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재즈를 어떻게 디자인 하지?

등록 2007-10-31 23:06수정 2007-10-31 23:15

2008 S/S 서울컬렉션의 오프닝을 장식한 최범석의 패션쇼. 연합뉴스
2008 S/S 서울컬렉션의 오프닝을 장식한 최범석의 패션쇼. 연합뉴스
[매거진 Esc] 최범석의 시선 18
이번 서울컬렉션은 내부적인 문제로 꽤나 어수선하게 준비가 됐지만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컸다. 컬렉션 오프닝을 맡았기 때문이다. 행사가 보름도 안 남은 상태에서 오프닝 요청을 받았을 때 부담스러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학력이나 동대문 출신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컬렉션 참가에 제약을 받았던 내가 인정을 받는 것 같았다.

컬렉션 위해 속옷 색까지 바꾸다

이번 내 컬렉션의 테마는 재즈였다. 영화 <리플리>와 <태양은 가득히>를 보면서 리플리가 질투하고 갈망하는 캐릭터인 필립 그린리프의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자극을 받았다. 그린리프는 요트와 재즈, 그리고 트랜디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인물로, 그의 세련된 삶 자체를 테마로 삶았다. 콘셉트가 잡히면 늘 그렇듯 이번에는 내가 그린리프인 것처럼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심지어 메인 컬러가 잡히면 속옷을 그 색에 맞춰 입으면서 디자인을 궁리한다.

사실 나는 재즈를 잘 모른다. 또 록이나 힙합은 음악이면서 패션이지만 재즈는 음악일 뿐 패션은 아니다. 게다가 나는 여덟차례 컬렉션 모두 록음악에 영감받아 작업했기 때문에 어떻게 재즈를 의상으로 표현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재즈를 제대로 이해 못하면 이번 컬렉션은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재즈를 듣고 재즈 뮤지션을 다룬 영화를 계속 봤다. 음악을 좋아해서 늘 직접 쇼 음악을 골랐는데, 이번엔 그 작업조차 만만찮았다. 그래서 선배한테 부탁해 음악이야기를 나누는데 선배가 외쳤다. “올댓재즈, 맞아 거기야!”

우리는 당장 이태원 ‘올댓재즈’로 갔다. 그런데 손님이 선배와 나밖에 없었다. 그날의 재즈는 너무 외롭고 가난해 보였다. 하지만 선배에게 들은 낙원이형(올댓재즈 진낙원 대표) 스토리는 인상적이었다. 30년 동안 재즈에 빠져 살아온 형은, 적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라이브 공연을 진행하며 사람들이 팝과 대중가요로 자리를 옮겨도 죽을 때까지 재즈로만 갈 거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존경심이 생겼다. 그의 존재 자체가 재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낙원이형을 직접 만나 재즈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뒤 다시 ‘올댓재즈’에 갔을 때는 나이 지긋한 뮤지션들이 무대에 나왔다. 그런데 ‘룩’이 너무 꽝이어서 사실 조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 그들의 모습은 내 생각을 너무 창피하게 만들었다. 패션만이 겉은 나이가 들어도 속은 늙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재즈는 더욱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색소폰과 플루트를 번갈아 연주하는 아저씨가 인상적이었다. 그 아저씨는 아니, 그 뮤지션은 갑자기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잘 부르지는 않았지만 너무 감동적이었다. 정말이지 재즈는 잘 하는 것보다 호흡이었다. 같이 간 선배가 말하길 그 뮤지션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고가 나도 매주 일요일 항상 오는 분인데, 그가 노래하는 건 17년 만에 처음 봤다고 했다. 케이비에스 관현악 단장 출신인 그분은 여기 한번 오면 몇시간을 연주하고 5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좋은 집에 좋은 차를 가지고 다니는 그가 왜~~? 그에게 그곳은 놀이터였고 재즈는 그의 삶 전부였다.

최범석의 시선
최범석의 시선
‘올댓재즈’의 인상적인 뮤지션들

몇 해 전 유행했던 것처럼 재즈라면 트랜디함만 강조되는 것에 비해 역설적으로 나는 이번에 재즈를 공부하면서 너무나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알았고 반성도 많이 했다. 난 요즘 재즈에 빠져서 산다. 난 항상 패션에 빠져서 산다. 그리고 내가 봤던 재즈 뮤지션처럼 나 스스로 패션이 되고 싶다.


최범석 패션 디자이너·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