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믿어 의심치 않을때 욕망의 판타지는 현실이 된다. <색, 계>.
[매거진 Esc] 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사전에 내가 들은 정보는 두 가지였다. 먼저 잘못해서 <식객>을 보면 곤란하다는 것. 그리고 보는 동안 여러 번의 탄식이 들려올 텐데, 그 중 마지막 탄식 소리가 제일 크다는 것. 그러니까 영화 <색, 계> 말이다. 영화를 보니 실제로 마지막 관객들의 탄식 소리가 제일 컸다. 그러니까 왕치아즈 앞에 물경 6캐럿 다이아몬드 반지가 등장했을 때 말이다.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는 어릴 때 티브이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번질나게 나왔던 그 대사,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았더냐?”가 떠올랐다.
하도 들어서 내 무의식에 각인된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몇 년 전, 한 시에프에서 전지현이 여자에게는 다이아몬드 반지도 사랑이라고 대답한 바 있다. 6캐럿 다이아몬드 반지 앞에서 들리는 그 탄식 소리는 그 반지를 사랑의 증거로 치환할 수 있는 여성들의 탄식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런 탄식 앞에서 진정한 사랑은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탄식들은 동경 유학생 오빠 같은 그 말씀에 뭐라고 대꾸할까? 아마도 “왜 3년 전에는 이렇게 키스해주지 않았느냐?”고 묻겠지.
이게 무슨 소리인지 사태파악을 하지 못하는 오빠들에게 요약하자면, 욕망은 오직 드러날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여자들은 오직 드러나는 욕망에만 반응할 뿐이다. 우리가 초능력자도 아닌데, 마음으로 뭔가가 전달된다고 우기지 마시라. 이쯤 되면 그럼 돈 있는 놈들만 연애하느냐고 사태를 호도하시는 분들이 나올 거다. 다이아몬드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는 건 이 영화에도 나온다. 홍콩에서 애국연극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뒤, 무대 위에 서 있는 왕치아즈를 향해 광위민이 이름을 부른다. 이 목소리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왕치아즈를 흥분시키는 욕망이었다.
이름 부르는 소리를, 그리고 다이아몬드를 왕치아즈가 받아들였을 때, 남자들은 공히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연극반 친구들은 중국을 지켜주겠다고 호언했고, 이 대장은 왕치아즈를 지켜주겠다고 장담했다. 그 한심한 남자들이 제 몸뚱어리 하나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건 곧 밝혀지지만, 이 호언장담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든, 다이아몬드든 그녀는 거기에 대답한다. 결국 그게 진정한 목소리도, 다이아몬드도 아니라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서로 믿어 의심치 않을 때에만 현실이 되는 욕망의 판타지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안 감독은 구겨진 침대 시트를 보여준다. 구겨진 침대 시트는 한때 그 침대에서 격렬하게 사랑하던 연인의 존재가 이제는 사라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대장의 책상 위에서 흔들리던 그 다이아몬드 반지가 왕치아즈의 손가락을 상기시키듯이. 그렇기 때문에 <색, 계>의 다이아몬드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아니다. 그건 판타지지만, 연극이 끝나고 난 뒤 2층 전차의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 왕치아즈의 이마로 떨어지던 그 빗방울처럼 생생하게 기억될 판타지다.
그러니 친일파를 사랑하는 일이든, 조국을 사랑하는 일이든 사랑은 욕망의 판타지일 뿐이라고 말하지 마시라. 하지만 그러고도 남는 게 있으니까 거기에 목숨을 거는 것 아니겠는가? 욕망의 찌꺼기 같은 것들. 사랑이 끝나고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남아 있을 그 뭔가. 바로 여자들이 탄식하던 그 6캐럿 다이아몬드나 나를 슬프게 만들었던 구겨진 침대 시트 같은 것들. 이 다이아몬드는 그 다이아몬드가 아니고, 이 구겨진 침대 시트는 공연히 구겨진 게 아니다. 그래서 유학생 오빠들이 아무리 판타지라 말한다고 해도 이건 판타지가 아니다.
김연수 소설가

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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