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욘세 내한공연 뒷풀이 파티에서 디제잉을 한 필자(오른쪽)와 비욘세. 제너럴 아이디어 제공
[매거진 Esc] 최범석의 시선 20
서울 컬렉션이 끝난 직후 홍대 한 클럽에서 디제이를 봐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망설이다 거절했다. ‘디제잉’을 취미로 하기 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하는 건 자신이 없었다.
요 근래 그렇게 혼이 나기는 처음
그 다음주에 똑같은 곳에서 한번 더 제안이 들어왔다. 내용인즉 비욘세의 공연 애프터 파티의 음악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오케이를 했다. 데스티니스 차일드 시절부터 비욘세를 워낙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뉴욕 컬렉션을 준비하는 나에게 미국의 팝스타를 만나고 연결고리를 맺는 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하기로 하고 난 다음에는 불안감이 솟구쳤다. 결국 친한 디제이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새벽에 일이 끝나면 음악을 듣고자 다시 클럽으로 출근을 했다.
흔히들 디제잉이라면 음반을 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클럽에 온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하며 그들을 열광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파티에 가면 사람들이 신나게 놀아서 평소 수줍고 얌전한 사람마저 어깨가 들썩이는가 하면,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쭉 벽에 붙어 누가 먼저 안 노나 눈치만 보다가 술 몇 잔 마시고 집으로 간다. 여기서 디제이의 능력이 갈리는 거다. 그래서 디제이는 파티 장소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연령대는 어떤지, 취향은 어떤지를 간파해야 한다. 패션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마냥 예쁜 옷을 만들 게 아니라 특정한 마켓이나 계절을 겨냥해서 디자인해야 한다.
기술적으로도 디제잉을 하는 건 쉽지 않은데 급하게 해결해야 했던 건 어떤 노래로 순번을 짤 것인가였다. 비욘세 파티라고 비욘세를 틀기도 그렇고 내가 그닥 좋아하지도 않는 힙합을 틀기도 그렇고 망설이다가 요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는 여러 사람에게 디제잉을 가르쳐준 친한 디제이 형을 만나러 갔다. 형 집에 가서 내가 틀고 싶은 음악을 틀어봤다. 몇 곡을 들은 형은 “내려!”(음악을 끄라는 얘기)라고 썰렁하게 말을 했다. “그런 음악은 너 혼자 놀거나 아주 친한 친구들하고 하우스파티 할 때나 하라”는 게 형의 모진 충고였다. 이미 혼자 선곡을 해서 며칠 동안 연습도 하고 간 건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고작 나흘 남았는데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건가? 끄응.
한소리를 더 들었다. 한두시간 연습하고 집에 가려고 했던 나는 “준엽이형이나 승범이도 16시간 연습하고 그랬는데, 나흘밖에 안 남았다는 사람이 그 정도 준비해서 되겠냐”는 핀잔이었다. “형한테 미안해서 그렇지 집에 가서 계속 연습하려고 했어”라고 둘러댔지만 요 근래 누구한테 그렇게 혼이 나보긴 처음이었다. 아무튼 “디제이 아무나 하는구나”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짧은 시간이지만 정신없이 연습을 하다 보니 벌써 토요일이 됐다. 중요한 쇼를 앞둔 것처럼 오전부터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저녁 때 비욘세에게 선물할 의상과 액세서리를 챙겨서 홍대로 향했다.
비욘세를 만나 컬렉션에 초청하다
대통령 경호만큼이나 까다로워 보이는 경호원들을 지나 비욘세를 만났다. 다행히도 그가 나의 선물을 아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뉴욕 컬렉션에 참가할 때 와줄 수 있겠냐 초청하니 “오브 코스”라는 대답이 시원하게 나왔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디제이 박스로 갔다. 잠시 전만 해도 디자이너 최범석이었지만 이제 디제이 최범석만 남았다. 사람들은 음악에 반응하기 시작했고 난 그루브를 타기 시작했다.
최범석 패션 디자이너·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최범석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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