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뉴욕에서 열린 마크 제이콥스의 파티. 제너럴 아이디어 제공
[매거진 Esc] 최범석의 시선 21
요즘 나에게 가장 많이 오는 전화 중 하나는 파티룩에 관한 조언을 구하는 인터뷰다. 연말이 되면 항상 받는 질문이지만 올해 부쩍 늘었다. 그만큼 파티문화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일상화되고 있다는 의미일 게다.
양이나 말의 탈을 쓰고 놀아봤더니…
나도 근래 매일같이 파티나 연말 모임을 다니다 보니 무슨 옷을 입어야 할 지 고민이 될 때가 많다. 모임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시간·장소·상황에 맞아야 한다는 패션의 정석은 파티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지만 말이 쉽지 이 모든 걸 고려하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개성없는 옷차림으로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아쉽지만 눈에 띄기 위해 많은 치장을 했다가 케이블 방송에서 자주 보는 워스트 드레서가 되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요새는 웬만한 파티에 드레스 코드를 정해서 더더욱 옷 입기가 까다로워졌다. 그런 파티에 가면 “오늘 파티가 있는 줄 몰랐다”거나 “안 오려다 왔다”고 변명하는 사람을 꼭 만나게 된다. 얼마 전에 뉴욕에서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열었던 파티의 주제는 ‘아라비안 나이트’였다. 마이 제이콥스는 낙타발로 자신을 꾸미고 다른 사람들도 파티 주제에 맞는 코디를 해서 신선한 인상을 줬다.
하지만 파티에서 정말 중요한 건 파티룩이 아니라 파티를 즐기려는 태도다. 잔뜩 꾸미고 와서 벽에 붙어있는 것만큼 촌스러운 일도 없다. 며칠 전 제너럴 아이디어의 고객들, 스태프들과 파티를 열었다. 압구정 매장의 2층을 비우고 작정하고 놀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번 파티에서도 느끼고 다른 파티에 가도 느끼는 거지만 파티 공간의 중앙에는 아무도 없고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벽에 붙어 술잔을 들고 같이 온 친구와만 이야기를 한다. 서로 눈치만 보다가 누군가 나와서 먼저 춤을 추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슬금슬금 안쪽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로 나는 스태프들에게 양이나 말의 탈을 씌워서 남 눈치 보지 않고 놀게 하면서 다른 손님의 흥을 돋구려고 한 적이 몇 번 있는데 다 성공적이었다. 파티를 자주 다니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더블유(W) 호텔의 ‘우바’에서 열린 파티에서 재미있게 놀아본 적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파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외국의 클럽처럼 계단식으로 돼 있어서 윗층 사람들이 아래서 노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스럽게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눈을 너무 신경쓰는 게 문제인 거다. 며칠 전 제너럴 아이디어의 파티도 처음 한 시간은 다들 벽 쪽에 붙어 부지런히 술만 가져다 먹다가 얼굴이 불그레하게 술이 오른 한두 명이 소리를 지르며 놀기 시작하니까 일순간 분위기가 확 펴졌다. 그리고 처음 본 사람끼리도 친하게 어울렸다.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술잔을 부딪치자
파티는 낯선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사람들은 나보고 외국 사람들과 어떻게 그렇게 금방 친해지냐고 한다. 나 역시 외국에 돌아다니고 파티에 가보면서 벽에 딱 붙어 서있다가 호텔로 돌아가며 후회했던 경험이 많았다. 별 것 아닌 것도 물어보고 또 친하게 대답하고 같이 술을 마시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를 나도 꽤나 오래 끌어안고 있었던 셈이다. 어렵게,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술잔을 부딪치자. 파티에서 살아남는 법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최범석 디자이너·제너럴 아이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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