 부르더라고요. 무슨 일인지 몰라 뒤통수를 긁던 저에게 “대만에서 근무해 보겠냐”고 제안 하더군요. 호텔리어로 성장하도록 아시아를 경험할 기회를 준 셈이지요. 선택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었죠. 전 당시 ‘젊었을 땐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했습니다. 앞뒤 돌보지 않고 당장 짐을 싸서 대만으로 날아갔습니다. 제가 아시아를 방문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대만에서 호텔 일을 한다는 건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었죠. 많은 사람들, 새로운 장소 … 처음 출근한 날, 전 약간 주눅이 들기도 했습니다. 1991년, 전 제 앞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어요.

닉 히스 W서울워커힐호텔 총지배인·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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